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여전채 생채기中] 한전 숙제 아냐 '높은 곳에서 풀어야'
  • 일시 : 2022-11-07 09:35:02
  • [한전·여전채 생채기中] 한전 숙제 아냐 '높은 곳에서 풀어야'



    (서울=연합인포맥스) 이재헌 기자 = 정부가 서울채권시장 안정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한국전력공사의 크레디트시장 악영향에 대한 대책이 약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처음에는 가격이 싸니 좀 살만했다는 한국전력공사 채권(한전채)은 '패닉'을 부추기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적자가 해결될 기약이 없어 산 넘어 산이다.

    '왜 하필 이때일까'라며 한전 탓만 하면 안 된다는 채권시장 참가자들의 목소리가 제기된다. 정권 교체기마다 달라지는 공기업의 재무관리 행태와 시장을 등한시한 정치권의 막무가내식 접근법이 더 문제라고 지적한다.

    ◇ 이제야 한전 주목…연초 발행 6조, 고무줄 발행 역사

    7일 연합인포맥스 채권 발행 만기 통계(화면번호 4236)에 따르면 올해 중 월별 기준으로 한전채의 발행이 가장 많았을 때는 지난 2월이었다. 당시 한 달에만 4조2천400억원이 쏟아졌다. 월 기준 한전 설립 이래 최대다. 올해 1월에 1조8천800억원을 발행했으니 연초에만 6조원 넘는 한전채가 시장에 충격을 줬다.

    한전은 지난 2010년 이래 작년까지 연평균 한전채 발행 규모가 4조9천억원 정도다. 평년 같았으면 1년 동안 진행될 발행이 두 달도 채 안 된 스케줄로 몰린 것이다. 연초부터 채권시장에서 한전을 두고 뒤숭숭한 분위기가 예고됐던 이유다.

    지금은 한전채가 너무 많이 나와서 탈이지만, 한때 시장에서 자취를 감춘 적이 있었다. 지난 2015~2016년에는 발행이 '0'이었다. 이후에도 발행이 만기 물량보다 적어 한전채 잔액은 20조원 밑으로 들어갔다. 현재는 50조원이 훌쩍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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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기간산업을 담당하는 굴지의 공기업이 '고무줄' 자금조달로 불확실성을 키우는 셈이다. 당시 채권 발행이 필요치 않자 시장과의 소통이 대폭 약해졌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채권시장에서의 위상 대비 초라한 모습이다.

    투자은행(IB) 관계자는 "일반적인 기업이라면 당장 자금조달의 필요성이 크지 않아도 금리가 낮거나 재무 상황이 좋을 때 장기채 발행을 시도하거나, 크레디트를 확인하는 차원에서라도 차환 등을 꾸준히 진행하는 것이 순리"라며 "한전의 채권 발행이 멈추면서 실무자들과 소통 빈도가 거의 없어져 노하우도 쌓지 못하고 시장 소통 능력도 결여된 것이 지금 와서 탈이 난 것이라고도 본다"고 꼬집었다.

    고공행진 중인 한전채의 최근 발행금리는 2~3년물이 5%대 후반이다. 시계를 작년 이전으로 돌리면 만기 10년 이상의 한전채를 2~3%대에 발행할 수 있다.

    ◇ 공기업 쥐락펴락한 정치권, 금융시장 생각 못 해

    한전채 발행이 이토록 후진적인 까닭은 근본적으로 정치의 문제라는 말이 나온다. 정권 교체 때마다 공기업을 대하는 태도가 180도 달라지는데 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의 안정성을 누가 챙기겠냐는 것이다.

    어느 정부 때는 획일적으로 공기업의 재무 건전성이 화두가 되면서 부채 축소에 혈안이 된다. 다시 정부가 바뀌어서는 재정 확대에서 한계가 보이자, 국가부채 통계를 피해갈 수 있는 공기업 조달이 비대해지는 식이다.

    특수목적 법에 따라 나오는 공사채가 채권시장의 자금을 빨아들이는 것은 당연한데 이게 채권시장에서 공기업의 안일함을 불렀다고 시장참가자들은 분석한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저금리인 탓에 표면적으로 생채기가 드러나지 않았던 것에 불과하다고도 분석한다.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그동안 저금리로 글로벌 유동성이 풀리면서 외국인이 국내 채권시장에 많이 들어왔기에 버틴 것"이라며 "국채 발행은 코로나 이후 역사상 최대, 올해 한전채 최대, 은행채 최대라면 개인들의 채권 수요가 폭발하지 않는 이상 국내 기관투자가만으로는 상식적으로 소화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채권시장은 한전채로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낄 때 오히려 정치의 희생양이 돼버렸다. 연초 이슈를 대선이 휩쓸면서 당국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도리어 추가경정예산안(추경) 가능성으로 금리가 급등했다. 추경이 최대 100조까지 거론돼 우리나라 채권만 글로벌 대비 약했다.

    채권시장의 경색을 부른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사태 역시 정치권에서 촉발됐다. 이제 당국이 한전채 발행 대신 은행 대출로 돌리려고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이 되면 실질적으로 채권시장에 도움이 되진 못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당장 한전채 발행 한도를 늘려서 급한 불을 꺼야 한다는 대안이 정치권에서 나오니 결국 시장에 해결책을 떠맡긴 형국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로도 전기요금 인상 등 근본적 해법은 언제 나올지 미지수다.

    채권시장 관계자는 "영국은 시장이 대혼란을 겪자 정책과 인사까지 모든 게 바뀌었다"며 "최근 당국이 대응하는 속도가 좀 빠르긴 하지만 글로벌 통화정책 긴축기에 재정을 풀어 해결하자는 정치권의 목소리를 보면 갈 길이 먼 것 같다"고 덧붙였다.

    jhlee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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