<기자수첩> 남북 장성급 회담과 외환시장
(서울=연합인포맥스) 최기억기자= 한때 단일 유로화의 출현 이전에 국제외환시장에서 서독 마르크화의 움직임은 러시아의 정치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서독이 러시아의 가장 큰 채권 국가였기 때문이었다. 당시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심장수술을 한다는 뉴스가 흘러 나올 때 마다 서독마르크화 가치는 곤두박질치곤 했다.
마찬가지로 아시아 쪽에서는 평소에 내놓고 말은 하고 있지 않지만 일본 엔화의 움직임에는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리스크에 늘 예민하다.
한반도 서해안에서 남북간에 국지적인 군사충돌이 발생했다는 소식은 백악관보다 도쿄외환시장이 먼저 알아차리고 반응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국제금융계에서는 한.일이 무역 등으로 경제 밀착 구조가 강하다는 인식 때문에 여차하면 엔화와 원화를 팔고 안정동화(Safe Heaven)인 달러를 매입해 몸을 사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지정학적 위험은 해당통화 가치를 결정하는 요소 중에 가장 바닥에 깔려 있는 잠재된 재료이며, 상황이 생길 때 마다 상당한 폭발력을 보여준다.
지난주에 서울외환시장 참가자들은 크게 주목하지는 않았지만 우리에게는 향후 시장 향방에 영향을 줄 대단히 의미있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바로 남북 장성급군사회담 실무대표단들이 이미 체결된 긴장완화 합의서의 이행을 위해 부속합의서에 서명한 일이다.
남북 양측은 해상분쟁이 상대방에 대한 사전정보 부족으로 빚어졌다고 보고 신뢰구축을 위한 다각적인 세부적인 방안들을 서로 제시해 이를 수용하기로 했다.
해상에서 쌍방이 이상 징후가 포착되면 주파수가 일원화된 무선통신을 이용해 "백두산 나와라. 여기는 한라산"이라는 식으로 서로의 함정을 호출해 미리 충돌을 방지하게 한 것이다.
이 소식은 국제금융계에서도 상당한 평가를 받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동안 한국의 원화가치는 남북한의 국지적인 군사적 긴장이 전면전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리스크 프리미엄이 항상 덧씌워져 있었다.
이번의 남북간 군사 합의는 따라서 향후 한반도의 불가측성과 불투명성을 낮추어 원화 가치의 안정에 상당히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지난주에 국제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사도 이 점을 주목해 우리의 시선을 끌었다.
무디스는 북한 핵문제와 관련된 긴장 완화로 한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상향 조정한다고 밝히면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미군 감축 발표로 인해 한-미간의 군사적·정치적 동맹 관계가 약화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특히 무디스는 남북한 간의 고위 장성급 회담 개최가 긴장 완화라는 건설적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점을 부각시키고, 휴전선의 긴장 해제 등 아직 실질적인 단계에 와있지는 않지만 이러한 대화가 시작됐다는 것 자체가 한반도의 평화에 진전을 가져올 것으로 본다고 진단했다.
당장은 원-달러 시장에 영향을 미칠 사안은 아니지만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위험에 대한 불투명성이 하나씩 줄어들수록 대외신인도가 제고되고, 원화의 리스크 프리미엄이 줄어들 것이라는 청신호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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