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적 공세'…당국의 환율조작국 회피 대응법>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선영 김대도 기자 =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우리나라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끊임없이 확산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이를 피해보려는 외환당국의 대응도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회사채 만기와 맞물려 환율조작국 지정 여부까지 겹치면서 이른바 '4월 위기설'까지 불거지고 있어 당국의 입장을 곤혹스럽다.
당국은 최근의 이러한 심리를 '자기실현적 위기'에 따른 것으로 보고있다. 이에 시장 심리가 급격히 위축돼 실제 위기로 연결되는 상황을 맞닥뜨리지 않기 위한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환율조작국은 한국'이라고 보도한 영국의 유력 경제지인 파이낸셜타임즈에 강력한 항의의 뜻을 담은 서한을 보내고 외환시장에 대해 가급적 발언을 자제하던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구두개입'성 발언을 내놓은 것도 이러한 차원이다.
서울외환시장 참가자들은 당국의 최근 스탠스가 이전에 비해 다소 '공세적'으로 바뀌었다고 평가하면서도 실제 대응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스무딩오퍼레이션 수준의 '소극적' 대응이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셈이다.
◇인위적 절하 막을 개입 수단도 마땅치 않아
원화 강세에 대해 외환당국이 현재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많지 않다. 환시 참가자들은 17일 환율조작국 이슈가 불거진 상황에서 외환당국의 환율 하락에 대한 선택지는 제한적이라며 "매수 개입을 하거나, 대내외 리스크가 불거져 달러-원 환율이 반등하길 기다리거나 둘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직접적인 매수개입 여건은 그리 녹록치 않다. 이에 국민연금이 지난 17일 9억 달러 가량을 매수한 것도 외환당국 환시개입을 대체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다만, 원화 강세가 과도하게 지속될 경우 외환당국이 매도 물량을 제한하는 방법을 쓸 가능성은 열려있다. 수출업체 자금관리 임원들을 모아 네고물량을 줄일 방안을 찾거나 시중은행에 포지션체크를 통해 달러 매도를 제한하는 방식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시장 참가자들은 어느 쪽이든 외환당국의 적극적인 대응은 환율 조작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봤다.
한 은행 외환딜러는 "부총리 발언을 달러-원 환율 하락을 막겠다는 의미로 풀이했다"며 "원화 강세를 방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셀 물량을 조절한다면 이 역시 환율조작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외환시장 참가자는 "지난해 대미 무역흑자가 300억달러도 안되는 나라인데도 환율조작국 이슈에 적극 대응하지 못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탄핵 정국이 마무리되지 않으면서 정책 당국자도 누구 하나 책임지고 나서지 않는 듯하다"고 말했다.
외환당국은 최근까지 미국 환율조작국 지정 우려에 대해 한국은 일방향 개입을 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기본적인 스탠스는 양방향 개입인 셈이다. 그럼에도 미국 재무부의 환율조작국 지적이 지속된다면 외환당국의 대응책은 개입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즉, 달러-원 환율 하락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는 어려운 셈이다.
한 외환당국자는 "환율조작국 이슈가 최근 상황에서 그 이상 확장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더 이상 대응하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선언적' 경상수지 흑자 축소 대책 먹힐까
트럼프 행정부가 환율조작 프레임으로 유도하고 있지만, 본질은 미국의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에 있다.
중국과 독일, 일본, 멕시코 등 대미 흑자규모가 큰 국가를 중심으로 환율문제를 거론하면서 환율 절상을 유도하고, 통상압박을 통해 무역 불균형을 해소해 보려는 속셈이다.
미국이 교역촉진법(BHC법)상 관찰대상국으로 묶인 우리나라에 아직 환율 또는 통상문제를 직접적으로 꺼내지 않는 것도 대미무역흑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영향으로 해석된다.
작년 미국은 중국과의 교역에서 3천470억 달러에 달하는 상품수지 적자를 입었다. 전체 미국의 상품수지 적자 7천501억 달러의 절반에 육박했다.
이어 일본(689억 달러)과 독일(649억 달러), 멕시코(632억 달러), 아일랜드(359억 달러), 이탈리아(285억 달러), 한국(277억 달러), 말레이시아(248억 달러) 등의 순서였다.
북한 핵 이슈를 대응하기 위한 지정학적 중요성, 박근혜 탄핵 정국 등 국내 정치 현안에 엮이지 않으려는 스탠스도 한국을 환율조작 문제를 얘기하지 않는 이유가 되고 있지만, 정부로서는 대미 경상수지를 줄일 필요가 있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수 있다는 우려가 국내외 언론을 통해 계속 나오고 있고, 러시아 스캔들과 같은 자국내 정치 현안 및 대중국 무역갈등에서 해결책을 찾기 시작하면 트럼프 정부가 언제든지 한국을 거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런 점을 인지하고 근본적으로 대미 무역흑자와 경상수지 흑자를 줄이는 노력을 강조하고 있다. 외환당국의 한 관계자는 "환율 관련 우리의 노력에도 대미 무역흑자가 지속하는 한 미국의 압박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우리나라 무역흑자가 인구 고령화 등 구조적인 측면이 크다는 점에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빠른 속도로 소비성향이 낮은 노인층이 늘어나면서, 내수가 부진해지고 수입이 감소해 경상수지 흑자가 커지고 있는데 이를 해결하기가 어렵다.
단순하게 수입을 대폭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다. 정부가 꺼낸 카드도 인구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 흑자라는 점을 상세히 설명하고, 미국산 셰일가스 도입 등 원자재 교역확대 검토와 같은 선언적인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국책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환율 문제가 아닌 고령화때문에 경상수지 흑자가 나타나고 있는 것은 실증적으로 분석이 되지만, 미국이 그걸 받아줄지는 의문이다"며 "수출지원 제도를 점검해 통상 마찰 소지를 줄여나갈 필요도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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