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억의 월요전망대-③> `圓-元-円'은 원래 같은 한자말
(서울=연합인포맥스) 2003년 11월 어느 날 저녁 신라호텔 에메랄드룸.
'아세안+한중일' 재무차관 공식회의에 앞서 재경부가 마련한 저녁식사 자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권태신 국제업무정책관(현 재경차관), 리용(李勇, 우리나라 유명한 가수 이름과 한자까지 똑같은 이름)중국 재무차관, 미조구치젠베이(溝ㅁ善兵衛) 당시 일재무성 차관이 모처럼만에 자리를 함께 했다.
그날밤 아세안 10개국의 재무차관과 중앙은행 관계자들이 참석했지만 단연 한. 중. 일 재무차관들이 시선을 끄는 주인공들이었다. 셋 다 모두 나지막한 키에 모두 영어가 유창했다.
▲ 한중일 재무차관급들의 다른 개성= 당시 권태신 차관보는 이날 저녁도 국제금융 무대에서 널리 알려진 그의 골계(骨稽)와 격의없는 재담으로 참석자들을 배꼽 잡고 웃게 만들며 좌중을 주도했다.
이날 리용 중국 재무차관이 차관들 중엔 모임에 조금 늦게 나타났다. 그가 출입구에 들어서자 아세안 각국 차관들은 커진 중국의 위상을 반영하듯 서로 말을 건네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당시에도 위앤화 절상 문제는 각국의 중요한 관심 사안이었다.
리용 중국 재무 차관은 "이제는 아시아의 세기이며 아시아 각국의 금융협력이 어느 때보다 긴요해지고 있다"고 막힘없이 말했다.
아시아 단일통화의 출현과 관련한 필자의 질문에 대해 그는 "일이십년 내에는 어렵고 그 시기가 당겨질지 여부는 경제뿐 아니라 세계정세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설명했었다.
필자가 리용 차관에게 앞으로 장관이 되거든 아시아 단일통화를 한번 주도해보라고 덕담을 하자 그는 스스럼없이 "그렇게 하겠다" 면서 "연구할 과제로 삼겠다"고 호탕하게 답변했다.
리 차관의 큰 목소리에 비해 미조구치 젠베이 차관의 음성은 다소 나지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본이 아시아 금융협력에서 주도권을 행사해야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미조구치 차관은 "이제 아시아에서는 누가 주도한다고 되는 일이 없다"면서 "서로의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고 협력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었다.
그는 "중국은 강대국이며 경제뿐 아니라 국제 정치분야에서도 능력에 걸맞은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애써 상대를 추겨 세우며 겸손해했었다.
▲ 한.중.일은 '돈'의 단위 한자말이 똑같다= 당시 미조구치 차관에게 들은 얘기 중에 뇌리에 남는 것은 "화폐단위를 뜻하는 위앤과 원, 엔은 한자로 동그라미를 뜻하는 원래 같은 문자" 라면서 "세계 어느 지역보다 문화적 역사적인 바탕이 동질하기 때문에 앞으로의 금융 협력도 더욱 깊이를 더해갈 것"이라고 얘기했었다.
당시 권태신 차관보는 "한.중.일의 국제금융 책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한국의 중재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 면서 "중국은 일본을 다소 깔보고, 일본은 중국을 거북스러워하는데 반해, 양쪽 모두 한국에 대해서는 모두 친밀감을 갖고 있다"고 미묘한 3국 당국자의 관계를 설명했었다.
▲ 이후 2년이 지난 이후= 2005년 8월19일. 서울명동의 은행회관 국제회의실에서 '동아시아 환율협력체제 모색`을 위한 국제 세미나가 개최됐다.
이날은 다른 학술대회와는 달리 세미나 말미에 한중일 3국의 환율정책 실무책임자인 권태균 재경부 국제금융국장, 주광야오 중국 재정부 국제국장, 키요토 이도 일본 재무성 국제국장 등이 3국간 환율협력 체제를 모색하는 비공개 정책회의를 가졌다.
그동안 학계중심으로만 거론되던 '통화협력'이 이제는 당국자간의 본격 논의로 옮겨간 의미를 가진 행사였다는 후문이다.
나폴레옹과 히틀러가 꿈꾸다가 실패한 통합 유럽의 전철을 피하고 꾀많은 후예들은 '돈'의 통일을 통해 통합 유럽을 현실화하려 하고 있지만 넘어야한 험한 산은 여전히 많다.
지난 50년대에 ECSC(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유럽석탄철강공동체)에 대한 구상이 발표되고 50년이 걸려 유로화가 출현했지만, 이제 한.중.일은 서로를 탐색하는 방책을 찾는 걸음마를 시작한 상황이다.
권태균 재경부 국제금융국장은 "이번 세미나 이후 국제금융국장 회의를 계기로 3국은 이 문제에 대해 보다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하게 될 것"이며 "'통화협력'을 향한 멀고 긴 장정이 비로소 시작됐고, 이 장정은 '한국`에서 첫 발을 내디딘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중.일 재무당국자 회의는 97년 외환위기를 전후해 김용덕 당시 국제금융국장 (현 건설부 차관)의 주도적 역할로, 비공식적인 모임에 머물던 당시 한.중.일 국제금융국장 회의를 정례화하고, 이후 3국 재무관료들의 만남이 잦아지면서 관례화된 동북아 금융외교의 장(場)으로 진화하고 있다.
한.중.일 3국간 통화협력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고조된 상태에서 우리 재경부 당국자들의 조정적인 주도적 활약을 기대해 본다.
(연합인포맥스 금융.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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