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정책 세갈래 길] 양날의 검 가계부채…물가 이을 변수
(서울=연합인포맥스) 오진우 기자 = 한국은행의 긴축 행보가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을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가계부채 문제가 물가에 이어 핵심 변수로 다시 부상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가계부채는 금리 인상기 증가세가 잦아들긴 했지만, 여전히 주요국 중 최고 수준의 시한폭탄이다.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정부가 각종 규제를 대거 푼 상황에서 금리 인하가 단행된다면 과거의 급증세를 되풀이할 위험도 상당하다.
◇너무 강한 폭탄…이래도 저래도 문제
7일 한은에 따르면 올해 1월 말 기준 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은 1천241조 원을 기록했다. 예금기관의 가계대출은 지난 2021년 12월 1천261조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찍은 이후 지난해부터는 소규모로 줄어드는 추세다.
2021년 8월 이후 진행된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과 부동산 가격의 하락 등이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전세대출을 포함한 주택담보대출도 올해 1월부터는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가계부채가 2021년까지의 폭증 흐름은 멈췄지만, 규모 자체는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신용의 비중은 지난해 말 기준 104.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등 주요국 중에서는 최상위권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가계 빚인 전세보증금을 포함할 경우 가계부채가 3천조 원이 넘고 GDP대비 비율은 약 157%로 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가 된다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너무 커져 버린 가계부채는 한은 통화정책에도 핵심 변수다.
2021년 한은이 다른 나라보다 일찍 긴축을 시작한 이유는 물가 상승보다 폭증한 가계부채를 억제하기 위해서였다.
반면 금리를 약 1년 반 동안 3%포인트 올린 지금은 추가 인상 카드를 꺼내 들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됐다. 막대한 규모는 물론 변동금리대출 위주의 구조로 인해 가계의 이자 비용이 빠르게 상승하고, 이는 경기 하방 압력을 가중하는 탓이다.
금리 인상의 시작의 이유도, 종료의 이유로도 가계부채가 핵심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부채 재급증은 최악…물가 안정 이후 최대변수
최근 국내외 상황을 보면 물가는 지난해 급등기를 지나 차츰 안정화될 것이란 전망이 강하다. 지난 3월 국내 소비자물가상승률(CPI)은 4.2%로 지난해 3월 이후 1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근원물가가 4.0% 오르는 등 여전히 높은 수준이고, 산유국 감산 등 유가 관련 불확실성도 여전하지만, 물가에 대한 경계심은 누그러지는 중이다.
국내외 채권시장은 중앙은행들이 조만간 금리 인하로 전환할 것이란 '피벗' 기대를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물가가 안정된다고 해도 국내에서는 가계부채 문제를 간과하지는 못할 것이란 지적도 상당하다.
정부는 부동산 가격의 급한 하락을 막기 위해 이전 정부에서 도입했던 각종 규제 조치를 대부분 제거한 상황이다. 금융당국은 또 특례대출 확대 등의 조처를 했다.
여기에 금리 인하까지 더해지면 지난 2014년 이후 나타났던 부채의 급증 현상이 되풀이될 가능성도 여전하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가 본격적으로 급증한 시기는 이른바 '빚내서 집 사라'로 대변되는 규제 완화와 금리 인하가 겹쳤던 지난 2014년부터다. 2013년 전년대비 5.4% 증가했던 가계신용 중 주택담보대출은 2014년에는 9.1% 급증했고, 다음 해인 2015년에는 14%까지 증가 속도가 가팔라졌다.
통화당국의 한 관계자는 "부동산 규제 완화 시기에 금리 인하도 가세하면 가계부채가 다시 급증할 위험도 고려해야 한다"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면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부채의 디레버리징 필요성에는 공감을 표한 바 있다.
이 총재는 지난해 12월 물가상황점검회의에서 "저는 경제학자로 디레버리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하지만 이는 중장기적이고 구조적 이슈이며, 금리만 가지고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경기가 좋지 않을 때는 단기간 내 급격히 디레버리징하려면 많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면서 "그렇다고 장기적으로 한다고 하면서 경기를 위해 단기적으로 (부채를)늘려버리면 나중에 더 많은 비용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jwo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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