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공사·HCA, 아시아물 포문…SVB에 '금리 절감' 아이러니
AA부터 BBB까지 전방위 재개…최초·최대 기록 경신
(서울=연합인포맥스) 피혜림 기자 = 한국물(Korean Paper)이 아시아 발행 시장의 바로미터로 자리 잡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과 크레디트스위스(CS) 코코본드(AT1) 전액 상각 사태 등으로 멈췄던 조달 시장의 물꼬를 틔우면서 시장 가늠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AA' 한국석유공사에 이어 'BBB+' 현대캐피탈아메리카(HCA)까지 연달아 달러채 흥행에 성공하면서 아시아 크레디트 시장 회복을 입증한 모습이다. 이들의 경우 글로벌 은행 사태로 미국 국고채 금리가 대폭 하락한 점 등이 호재로 작용해 조달 비용 절감 효과도 톡톡히 누렸다.
◇'우량 등급' 석유공사·'펀더멘털' HCA, 아시아 시장 선도
29일 투자금융 업계에 따르면 이번 주 한국석유공사를 필두로 아시아 달러채 발행 시장이 호황을 이어가고 있다. SVB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은행 불안 등으로 지난 2주가량 조달이 중단됐던 것과 대조적이다.
시장 포문을 연 건 한국석유공사(무디스 'Aa2', S&P 'AA')다. 지난 27일 SVB 사태 이후 아시아 최초로 글로벌본드(144A/RegS) 북빌딩(수요예측)에 도전해 흥행에 성공했다.
북빌딩에서 3년과 5년물 고정금리부채권(FXD)에 유입된 주문은 각각 29억 달러, 39억 달러에 달했다. 수요에 힘입어 한국석유공사는 3년과 5년물을 각각 5억5천만 달러, 4억5천만 달러 발행키로 했다.
한국석유공사의 흥행으로 아시아 시장의 분위기는 반전됐다. 이튿날 현대캐피탈아메리카(Baa1, BBB+)와 인도네시아 만디리 은행(PT Bank Mandiri Tbk) 등이 투자자 모집에 나서 시장에 활기를 더했다.
특히 현대캐피탈아메리카의 경우 BBB급 신용등급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조달 성패 등에 더욱 관심이 쏠렸다. 시장 불안이 이어질 경우 AA급 우량 등급 대비 이하 크레디트물에 대한 관심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HCA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SVB 사태 이후 아시아물로는 첫 BBB급 채권이었지만 북빌딩에서 총 85억4천만 달러의 주문을 모아 HCA 조달 사상 역대 최대 수요를 확인했다.
발행 규모도 압도적이었다. HCA는 3년과 5년, 7년 FXD를 각각 12억 달러, 8억 달러, 5억 달러씩 배정해 총 25억 달러 조달을 마쳤다.
HCA의 흥행은 펀더멘털과 희소성, 타이밍 등 삼박자가 갖춰진 결과라는 평가다.
HCA의 경우 모회사인 현대자동차가 지난해 최대 실적을 경신하는 등 높은 수익성을 유지하면서 무디스 'Baa1' 등급에 '긍정적' 아웃룩을 달았다. 현대자동차그룹의 글로벌 인지도 등에 힘입어 해외 시장 내 친숙도 또한 높다.
지난 2021년 이후 2년 만의 복귀전이라는 점도 투자 심리를 북돋웠다. 지난해 시장을 찾지 않은 터라 희소성 등이 부각됐다는 설명이다.
한국석유공사 조달이 흥행에 성공한 데 이어 시장 분위기가 나날이 반전된 점도 호조를 뒷받침하고 있다. SVB가 퍼스트 시티즌스 은행에 인수된 데다 연방준비제도(연준, Fed)의 은행권에 대한 유동성 보강 프로그램 확장 검토 소식 등이 전해지면서 관련 우려가 빠르게 희석되고 있다.
KP 발행사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전일 한국주택금융공사는 호주 달러 이중상환청구권부채권(커버드본드) 조달을 위한 수요 확인 절차에 나섰다. 이날 오전 한국광해광업공단 또한 달러채 발행을 위한 북빌딩에 돌입한 상태다.
한국주택금융공사와 HCA의 경우 이달 중순께 북빌딩을 준비했으나 SVB 사태로 연기를 결정했던 곳으로, 시장 회복 기미가 보이자 재빨리 조달에 나서는 모습이다.
◇NIP 절감도 가속…美 국채 하락 효과 쏠쏠
한국석유공사와 HCA가 연달아 아시아 발행시장의 포문을 열면서 벤치마크 역할 또한 톡톡히 하는 모습이다.
한국석유공사의 경우 3년과 5년물 스프레드를 최초제시금리(IPG, 이니셜 가이던스) 대비 최대 30bp 절감했다. 관련 업계에서는 뉴이슈어프리미엄(NIP)을 15~25bp 수준으로 관측하고 있다.
시장 분위기가 달라지면서 딜을 거듭할수록 NIP 축소 효과는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HCA의 경우 0~5bp가량의 NIP를 지불한 것으로 전해진다. KP 시장이 아시아 조달의 문을 연 것은 물론 금리 측면에서도 기준점으로 자리매김하는 모습이다.
SVB 사태 이후 미국 국채금리가 대폭 하락한 점은 발행사들의 조달 비용을 낮추는 긍정적 요인으로 탈바꿈했다. SVB발 시장 불안이 조달 중단을 야기하긴 했지만, 분위기가 반전되면서 쿠폰 금리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FXD의 경우 미국 국채금리에 스프레드를 더해 금리를 확정한다.
실제로 한국석유공사의 3년과 5년물 쿠폰금리는 각각 4.750%, 4.875% 수준을 형성했다. 현대캐피탈아메리카의 경우 3년과 5년, 7년물 각각 5.50%, 5.60%, 5.80% 수준이다.
올 초까지만 해도 AA급 KP 5년물 발행 금리는 5% 안팎 수준이었다. BBB급의 경우 6%대 금리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SVB발 안전자산 선호 현상 등으로 미국 국채금리가 하락하면서 최근 시장을 찾은 한국석유공사와 HCA 등은 상대적으로 조달 비용을 절감한 모습이다.
투자금융 업계 관계자는 "은행이 아닌 일반기업 등의 경우 절대금리 등을 기준으로 조달 비용을 지불한다는 점에서 회복 초입에 국채 금리 상승이 덜 이뤄졌을 때 발행한 이점을 톡톡히 누린 양상"이라며 "시장 분위기가 달라지면서 뒤이어 등장할 한국물 조달에도 청신호가 켜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ph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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