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용의 글로브] 슈퍼 엔저와 일본 위기론
(서울=연합인포맥스) 달러-엔 환율이 지난 1990년 6월 이후 34년 만에 처음으로 155엔선을 넘어서면서 일본 외환 당국이 실개입을 단행할 가능성이 커졌다. 시장 참가자들 사이엔 지난주 미·일 재무장관이 만난 자리에서 실개입 필요성과 레벨에 대한 양국 간 양해나 합의가 있었을 것이란 관측이 확산한 상태다. 일본은행(BOJ)과 한국은행이 이번주 공조 개입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까지 등장한 상태다.
'미스터 엔'으로 불리는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전 대장성(현 재무성) 재무관은 이미 지난 3월 155~160엔을 당국의 개입 레벨로 지목하기도 했다.(2024년 3월21일 오후 9시47분 송고된 ''미스터 엔' 사카키바라, 155엔 가면 日 당국 개입할 듯' 제하 기사 참고) 우루사와 마츠히로 전 일본 재무성 재무관 역시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엔화가 달러 대비 매우 빠르게 절하됐다. 이런 추세라면 개입이 나올 것"이라고 언급했다.
도쿄환시의 최근 움직임은 지난 2022년 가을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공격적 금리 인상으로 엔화 가치가 급락했을 당시 일각에서 제기됐던 일본 경제 위기론을 다시 소환하고 있다.
달러-엔의 상승, 즉 '엔저 현상'은 일본 경제와 주식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그 정도가 현재와 같이 '슈퍼 엔저'라 이를 정도로 과도하면 오히려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기업의 수입 원자재 가격이 급등해 수십년간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을 경험한 일본 국민에 그 부담이 전가되면서 막 살아나고 있는 일본 경제의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어서다.
막대한 국가부채로 인한 재정부담은 더 큰 문제다. 지난해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37개 경제 선진국 중 최고 수준인 252.4%로 미국(122.1%)과 영국(101.1%)의 배가 넘는다. 외화자산 등을 제외한 국가 부채 상황을 나타내는 순부채비율도 일본은 155.9%로 미국(96.3%)과 영국(92.5%)을 큰 폭으로 웃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행(BOJ)이 엔저를 막기 위해 긴축에 나서는 등 자칫 잘못 대응했다간 국가 부채 관련 위기감이 크게 증폭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올해 예산안 112조5천억엔 가운데 국채 이자 비용으로 9조6천억엔(약 85조원)을 책정했다. 재무성 추산에 따르면, 10년물 국채 금리가 예상치를 1%포인트 웃돌면 2033년 이자 부담은 8조7천억엔(약 77조1천억원)이 더 늘어난다.
우리나라는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다. 규모에 비해 건실한 펀더멘털을 가지고 있지만, 급격한 환율 변동성 확대는 우리 경제와 금융시장에 충격파가 될 수 있다. 155엔선 위에서 일본 정부의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고 달러-엔의 추세적 상승세가 이어진다면 차기 저항선이 170엔 언저리까지 높아지며 도쿄환시의 변동성을 급격히 확대할 공산이 크다. 엔화 가치의 급락은 원화를 포함한 다른 통화 가치의 가파른 하락을 촉발하면서 글로벌 외환시장을 뒤흔들 가능성이 있다.
신흥국 외화부채에도 다시 주목해야 한다. 달러 가치가 치솟으면서 외화로 채권을 발행한 국가들이 외화 부채를 상환하는 데 드는 비용이 급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BOJ는 이날부터 이틀간 정례 금융정책결정회의를 개최한다. 우에다 가즈오 총재가 추가 금리인상을 강력하게 시사하면 엔화 약세를 일부 되돌릴 수 있다. 회의 석상에서 외환시장 실개입 문제가 논의될 수도 있다. 도쿄 금융시장의 동향을 면밀해 관찰하고 대응책을 마련할 시점이다.(국제경제·빅데이터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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