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물 변곡점②] 높아진 시장 민감도, 조달 역량·타이밍 관건
금리·우크라이나 사태 등 불확실성 산재…신인도 굳건, 자율성 부족은 한계
<<※편집자 주 = '사상 최저 금리'를 연속 달성했던 한국물 시장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미국 저금리 기조가 막을 내리고 금리 인상기로의 전환이 눈앞으로 다가오자 국내 발행사들의 외화채 조달 역시 녹록지 않아진 모습입니다. 연초 효과가 사라진 한국물 시장을 돌아보고 2022년 시장 전망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서울=연합인포맥스) 피혜림 기자 = 올 초 한국물(Korean Paper) 딜의 성패를 가른 건 '타이밍'이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Fed)의 긴축 정책을 둘러싼 움직임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등이 더해지며 발행 시기를 잡기가 녹록지 않아진 결과다.
3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올 1~2월의 경우 한국물 발행사 중 일부는 불안감을 피해 북빌딩을 연기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기획재정부가 부여한 윈도우(window)에 따라 시기 조정이 제한된다는 한국물의 한계 등이 부각되기도 했다.
다만 꾸준한 발행을 통해 쌓아온 노하우와 높은 신인도 등을 바탕으로 모든 발행사가 조달을 성사시켰다.
◇미국 움직임에 '출렁', 우크라이나 더해지자 '셧다운'도
KDB산업은행은 납입일 기준 지난달 24일 15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본드(SEC-Registered)를 발행했다. KDB산업은행은 한국 대표 발행사 중 한 곳으로, AA급 우량 국제 신용등급과 국책은행의 지위를 바탕으로 한국물 입지를 다져왔다.
하지만 KDB산업은행조차 올 초 조달은 녹록지 않았다. 계획했던 북빌딩 직전 영업일에 미국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40년 만에 최대폭으로 오른 수치로 발표된 탓에 금리 인상 부담감이 커졌다. 뒤이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우려가 본격화되며 시장 변동성이 극대화됐다.
결국 KDB산업은행은 시장 불안감을 피해 시기 조정에 나섰다. 지난달 14일께에서 16일로 북빌딩 일정이 변동된 배경이다.
시장은 여전히 녹록지 않았다. KDB산업은행은 투자 수요 및 금리 조건 등을 반영해 투자자 모집에 나섰던 10년물 그린본드(green bond) 발행을 철회하기로 했다. 북빌딩에서 제시했던 트랜치(tranche)를 배제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로, 달라진 시장 분위기를 가늠케 했다.
조달 어려움은 KDB산업은행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올 초 미국 연준의 조기 긴축 가능성 시사 이후 한국물 발행사들은 시장을 예의주시 해야 했다. 북빌딩만 나서면 주문이 몰리던 지난해까지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연준 행보 및 미국 경제 지표 발표 등에 따라 글로벌 채권 시장은 출렁였다. 미국 국채금리가 급등하자 주문 확보는 물론 북빌딩 진행 자체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다.
한화생명과 기아 역시 올 초 북빌딩을 두고 고심이 깊었던 발행사다. 한화생명과 기아는 각각 올 1월과 2월 시장을 찾아 한국물 조달을 성사시켰다. 다만 미국 국채금리가 급등한 탓에 두 곳 모두 당초 계획보다 하루가량 북빌딩 시기를 미뤄야 했다.
한화생명 북빌딩의 경우 당일 미국에서 투자자 모집에 나선 발행사가 단 한 곳도 없었다.
기아 역시 미국 1월 비농업 고용지표 발표로 변동성이 극대화된 탓에 각국의 발행 행렬이 멈춘 상황이었다. 기아는 미국 고용지표 발표 후 글로벌 채권시장 내 첫 투자등급 조달물로 시장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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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동성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와 함께 더욱 극대화되고 있다. 한국물 조달을 준비하고 있는 발행사들의 고민이 더욱 커지는 배경이다.
한국물의 경우 135일룰 등으로 달러채 조달 비수기에 접어들었다는 점에서 당장 발행사들의 피해는 미미한 실정이다. 135일룰에 따라 발행사들은 미국 시장에서 채권을 찍을 때 재무제표가 작성된 시점에서 135일 이내에 납입을 비롯한 모든 상장 일정을 마쳐야 한다.
반면 글로벌 최대 시장으로 꼽히는 미국의 경우 셧다운 기간이 지속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지난달 23일 이후 3영업일 여간 조달 명맥이 끊긴 후 이달 1일에서야 6곳의 발행사가 시장을 찾은 것으로 전해진다.
◇대외 신인도, 글로벌 조달 역량 부각…유연성 부족은 한계
한국물의 경우 AA급 우량 국가신용등급과 조달 시장에서 쌓아온 역량 등을 바탕으로 타 국가 발행물 대비 비교적 선방한 모습을 보였다.
연초 한국수출입은행이 30억 달러의 글로벌본드를 찍어 역대 최대 조달 기록을 갈아치운 것을 시작으로, 시장 변동성 속에서 발행 기회를 포착해 모든 발행사가 조달을 성사시켰다.
한국수출입은행 보증으로 사무라이본드 포문을 연 대한항공은 물론 한국석유공사와 우리은행, 현대캐피탈, 신한카드, 한화생명, 기아, KB국민은행, KDB산업은행 등 다양한 분야의 발행사가 연초 조달을 성사시켰다.
현대캐피탈과 기아의 경우 미국 투자 수요 등을 바탕으로 시장 변동성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투자 수요 위축으로 주문 확보가 녹록지 않아진 상황이었지만 적극적인 현지 진출로 쌓아온 미국에서의 신뢰도가 이를 상쇄했다.
한화생명의 경우 한국 보험사 후순위채만의 강점을 부각해 어려움을 돌파했다.
국내 보험사는 보험업법 등 관련 법상 외부 차입이 제한돼 있어 선순위 차입이 없다. 사실상 후순위채가 선순위채만큼의 상환 안정성을 갖춘 셈이다. 반면 후순위채 형태라는 점에서 투자자는 상환 안정성 대비 높은 금리를 누릴 수 있다.
한화생명은 이 점을 부각해 변동성을 극복했다. 7.5억 달러 규모의 조달과 자본확충은 물론, 국내 보험사의 달러화 후순위채 발행의 물꼬를 틀 수 있었던 배경이다.
다만 시장 변동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만큼 한국물 조달 전망은 여전히 어둡다. 각종 이슈에 조달 시장이 급격히 출렁이고 있지만, 한국물 발행사들의 자율성은 제한되고 있다.
한국물 발행사는 북빌딩 전 기획재정부로부터 '윈도우'를 받아야 한다. 이후 통상 이틀가량으로 부여되는 윈도우 일정에 맞춰 북빌딩을 진행해야 한다.
윈도우는 외환위기 이후 기재부가 외화 부채 관리에 사활을 걸며 시작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국내 발행사 간 경쟁을 제한하는 등의 긍정적 기능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윈도우가 발행사들의 유연성을 저해한다고 지목하고 있다. 시장 변동성 극대화로 조달 타이밍이 중요해진 데다 한국물에 대한 신인도가 제고된 만큼 제도적 측면에서도 달라진 시장 분위기에 발을 맞춰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phl@yna.co.kr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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