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지배구조 개편 논의 재개되나…자본硏 "기금운용공사 세워야"
20년 가까이 해묵은 논쟁…연금 개혁 추진력이 관건
(서울=연합인포맥스) 진정호 기자 = 윤석열 정부가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로 연금 개혁을 천명한 가운데 국민연금 기금운용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다시 커지는 분위기다. 기금운용본부를 기금운용공사로 독립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20년 가까이 제기되고 있지만, 공단의 전주 이전 등 여러 이슈로 묻혔는데 전방위 연금 개혁을 구상하는 지금이야말로 지배구조를 바꿀 호기라는 인식이다.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자본시장연구원의 남재우 연구위원은 최근 '국민연금 장기재정추계와 기금운용체계 개편'이라는 보고서에서 운용수익을 안정적으로 높이기 위해 기금운용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제언했다.
◇"해외 투자 늘려야 하는 지금이 적기"
남 위원은 "현재 기금운용체계는 적립금 규모가 160조원 수준이고 국내채권 중심으로 자산구성이 단순했던 2005년에 설계된 그대로"라며 "운용규모가 900조원이 넘는 현재는 자산구성이 당시와 비교해 고도로 다변화했고 그만큼 운용전략과 의사결정 체계도 변해야 하지만 비효율적인 기금운용 지배구조로 문제점이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독립성이 침해되는 사례로 남 위원은 국내주식 비중축소에 대한 논란을 꼽았다. 국민연금은 국내주식 비중을 장기적으로 줄일 계획이지만 국내 증시를 부양해야 한다는 정부 압력이 지속되고 일부 개인투자자의 집단행동 등으로 기금의 독립성이 저해되고 있다는 것이다.
남 위원은 "투자 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전략적자산배분(SAA)인데 국내투자 비중에 대한 정부 및 시장의 압력은 중장기자산배분의 제약요인"이라며 "이런 문제는 400조원 규모의 국민연금 해외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이라 할 수 있는 환정책에도 동일하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는 방안의 하나로 기금운용본부를 공사 또는 공기업 형태로 독립하는 방안이 제안된다. 기금운용의 효율성과 독립성을 높이려면 지배구조를 민간전문가 집단으로 재편하는 것이 최선이고 그런 만큼 하부 집행조직도 독립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남 위원에 따르면 공적연기금 전문운용기관으로 신설되는 가칭 '국민연금기금운용공사'는 감독위원회 성격의 기금운용위원회(board)와 공사의 집행이사회를 포괄하는 조직이 돼야 한다. 독립된 전문운용기관은 탄력적으로 조직을 구성하거나 운영할 수 있어 국민연금이 해외법인을 적극적으로 확대할 수 있게 된다. 또 대체투자를 포함한 이질적 자산에 대해 자회사 형태의 분사 등으로 효율성을 높일 수도 있다. 동시에 민간 시장과 경쟁할 수 있는 채용 및 보상 체계를 갖춤으로써 기금운용에 가장 핵심적인 역량 있는 운용 인력의 확보도 수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남 위원은 "캐나다 국민연금(CPP)의 전문운용기관으로 출범한 CPPIB와 네덜란드의 공적연기금 전문운용기관인 APG의 사례를 참조할 수 있다"며 "이들은 전문성이 강조된 공적연기금 전문운용기관이 안정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추구해 기금운용의 효율성을 높이면서 연금제도의 재정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CPPIB는 지난 6월 말 기준 운용자산이 5천230억달러(약 700조원)에 달한다. 그럼에도 지난 10년간 연평균 수익률이 10.3%에 이를 정도로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남 위원은 "거대 적립금이 단일 기관으로 운용되면 비효율성에 대한 우려가 나오지만 국민연금의 운용 규모는 분할보다는 오히려 단일 조직을 꾸려 규모의 확대가 요구된다"며 "성공적인 해외투자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투자의 현지화인데 준정부기관이라는 조직적 한계로 어려움을 겪는 만큼 전담운용기관의 설립은 획기적인 진전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년 가까이 논의만…이번엔 결론날까
국민연금 기금본부의 공사화는 해묵은 논쟁거리다. 2004년 당시 정부가 기금운용공사 설립안을 처음 제시했고 2007년에도 보건복지부가 기금운용체계 개편안을 내놓은 바 있다. 두 방안 모두 기금운용공사를 설립하고 기금운용위원회를 민간독립상설기관으로 만드는 한편 기금운용위원장을 보건복지부 장관이 아닌 민간위원장으로 바꾸는 지배구조 개편이 핵심이었다. 이를 골자로 정부 성향에 따라 기금운용위원에 가입자 대표를 더 배치할 것인지 금융전문가를 더 넣을 것인지 등을 두고 논란이 오가곤 했다.
하지만 기금본부 지배구조 개편은 연금제도 개혁이라는 큰 그림과 함께 다뤄져야 하는 사안인데 각 정부가 매번 개혁 작업을 미루면서 기금본부 공사화도 20년 가까이 해결되지 못한 채 이따금 얘기만 나오는 실정이다.
이와 별도로 공사 신설의 실효성에 대한 쟁점도 여전히 남아 있다. 공사화를 한들 수익률이 비약적으로 개선되겠느냐는 의구심과 함께 독립성이 생각만큼 보장되겠느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2015년 국회입법조사처가 발표한 '국민연금 기금운용공사 설립 관련 쟁점과 과제' 보고서를 보면 공사 설립에 반대하는 측은 공사화가 수익률의 증가를 담보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국민연금은 수익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추구하는데 수익성에 중점을 두는 해외 주요 연기금과 비교해 장기적으로 보면 수익률이 결코 뒤처지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3년까지 국민연금의 평균 수익률은 6.33%였다. 캐나다 CPPIB(5.22%)나 네덜란드 ABP(5.29%), 노르웨이 GPFG(4.99%) 등과 비교해 오히려 더 앞섰는데 이는 안정성도 고려한 결과라는 게 공사화 반대파의 분석이다.
반대 측은 또 기금본부 공사화의 모델인 한국투자공사의 경우도 해외자산에 집중 투자하고 있지만, 국민연금보다 수익률이 확연히 높지 않다는 점도 지적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국민연금과 한국투자공사의 해외채권 연평균 수익률은 각각 6.61%와 4.80%였다. 국민연금이 오히려 앞섰다.
공사화로 기금운용의 독립성이 보장된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도 이어지고 있다.
공사화 반대 진영은 기금위의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엔 동조하면서도 공사 설립으로 정부의 입김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이미 연기금을 금융시장의 '구원투수'로 보는 인식이 팽배한데 시장이 흔들리면 기금운용공사가 나서야 한다는 압력이 정부와 시장 양측에서 계속 들어올 것이라는 지적이다.
연기금 업계 관계자는 "기금본부든 기금공사든 국민연금기금이 시장의 안전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이미 너무 퍼져 있다"며 "급락장엔 구원투수로 나서라는 주문이 쏟아질 것이기 때문에 온전히 독립적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jh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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