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억의 월요전망대-③> 위앤화와 차이나타운의 추억
(서울=연합인포맥스) 이번주에 존 스노 미국 재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한다. 호랑이를 잡으려고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모습이다.
그는 중국 방문을 하기에 앞서 지난 CNBC에다 대고 "위안화 환율 제도를 보다 유연하게 하라". "조속히 행동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제 심리전인 셈이다.
스노는 이번주 중국 방문에 앞서 일본부터 방문해 미리 중국 압박의 행동 공조를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스노는 11일 중국에 도착해 상하이, 청두를 방문하고 14일부터 무려 일주일간 이례적으로 중국에 머물 예정이다. 중국은 지난 7월 위안화 페그제를 폐지, 위안화 가치를 2.1% 전격 절상했지만 미국의 재계와 의회는 위안화가 여전히 크게 저평가돼있다며 중국에 추가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해왔다.
중국이 스노 장관의 방문에 어느 정도 예의를 갖출지, 치열한 금융외교 신경전이 한바탕 치러질 전망이다. 서울외환시장에서는 중국에서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에 귀가 쫑긋 서게 될 것 같다.
▲ '머니 톡스' 가진 건 달러 뿐= 중국과 홍콩의 외환보유액이 지난 6월 말 현재 처음으로 일본을 젖혔다고 한다. 지난 6월 말 현재 중국과 홍콩의 외환보유액은 각각 2위인 7천159억달러와 8위인 1천220억달러로 합쳐 8천379억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일본이 같은 시점에 보유한 외환보유액 8천340억달러보다 약 39억달러 많은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머니 톡스' 인 이 시대에 국제금융시장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중국의 존재는 이미 위력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얘기다.
▲ 서울에 불어오는 거센 중국 바람= 서울외환시장과는 직접 관련은 없지만 이번주에 전세계 화상(華商)들이 모이는 제8차 세계화상대회가 다른 곳도 아니고 서울서 열린다. 중국 화교에 대해 전세계에서 가장 배타적인 한국에서 전세계 화상대회가 개최된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대회는 중국 뿐 아니라 동남아, 미주, 유럽, 아프리카 등 28개국 화상들이 참가한다. 내로라하는 중국계 거상을 비롯한 기업인 2천500여명이 총출동한다.
10일 개최되는 개막식은 KBS, SBS, MBN, 홍콩봉황TV에 의해 요란하게 생중계된다. 한국투자설명회에는 경제자유구역청 및 9개 지자체가 관광, 레저, 사회간접자본 등 18개 투자유치 프로젝트를 설명할 계획이다.
▲ 중국의 해외 대사관 중 서울이 가장 크다= 새로 짓게되는 한국 주재 대사관이 중국의 외교공관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건물이라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8일 보도했다. 서울 명동에서 중국대사관 건물 현판식을 가졌는데, 옛 대만대사관 건물을 헐고 신축된 중국대사관은 대지면적 3천544㎡에 25층짜리 최신식 건물로 사무실(1∼5층)과 외교관 숙소(6∼25층)로 사용된다고 한다.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청군의 주둔지였던 중국대사관 터는 한국전쟁 이후 대만 대사관이 차지했다가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중국대사관으로 바뀌었고 한중 교류가 폭증하자 2002년 옛 건물 철거와 신축공사가 시작됐다.
▲ 국내 최대 일산 차이나타운 건립= 한국에 부는 중국 바람은 차이나타운의 재건으로 한 묶음의 거대한 파도로 연결된다. 지난 7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한국국제전시장) 지원시설부지에서 착공식을 갖고 본격화됐다.
엠차이나타운㈜은 1단계로 1천200억원을 들여 4천여평에 지하 2층, 지상 3∼6층 (건축 연면적 1만5천여평)의 '파크 애비뉴'와 '칭화(淸華) 윈도'를 지어 2007년 3월 개장할 계획이다. 엠차이나타운은 2010년말까지 차이니즈 가든(6천500여평), 차이니즈 팰리스 및 게이트(1만여평)가 단계적으로 건설될 예정이다.
일산 차이나타운은 모든 시설이 완공되면 부지 면적 2만1천여평, 연면적 17만평 으로, 부지 면적 기준으로 인천 차이나타운(7천700여평)의 3배 가까운 국내 최대 규 모가 된다.
▲ 차이나타운의 추억= 필자의 고향인 지방 D市에도 차이나타운이 있었다. 'D市의 차이나거리'는 약령시 주변에 형성되어 한때 중국인만 1천여명이 살 정도로 번성했었다.
화교들은 식료 잡화, 소금, 곡물들을 팔고 D市의 약재 등을 구입하며 상당한 상권을 형성했었다. 그러나 1948년 한국 정부가 외국인에 대한 엄격한 제한을 가하기 시작하면서 역시 급격히 쇠퇴했다.
어릴 적 어른들 손을 잡고 약령시 주위의 '중국거리'를 걷다보면, 당시 배가 나온 중국인 주방장이 수타면을 뽑는 기술은 어린 필자에게도 감탄 그 자체였다.
황비홍이 '툭' 튀어나올 것 같은 누각과 붉은 간판들, 번성한 만두와 자장면집에는 항상 사람의 손톱과 머리카락이 음식에 나와 인육을 쓴다는 괴기야담이 왜 그렇게 끊이질 않았을까. 중화음식점의 배갈 향기와 화교 주인들의 중국어와 한국어를 같이 섞어 구사하던 모습도 묘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었다.
성인이 된 이후 방문했던 일본의 요코하마 차이나타운과, 마닐라 차이나타운, 맨해튼의 차이나타운, 파리와 런던의 차이나타운에서 맡은 냄새가 어릴 적의 바로 그 냄새라는 생각을 하며 중국과 화교에 대해 감탄했던 기억도 새롭다.
그러한 차이나타운의 추억이 이제는 전세계 화상과 중국의 거센 바람으로 변화하고, 위앤화의 위력으로 부활하는 것 같아서 흥분과 함께 긴장감이 몰려온다.
(연합인포맥스 금융.증권부장)
<저작권자 (c)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주의사항
※본 리포트는 한국무역보험공사가 외부기관으로부터 획득한 자료를 인용한 것입니다.
※참고자료로만 활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