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예산 '일부 보강'으로 방향 튼 與…총선 앞두고 부담됐나
(서울=연합인포맥스) 신윤우 한종화 기자 = 국민의힘이 정부가 대폭 삭감했던 내년도 연구개발(R&D) 예산을 늘리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최근 수년간 가파르게 급증한 예산 규모를 한번쯤 정리하면서 효율화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지만, 과학기술계의 반발이 심상치 않은데다 일부 의견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내년 총선에서도 불리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자 방향을 튼 것으로 보인다.
◇연구원 인건비·기자재 지원 등 현장 요구 수용
14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당인 국민의힘은 전날 이공계의 R&D 장학금 지원을 대폭 늘리고 대학 연구기관의 신형 기자재 지원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올해보다 2천억원(-6.2%) 삭감된 연구원 인건비와 기초연구 지원 분야 예산은 되돌려질 것으로 보인다.
여당이 연구원 인건비, 실험을 위한 기자재 지원 등에 있어서만큼은 R&D 예산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에서 한발 물러선 것이다.
야당은 물론 과학계 현장과 국회 예산정책처 등 정책 기관에서조차 R&D 예산 삭감이 무리했다는 지적이 나오자 이를 수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례로 지난 1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공청회에서 천승현 세종대 물리천문학과 교수는 "계속 과제의 연구비 삭감은 연구 목표 달성을 방해한다. 오히려 연구의 비효율성을 초래한다"며 "연구 현장은 지난 8월 이후 한탄과 혼란 속에서 연구 진행도 제대로 못 하고 있다"고 현장의 분위기를 전한 바 있다.
정부와 여당의 태도 변화는 지난주 예결위 정책 질의에서도 나타났다.
국민의힘의 과학기술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인 김영식 의원은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부처가 현장과의 소통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많다"며 "정부 예산안을 존중하면서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면밀한 검토를 통해 수정, 보완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종호 장관은 "국회 논의 단계에서 꼭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보완할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고 화답했다.
국민의힘에 따르면 R&D 예산안의 보강은 젊은 연구자들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인건비, 산학연계 예산, 중소기업 혁신 R&D 등의 예산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이뤄진다.
이 밖에 김영식 의원은 정부에 슈퍼컴퓨터, 중이온가속기, 양성자가속기,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KSTAR) 등에 대한 예산 지원을 요청했다. 또 기초과학 분야 연구기관인 기초과학연구원(IBS)의 운영비를 최소 전년 수준으로 회복해야 한다고 정부에 설명했다.
이종호 장관은 "가급적 (IBS) 예산이 원래대로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尹, R&D 예산 재정비 의지 확고…업계 목소리 반영 가능성 열어둬
R&D 예산을 전면 재정비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한 상황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6월 재정전략회의에서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는 제로 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질책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래전부터 R&D 예산 배분 문제를 개선하라고 지시했는데도 기대만큼 전격적인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 데 따른 지적이라는 후문이다.
이에 과기부는 사상 처음으로 국가 R&D 예산 배분·조정 내역의 제출 법정기한을 넘기면서까지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
이런 과정을 거쳐 R&D 예산은 이례적으로 전년 대비 대폭 삭감됐다.
과학기술계는 즉각 반발했지만 대통령실을 필두로 정부는 예산 감액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정부가 R&D 예산 증액을 검토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대통령실은 '사실과 다르다'고 즉각 반박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학기술계의 원성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고 일부 여론 조사에서 R&D 예산 축소가 대통령 직무수행 부정 평가 요인으로 꼽히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정부와 여당의 기류가 달라진 것은 국민의힘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하면서부터다.
윤 대통령은 '국민이 늘 무조건 옳다'며 몸을 낮췄고 민심과 민생을 더 면밀히 살피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중동 순방을 떠나면서 내각과 참모들에게 민생 현장을 직접 살피라고 주문했는데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한국과학기술총연합회가 개최한 '과학기술 현장 소통간담회'에 참석해 청년 과학기술인들을 만났다.
윤 대통령 역시 지난 2일 과학기술인들이 대거 참석한 '대덕 연구개발특구 50주년 미래비전 선포식'에서 "R&D 예산을 더 확대하기 위한 실태 파악 과정에서 내년 예산의 일부 항목이 조정됐다"고 해명하고 "앞으로 연구자들이 제대로 연구할 수 있도록 돈이 얼마나 들든지 국가가 적극 뒷받침하겠다"고 강조했다.
비공개로 진행한 '글로벌 우수 신진 연구자와의 대화'에서는 "시스템을 고치면 예산을 복원하는 수준이 아니라 지금의 2배, 3배, 100조원까지도 지원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시스템의 개선이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R&D에 예산을 적극적으로 투입할 의지가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김대기 실장도 국회 운영위원회의 대통령비서실 국정감사에서 구조조정이 필요해 감축한 것으로 미래 기술 분야의 예산은 깎지 않았다거나, R&D를 소홀히 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국민의힘이 R&D 예산을 보완하겠다고 밝힌 것은 당정 간에 유·무언의 교감이 있지 않았겠냐는 해석을 낳는다.
다만, 대통령실과 정부는 확대 해석을 경계하며 아직은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당에서 발표한 방침을 들여다보는 단계"라고 했고, 기획재정부는 "국회에서 제시한 내용을 엄중하게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는 앞서 윤 대통령이 과학기술계가 R&D 예산을 나눠 먹는다고 지적한 것과 관련해 "(당의 검토가 윤 대통령의 지적과) 배치된다고 보지 않는다"면서 "일부 언론에서 '복원'이란 표현을 썼는데 복원보다는 '보완'이 더 적절해 보인다"고 평가했다.
대통령실이 과학기술수석직 신설을 검토하는 것에서도 예산 증액과 과학기술계의 목소리를 경청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의지가 엿보인다.
대통령실은 최근 경제수석실 산하 과학기술비서관실을 별도의 과학기술수석실로 격상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 운영에 있어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고, 소통 창구도 보다 분명히 하겠다는 셈법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과학기술수석 신설을 내부에서 검토한 것은 맞지만 결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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