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연의 뉴욕전망대> 월가가 '낙수효과'를 외면한 까닭은
(서울=연합인포맥스) '낙수 효과(trickle-down effect)'는 월가에서도 냉대를 받았다. '제2의 대처'를 표방하는 리즈 트러스 영국 신임 총리의 기업·부유층 감세 중심 경제정책, 이른바 '트러소노믹스'가 파운드화와 영국 국채(길트) 가치가 폭락하는 '길트 탠트럼(발작)'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 월가는 왜 낙수 효과를 외면했을까
영국의 마가릿 대처 전 총리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1980년대에 주창했던 신자유주의의 핵심 개념인 낙수 효과가 왜 지금은 월가 등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외면을 받게 됐을까.
낙수 효과는 상위 부유층의 증대된 소득이 저소득층에 흘려내려 갈 것이라는 부의 이전 효과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1980년대 영국과 미국에 나란히 도입된 이후 상위 부유층의 소득 증대를 위한 부자 감세는 이른바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의 기본 정책이 됐다. 그러나 이 정책은 결국 양국의 재정 악화로 이어졌는데 중산층이 몰락하면서 세원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월가 등 글로벌 금융시장은 바로 이 대목에서 낙수 효과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길트 수익률이 폭등하면서 파운드화 가치가 급락한 지난달 말의 이른바 '길트 탠트럼'이 대표적인 경우다.
연합인포맥스(화면번호 6532)에 따르면 영국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트리클다운을 반영한 미니 예산안이 발표되기 직전인 지난 16일 3.13%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후 영국의 재정에 대한 우려가 불거지면서 지난 5일에는 4.03%에 호가됐다. 불과 2주 사이에 90bp나 수익률이 폭등하면서 길트 가격이 폭락했다는 의미다.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 나서 장기채에 대한 매입 정책을 발표했지만, 월가 등 글로벌금융시장은 불안한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파운드화도 이날 1.30% 하락한 1.13262달러를 기록하며 감세 정책을 섣부르게 발표한 데 따른 수업료를 혹독하게 치러야 했다.
◇ 트리클다운 40년에 가난해진 미국
미국의 경우는 지난 40년간 신자유주의 노선을 고수한 탓에 소득 양국화가 크게 심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전체인구의 12%인 4천만명이 빈곤층으로 분류됐다. 이 가운데 1천850만명은 절대빈곤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아동의 17.5%에 해당하는 1천300만명의 어린이들은 절대빈곤을 경험하고 있다. 중위소득의 절반 이하인 상대적 빈곤층 비중은 OECD 국가 가운데 최악인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의 아동 가운데 20%는 정부의 보조금 지급에도 상대적 빈곤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안전망이 다른 나라에 비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탓이다. 핀란드는 이 비중이 3.6%에 불과하다.
가브리엘 주크만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 교수가 지난 2019년에 발표한 '부의 불평등(Global Wealth Inequality)' 보고서(https://gabriel-zucman.eu/files/Zucman2019.pdf) 에 따르면 미국 인구의 0.00025%인 상위 400명의 부는 1980년대 초보다 3배 증가했다. 하위 60%를 차지하는 1억5천만명의 부는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87년 5.7%에서 2014년에는 2.1%로 줄었다. 주크만 교수는 상위 400명이 3달러를 소유하고 있다면, 하위 1억5천만명은 다 합쳐야 2달러를 소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400명이 1억5천만명이 합친 것보다 50%나 더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밀턴 프리드먼식 신자유주의는 월가도 외면
자본주의 견인차인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지난 40여년간 맹위를 떨쳐왔던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은 월가에서도 이어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프리드먼식 자유주의 자본주의가 더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반성이 본격화된 계기가 됐다. 글로벌 대형 은행은 이익을 자신들이 독차지하고 부실에 따른 책임을 사회 전체로 전가하면서 공분을 샀다. 기업들이 주주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탐욕적인 활동을 강화하면서 지구온난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우려도 강해졌다.
지난 2020년 당시 '기업목적시험(The Test of Corporate Purpose:TCP)'에 의해 실시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 기업의 89%는 프리드먼의 주장에 더는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주의 76%도 이제는 프리드먼의 발언을 금과옥조로 여기지 않는 것으로 집계됐다,
TCP는 코로나 19 팬데믹(대유행)과 불평등에 따른 사회불안기에 기업의 활동을 평가하기 위해 지난 2020년 결성됐다. TCP는 이해관계자를 우선하겠다는 기업들의 최근 선언과 공헌을 평가 대상으로 삼는다.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회장인 래리 핑크는 2018년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Business Round Table)에서 "기업은 모든 이해관계자(stakeholder)에게 이익이 되도록 운영돼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은 미국 200대 대기업 최고경영자로 구성된 협의체로 한국으로 치면 전국경제인 연합회 같은 이익단체다.
미국식 주주 자본주의의 심장부에서 밀턴 프리드먼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기를 든 셈이다. 래리 핑크와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의 이론적 배경은 낙수 효과 대신 바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다. 주주는 물론 종업원, 고객, 지역 공동체 등 모든 당사자를 위해 기업이 공헌해야 한다는 게 핵심 개념이다. 더불어 살기 위한 일종의 수정 자본주의를 모색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조 바이든도 트리클다운 주장에 진절머리 난다 성토
지금 미국을 이끄는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도 자본주의 진영의 모범생이었던 미국의 중산층들이 지난 30년 동안 철저하게 붕괴했다는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올린 한 트윗을 통해 "낙수 효과 경제에 진절머리가 난다. 이는 결코 작동한 바 없다"며 "우리는 경제의 중하위 계층으로부터 경제를 세워나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두 정상의 회담을 하루 앞두고 나온 해당 트윗은 많은 억측을 불러일으켰다.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영국이나 트러스 총리를 겨냥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재원 조달 대책도 없는 감세 정책을 믿고 해당 국가의 채권을 사줄 투자자는 없다는 게 길트 탠트럼의 교훈이다. 낙수 효과는 이제 월가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개념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의미다.(뉴욕특파원)
ne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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