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다 BOJ 총재 8일 퇴임…한계 보인 10년 완화
(서울=연합인포맥스) 문정현 기자 =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가 8일 10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다.
디플레이션 탈피를 위한 양적·질적 금융완화로 과도한 엔화 강세를 시정하고 주가를 끌어올렸지만, 잠재성장률·임금 저하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BOJ 사상 최장 임기를 마무리하게 됐다.
◇ 달러당 엔화 가치 76엔대에서 한때 151엔대로
7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구로다 총재는 아베 신조 정권이 발족한 이후 2% 물가 목표를 담은 정부와 BOJ의 공동성명이 발표된 다음 달인 2013년 3월 취임했다.
'소극적인 완화가 디플레이션을 악화시켰다'는 비판을 받은 시라카와 마사아키 전 총재와 달리 구로다 총재는 "전력을 순차 투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리고 취임 직후 '구로다 바주카포'로 불리는 대규모 완화 정책을 꺼냈다.
시장은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다. 구로다 총재 취임 전에 한때 달러당 76엔대를 기록했던 엔화 가치는 2013년 말 105엔대까지 하락(달러-엔 환율 상승)했다. 이후로도 엔화 가치는 계속 하락해 작년 한때 151엔을 넘었고 현재는 130엔대를 기록하고 있다.
엔화 약세에 호응해 주가도 상승했다. BOJ가 상장지수펀드(ETF) 매입으로 주가를 떠받쳐 취임 당시 12,000대였던 닛케이 지수는 한때 30년 만에 30,000대에 도달했다.
일본 기업의 실적은 엔화 강세 시정으로 윤택해졌다. 법인기업 통계에 따르면 일본에 본사를 둔 기업(금융 제외)의 경상이익은 지난 2021년 83조9천246억 엔(약 840조6천800억 원)으로 2012년 대비 73% 증가했다.
금융완화로 풀린 유동성은 부동산 업계에도 흘러 들어가 부동산가격지수는 10년 새 약 2배로 상승했다.
◇ 실물 경제 변화는 미흡
BOJ의 양적·질적 완화를 주축으로 한 아베노믹스는 대기업 성장과 부유층의 소득 확대가 중소기업과 가계로 흘러내리는 이른바 '낙수효과'를 기대하며 추진됐다. 엔화 약세로 외수를 끌어들이고, 구조개혁으로 생산성을 높인 기업이 임금을 끌어올려 물가를 상승시킨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금융완화의 수혜를 입은 기업이 인적 투자를 미루면서 양적완화의 효과가 일본 경제 전체로 확산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적했다.
매월 근로통계조사에 따르면 2022년 평균 명목임금은 2012년 평균에 비해 3.5% 오르는 데 그쳤다. 한편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현재 3%를 넘고 있다. 물가 변동을 고려한 실질임금은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는 셈이다.
니혼게이자이는 BOJ가 금융완화로 금리를 낮게 억제해 생산성 향상에 대한 동기부여가 희미해졌다고 비판했다. 일본의 잠재성장률은 구로다 총재 취임 전 0.9%에서 0.27%로 낮아졌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도 정체돼 주요 7개국(G7) 중 최하위로 추락했다.
◇ 남겨진 부정적 유산
구로다 총재의 가장 큰 오점은 2년 만에 달성하겠다고 선언한 2% 물가 목표를 실현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양적·질적 완화가 단기전에서 지구전으로 바뀌면서 남겨진 부정적인 유산도 적지 않다고 니혼게이자이는 우려했다.
시장의 흐름에 반해 채권금리를 강제적으로 억누르면서 국가의 재정 건전성이 악화했다. 코로나19 위기에 따른 대규모 재정지출마저 겹쳐 국채발행 잔고는 구로다 총재 취임 당시 기록했던 650조 엔(6천506조 원)에서 1천29조 엔(1경300조 원)으로 급증했다.
BOJ의 대차대조표도 이에 발맞춰 부풀어 올랐다. 구로다 체제 10년간 BOJ가 시장에서 매입한 국채는 963조 엔(9천639조 원)에 이른다. 매입한 국채는 일부 상환됐지만 장기국채 보유 규모는 3월20일 기준 575조 엔(5천755조 원)을 기록했다. 양적·질적 완화 이전과 비교할 때 약 6배에 달하는 수치다.
전체 국채 대비 BOJ의 보유 비중은 54%로, 발행된 국채의 절반 이상을 BOJ가 보유하는 이상한 상황이 연출됐다.
니혼게이자이는 구로다 총재가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재임 말까지 정치권의 강력한 지지를 계속 받은 드문 총재였지만, 이와 같은 단단한 방패를 얻었음에도 물가 목표 달성이나 성장률 향상을 실현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신문은 "10년간 지속된 구로다 BOJ의 완화는 금융정책이 일본 경제 과제 해결에 있어 조연 역할에 불과하다는 점을 나타낸다"고 말했다.
jhm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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