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강달러 책임론-①]국민연금 이례적 공개 반박…"우려 과도하다"
달러 매수심리 쏠림·사재기 우려도…"공공성 원칙 따라"
(서울=연합인포맥스) 진정호 기자 = "국민연금은 시장 여건을 고려해 탄력적으로 해외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기금 자산 912조원에 이르는 국민연금은 덩치가 큰 만큼 입도 무겁다. 웬만한 사안에 대해선 언론에서 보도가 여럿 나와도 별달리 반응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 국민연금이 외환 전략과 관련해 "탄력적으로 투자하고 있다"고 지난달 공개적으로 보도자료를 낸 것은 그만큼 해명할 부분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올해 달러-원 환율이 1,300원선을 상향 돌파하는 과정에서 '국민연금 책임론'이 시장과 언론에서 회자됐는데 국민연금은 이례적일 만큼 뚜렷한 어조로 반박하고 나섰다. 국민연금은 당국과의 의견충돌로 번지는 것은 경계하면서도 할 말은 하겠다는 입장인데 이를 두고 당국과 시장에선 의견이 이어지고 있어 여러 주체의 목소리를 조금 더 들어봤다.
◇달러 매수 응집력에 대한 우려
국민연금은 앞서 기금이 원화 약세를 부추겼다는 지적에 대해 과도한 해석이라고 선을 그었다. 최근 달러-원 환율의 상승은 글로벌 달러화 강세의 결과일 뿐이며 기금이 달러-원 현물환 일평균 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대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실제 달러화는 올해 들어 대부분의 주요 통화 대비 초강세를 보였다. 달러인덱스는 작년 말 95.64에서 지난달 말 109.29까지 약 14포인트 치솟았다. 이는 2002년 9월의 109.75 이후 약 20년래 가장 높은 수치다. 다른 통화와 비교해도 상반기 말까지 달러화 대비 엔화는 -15.2%, 유로화는 -7.8%, 파운드화는 -10%의 변화율을 기록했다.
다만 외환당국은 국민연금 물량의 응집력을 우려하는 반응을 보였다. 거래량을 일평균 내면 1%대 수준이겠지만 한 번에 물량이 나올 때 규모가 크면 시장에 충격이 클 수 있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간밤에 미국 증시가 폭락할 때 국민연금이 해외투자에 나서면 국내장은 거시요인과 수급요인 모두에서 환율 상방 압력에 노출된다"며 "개장 전 마(MAR)시장에서 물량을 소화하더라도 투심을 한쪽으로 쏠리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당국과의 의견 충돌은 아니라면서도 "기금의 해외자산 매수는 일별로 비교적 잘 분산돼 있고 시장에 미칠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부분의 외환 거래는 마 시장에서 거래한다"며 공공성의 원칙에 따라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장을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은 외환뿐만 아니라 주식 등 다른 투자자산도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고자 개장 전후 거래를 활용하는 전략을 쓴다.

◇사재기 의혹 반박…"외화 단기 한도 있다"
국민연금이 달러화를 저가 매수로 사재기하면서 환율이 튄 것 아니냐는 일부 의구심에 대해서도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입장을 전했다.
국민연금은 "대규모 환손실에 대비한 수단으로 제한적 범위 내에서 전술적 환헤지를 실시할 수 있다"며 "실제 올해 들어 일정 환율 이상에선 해외투자의 일부에 대해 환헤지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은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가 전략적 환헤지 비율을 조정하고 기금운용본부는 전술적 외환 익스포저를 관리하고 있다. 환율 변동에 따라 기금 포트폴리오의 수익률 하락을 방어하는 게 목적이다. 외환 파생상품을 활용해 허용범위(총 외환 익스포저의 ±5%) 내에서 익스포저 규모를 조정한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외화단기자금 보유 한도도 따로 설정돼 있고 달러화가 싸다고 미리 담아두거나 비쌀 때 현물시장에서 내다 파는 방식으로 매매할 수 없도록 규정을 두고 있다"며 단기 환차익을 목적으로 거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전했다.
국민연금은 2019년 외화단기자금 한도를 기존 분기별 일일평균잔액 3억달러에서 6억달러로 상향한 바 있다. 외화단기자금은 해외투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달러화로 일시 보유하는 현금성 자산이다.
다만 국민연금은 향후 해외투자 규모가 늘어날 것을 고려해 외화단기자금 한도를 12억달러까지 단계적으로 늘릴 예정이다. 또 국민연금은 2025년까지 해외투자 비중을 전체의 55% 수준까지 확대할 계획인데 이는 향후 3년간 약 1천억달러가 신규로 집행된다는 의미다. 이를 고려하면 중장기적으로도 국민연금은 외환시장의 핵심 달러화 매수 주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연금이 외환위기 초래할 수도" 의견도
일각에선 국민연금의 환오픈 전략이 자칫 외환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최근 유경준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주최한 외환위기 대응 방안 토론회에선 국민연금의 100% 달러화 환오픈 전략이 실패하면 우리나라는 외환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김인철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토론회에서 "우리나라 4천600억달러의 외환보유고에서 달러화 현금 비중(한국은행 보유분)은 5%가 채 되지 않는다"며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해외투자에 실패하면 한은의 달러화 현금은 금방 고갈될 것이고 현물외환시장은 임시 폐장되는 한편 우리나라는 즉각 외환 위기를 맞게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인철 교수는 "정부가 국민연금 같은 기관투자자 전략에 관여할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때 기재부와 논의해 현물외환시장에 격한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하고 달러화 현금 비중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연금은 이같은 주장에 대해서도 우려가 과하다는 입장이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우리나라 외환보유고의 대부분은 유동성이 매우 높은 선진국 국채로 구성돼 있다"며 "기금의 경우도 잘 분산된 해외 포트폴리오에 투자하고 있고 선진국 국채 위주로 구성된 해외채권 안정형을 갖춰 위기시 유동화 가능한 자산을 상당 규모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해외채권을 '안정형 자산'과 '수익형 자산'으로 분류하고 있다. 위기시 안정형 자산을 매각해 유동성을 확보하는 전략이다.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지침을 보면 해외채권의 역할이 잘 드러난다.
기금운용지침의 자산군별 투자허용범위에 따르면 해외채권의 전략적 자산배분(SAA) 허용범위는 ±0.5%, 전술적 자산배분(TAA) 허용범위는 상단이 +2.0%, 하단은 -4.0%다. 총 허용범위는 상단이 +2.5%, 하단은 -4.5%다. 국내주식과 국내채권, 해외주식은 투자 허용범위 상·하단이 같은 반면 해외채권만 하단이 더 넓은 것이다.
SAA는 자산 규모가 일시 가격 변동으로 미리 설정한 자산별 목표비중을 벗어나더라도 자산을 팔지 않고 보유할 수 있도록 용인한 한도다. TAA는 펀드매니저가 추가 수익 또는 손실이 예상될 경우 자체 판단에 따라 목표 비중을 이탈할 수 있게 허용한 범위다.
해외채권의 TAA 범위가 상단보다 하단이 더 넓다는 것은 위기시 해외채권 비중을 더 줄여도 좋으니 외화를 그만큼 더 확보하라는 뜻이다. 그만큼 해외채권은 유동성 확보 수단으로서 의미가 있다.

jh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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