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유로 시장 다 잡은 수출입銀…KP 벤치마크 역할 부각
(서울=연합인포맥스) 피혜림 기자 = 한국수출입은행이 20억달러(약 2조6천242억 원)가량의 대규모 한국물(Korean Paper) 발행에 성공했다. 미국 부채한도 상향 합의 직후 글로벌 채권시장 내 발행물이 쏟아졌지만, 한국수출입은행에 대한 투자 수요는 견고했다.
유로화 시장에서의 활약 또한 두드러졌다. 2013년 이후 10년여 만에 7년물 유로화 채권을 한국물 시장에 등장시켜 벤치마크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한국수출입은행의 흥행으로 뒤를 이어 외화채 발행을 준비 중인 국내 기업들의 부담도 한층 줄어들 전망이다.
◇거센 발행세 속 KP 투심 입증, 앞장선 수출입銀
1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오는 7일(납입일 기준) 한국수출입은행은 13억5천만 유로, 5억달러 규모의 채권을 발행한다. 지난 30일 아시아와 유럽, 미국 등에서 투자자 모집을 마친 결과다.
한국수출입은행은 30일 오전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달러화 채권 발행을 위한 북빌딩(수요예측)에 돌입했다. 트랜치(tranche)는 10년 고정금리부채권(FXD)이다.
당시 미국 부채한도 상향 합의가 진전되면서 다수의 발행물이 쏟아졌지만, 한국수출입은행은 129개 기관으로부터 22억 달러의 주문을 확보하는 등 견고한 수요를 확인했다.
한국수출입은행은 투자 선호도가 큰 장기물을 택해 흥행 가능성을 높였다. 최근 미국 국채금리 등이 하락 전환하면서 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장기물 인기가 커진 점을 공략한 것이다.
수출입은행의 기세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같은 날 런던 개장 후 곧바로 유로화 채권 북빌딩에도 나섰다. 트랜치는 3년과 7년물 FXD로 구성했다.
유럽 시장에서의 인기도 뜨거웠다. 최근 유로화 채권 발행 시장에서도 역내외 발행물이 쏟아졌으나 한국수출입은행은 어렵지 않게 주문을 모았다. 유럽의 경우 실수요 중심의 시장으로 꼽히지만, 발행액의 두 배에 육박하는 수요를 확인하는 등 무리 없이 자금을 확보했다.
이에 한국수출입은행은 3년과 7년물을 각각 8억5천만 유로, 5억 유로어치 찍기로 했다.
한국수출입은행은 직접 유럽을 찾아 주요 투자자를 공략한 효과를 톡톡히 봤다. 수출입은행은 한동안 조달 이후 넌딜로드쇼(NDR)를 진행했으나 이번에는 발행 전 시기를 겨냥해 투자자 설득 및 분위기 조성에 나섰다. 투자자들은 경기 침체 가능성 등 한국을 둘러싼 매크로 환경에 대한 문의를 이어갔다는 후문이다.
한국수출입은행이 유럽 시장에 더욱 공을 들인 건 한국물이 참고할 적정 기준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로화 채권의 경우 달러, 엔화와 함께 글로벌 시장의 주요 통화 시장으로 꼽히지만, 보수적인 시장 특성 등으로 한국물 발행이 많지 않았다.
특히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발행량이 급감하면서 한국물 시장에서의 존재감이 더욱 약해졌다. 한국주택금융공사와 일부 시중은행이 발행하는 이중상환청구권부채권(커버드본드) 정도가 명맥을 이어갈 뿐이었다.
올해 들어 분위기가 반전되기 시작했다. 미국과 유럽 간 금리 격차가 벌어진 데다 최근 유럽중앙은행(ECB)의 금리 인상에 속도가 붙자 서둘러 발행에 나서려는 각국 기업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투자 수요 또한 이를 뒷받침하면서 지난달 시장이 더욱 활황을 띄기도 했다.
한국수출입은행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3년물을 중심으로 달러-유로화 통화 스와프 환경이 개선된 점을 주목해 조달 경쟁력을 가늠했다.
풍부한 수요에 힘입어 한국수출입은행은 금리 절감 효과 또한 톡톡히 누렸다. 3년과 7년물 가산금리(스프레드)는 각각 유로화 미드 스와프(EUR Mid-swap)에 29bp, 72bp를 더한 수준으로 확정했다. 3년과 7년물 각각 최초제시금리(IPG, 이니셜 가이던스)로 37bp, 77bp를 더했다는 점에서 스프레드를 상당 수준 타이트닝한 모습이다.
달러화 채권 역시 스프레드를 IPG 대비 30bp 절감했다. 한국수출입은행은 달러채 스프레드를 10년물 미국 국채금리에 90bp 높은 수준으로 확정했다. 이는 유통금리보다 낮은 수준으로, 마이너스(-) 뉴이슈어프리미엄(NIP)을 달성했다.
◇7년물 재도전 통했다…한국물 조달 청신호
한국수출입은행의 경우 이번 유로화 채권 발행으로 한국물 일드 커브(수익률 곡선)를 완성했다.
지난달 KDB산업은행이 5년물 유로화 채권을 발행한 데 이어 수출입은행이 3년과 7년물을 공급하면서 3-5-7년물로 이어지는 일드 커브가 조성된 것이다. 한국물 유로화 채권의 금리 기준점을 설정했다는 점에서 시장 벤치마크 역량을 한껏 드러낸 모습이다.
7년물 유로화 채권의 경우 지난 2013년 이후 한국물 시장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수출입은행은 지난해 유로화 채권 북빌딩에서 2년(FRN)과 3.5년, 7년물 투자자 모집에 나서기도 했으나 7년물은 철회를 결정했을 만큼 쉽지 않은 만기물이었다.
이번에는 10여년 간 발행 이력이 없었다는 한계를 그린본드(green bond)로 보완했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투자자를 겨냥해 7년물 수요를 끌어올렸다.
이번 조달로 한국물 시장 전반의 분위기 또한 끌어올릴 전망이다. 한국물의 경우 지난달 135일룰 등으로 발행이 주춤했던 데다 미국 부채한도 상향 불확실성 및 금리 인상 가능성 등이 부상하면서 시장 분위기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한국수출입은행이 달러채 흥행에 성공하면서 후속 주자들의 조달에도 청신호가 켜진 모습이다. 미국 부채한도 상향 협상 후 투자 심리가 개선된 틈을 겨냥해 한국물 조달 재개의 신호탄을 쐈다. 뒤를 이어 GS칼텍스 등 다수의 국내 기업이 이번 달 한국물 투자자 모집을 준비 중이다.
ph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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