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약무효' 외환시장 무얼 해야 하나…전직관료·베테랑들의 조언
(서울=연합인포맥스) 오진우 기자 =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이 1,430원도 상향 돌파하는 등 속수무책으로 오르면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정부 당국이 일련의 수급 안정화 조치를 잇달아 내놓고 추가 대응도 시사하고 있지만, 효과가 가시화하지는 않는다.
외환 및 금융시장의 오랜 전문가들은 27일 그럼에도 수급 개선에 나선 당국의 정책 방향이 유효한 만큼 그 기조를 유지하는 가운데 보다 진전된 안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또 국민연금이 해외투자 목표 비중에 얽매이지 않고, 국내 자산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등 더 유연한 움직임을 보일 필요도 있다고 주장했다.
환율 급등에 대응한 큰 폭의 금리 인상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외건전성은 양호…수급 개선 방향 바람직
달러-원이 금융위기 이후 경험하지 못한 폭과 속도로 오르고 있지만, 위기와는 다른 점도 분명하다.
근본적으로는 과거에는 대외 순채무국이었던 데서, 지금은 순채권국이다. 대외순자산은 7천억 달러를 넘는다. 단기 스와프포인트 등 외화자금시장도 아직 안정적이다.
외국계은행의 트레이딩 헤드는 "지금 우리나라는 과거와 같은 외환위기가 발생할 수가 없는 구조"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경제부처 장관을 역임한 전직 고위 관료는 "환율 급등이 물가 상승을 더 압박하고, 수입 기업의 어려움을 가중하는 등 국가 경제에 미칠 부작용이 큰 것도 분명하지만, 어느 대외지표를 봐도 과거의 위기가 되풀이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과도한 공포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환율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결국 최근 당국이 조치를 시작한 것과 같이 외환시장의 수급 구도를 바꾸려는 노력이 적절하다는 의견이다.
당국은 국민연금과 스와프를 통해 연말까지 현물환 매수 수요는 덜어냈다. 중공업체의 선물환 매도 물꼬도 텄다. 한국가스공사 등 다른 주요 매수 주체의 현물환 매수를 억제하는 정책 등도 추가로 나올 전망이다.
장기적으로는 내국인의 해외투자자산을 국내로 회귀하도록 유인할 수 있는 정책도 고민 중이다. 해외투자 양도소득 과세에 대한 한시적인 면제 등의 방안이 가능한 수단으로 거론된다.
한 전직 금통위원은 "해외투자분에 대한 한시적 세제 혜택과 보험사나 운용사 등 기관투자자들이 국내 투자를 확대할 수 있는 유인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면서 "중요한 것은 지엽적인 대책을 하나씩 내놓는 것이 아니라 실제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정치하게 완비한 후 정책을 발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과세 강화 등 해외 투자를 억제하는 정책보다는 배당 제도 개선 등 국내 투자 유인을 확대하는 정책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전문가들은 또 유류세 인하 등 앞서 도입된 고유가 지원책도 고유가 상황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짚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에너지 소비의 절약 등 전국민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가격 원리가 작동토록 해 수요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연금, 국내투자 확대 등 유연성 필요 주장 빗발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한은과의 스와프 등 미봉책 외에 투자 전략 자체에서 더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주문도 내놨다.
단적으로 이번에 발표된 외환당국과 스와프는 올해 외화수요를 내년으로 이연하는 땜질 처방인 한계도 있다. 현재 발표된 구조로는 내년에는 외화수요가 올해 사지 않은 것만큼 더 늘어난다.
해외 투자기관의 한 딜러는 "국민연금의 막대한 해외투자는 우리 수출기업이 달러를 활발히 들여올 때 유지될 수 있는 구도다"면서 "현재는 이게 지속 가능하지 않은 상황인데, 기존에 설정된 해외투자 목표치 등에 얽매여 해외투자를 지속한다는 게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국내 금리도 상당히 높다"면서 "해외채권 대신 국내 채권 투자를 늘리겠다는 정도만 해도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직 금통위원도 "보유하고 있는 외화가 있어 해외투자를 한다는 것이야 이상할 게 없지만, 현재 환율 수준에서 구태여 달러를 매수해 해외투자를 한다는 것은 수익률을 생각한 것이라기보다는 목표치에 맞춘 기계적인 운용인 것 같다"면서 "만기 도래 해외채권을 재투자하지 않고 원화채에 투자했다가 환율이 안정된 이후 나가는 방향 정도는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환율 대응 금리 인상·고강도 개입 두곤 엇갈린 의견
당국이 고강도 실개입으로 환율 방어에 나서야 할지, 한국은행이 큰 폭 금리 인상을 단행해야 할지를 두고는 의견이 갈린다.
당국 개입을 두고는 일방적인 심리의 쏠림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고강도 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현시점에서는 효과가 제한적이며 하더라도 달러 강세가 끝물이란 판단이 들 때 해야 한다는 시각이 맞선다.
전직 한 베테랑 딜러는 "당국이 개입을 할 때는 대규모로, 단호하고, 공격적으로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은행권의 딜러도 "당국의 역할이 중요한 시점이지만, 고강도 개입의 효과가 있을지는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환율 상황을 고려해 10월 빅스텝(50bp) 금리 인상을 시사했지만, 이 효과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현 상황에서는 큰 폭 금리 인상이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 심리를 망가뜨려 오히려 환율에도 역효과를 낼 수 있는 탓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외국인의 채권투자보다 주식투자가 환율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자칫 큰 폭 금리 인상으로 증시가 더 무너지면 환율은 더 상승할 가능성도 크다.
해외기관의 딜러는 "지금은 전반적인 시장의 심리를 안정하는 것이 더 중요한 때"라면서 "금리 인상으로 환율 상승을 억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jwo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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