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은 지금] 소리 없이 다가온 썰물 주의보
  • 일시 : 2024-05-27 08:32:31
  • [뉴욕은 지금] 소리 없이 다가온 썰물 주의보



    출처: 연합뉴스 자료 사진


    (뉴욕=연합인포맥스) 정선영 특파원 = "20년 된 회사도 버티기 힘들었죠. 사람들이 이사를 안 하니까"

    미국인들의 국내 이사가 줄어들면서 뉴욕, 뉴저지 일대에서 오래된 이삿짐 운송업체 한 곳도 문을 닫았다고 한다. 고금리와 인플레이션의 직격탄을 맞았다고 한다.

    노스아메리칸 무빙 서비스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2023년에는 2천560만명의 미국인들이 이사를 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2년보다 9% 적은 수치다.

    지난해 가장 이사를 많이 한 목적지는 사우스캐롤라이나, 노스캐롤라이나, 테네시, 플로리다 등 남부 지역으로 나타났다.

    미국인들은 왜 이사를 덜 하게 됐을까.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금리가 크게 오르고, 인플레이션이 심화하는 동안 주택 가격은 물론 렌트비도 크게 올랐다.

    팬데믹 당시에 3~4% 저금리로 대출을 받아 집을 보유한 사람들은 이사를 하려면 새로 받는 대출은 7~8%에 달하는 고금리인 만큼 선뜻 이사를 결정하기 어렵다.

    세입자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렌트비도 고공행진을 펼치면서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렌트비를 좀 올려주더라도 새로 이사를 하기가 쉽지 않게 됐다.

    집값뿐 아니라 물류비, 인건비도 오르면서 이사 비용 역시 만만치 않다. 그렇다 보니 이사에 신중해진 미국인들을 따라 이삿짐을 옮겨주는 회사들의 일감도 크게 줄었다.

    미국 경제가 워낙 잘나가니 몇몇 이삿짐업체들의 고충은 사실 경제를 크게 위협할 만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는 고금리, 인플레이션 환경 속에서 소기업들의 생존이 그리 만만치 않음을 반영한다.

    미국 경제에 그림자를 드리울 만한 신호들은 이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여전히 미국 경제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할 때 견조한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삐걱거리는 경고음이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

    역대급으로 돈이 넘쳐나는 경제 여건 속에서 돈이 떨어지는 곳들이 생겨나고 있다.

    가장 최근 주목을 받는 곳은 미국의 대형 항공기 제조업체인 보잉사다.

    잦은 항공기 고장으로 주목을 받던 보잉은 최근 시장에 충격을 주는 발표를 했다.

    2024년에 현금흐름이 나빠질 것이라고 브라이언 웨스트 보잉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울프 리서치 주최 컨퍼런스에서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그는 보잉의 2분기 현금 소진이 1분기와 비슷하거나 더 나쁠 것이라면서 "우리는 직면한 생산 및 공급망 이슈 일부로 인해 고객을 좌절시키고 실망하게 했다"고 말했다. 하반기에는 잉여 현금 흐름이 플러스로 돌아서겠지만 연간 기준으로는 마이너스일 것으로 예상됐다.

    보잉사는 지난 4월에 리파이낸싱 문제로 고심하던 끝에 100억달러 규모의 채권 발행에 나선 바 있다. 자금을 빌려주던 은행들이 줄어들면서 채권 조달로 방향을 튼 셈이다.

    채권을 발행한지 불과 한 달도 안된 상황에서 현금 부족 이야기가 나오면서 투자자들은 물론 은행권도 술렁대고 있다.

    보잉은 세계 최대 수준의 항공우주 제조업체 중 한 곳이며, 2022년 실적 기준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방산업체이자, 달러 기준으로 미국에서 가장 큰 수출업체로 손꼽힌다. 그야말로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말이 떠오를 만한 기업이다.

    그런 보잉의 현금 흐름이 악화됐다는 말에 시장은 심상치 않은 우려의 시선을 던지고 있다.

    한 해외 은행 관계자는 보잉과 관련한 리스크를 CDS로 헤지하는 쪽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만약 보잉사의 현금 흐름이 회복되지 못할 경우 상업용 비행기와 국방 관련 비즈니스를 분할해 활로를 찾아야 할 수도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보잉사의 현금흐름 악화 소식은 인공지능(AI)에 대한 기대로 들떠 있던 주식시장에 찬물을 끼얹은 상태다.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보잉사의 현금 흐름 악화 소식에 흔들리기도 했다.

    그림자는 소리 없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뉴욕의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되는 경우도 나타났다.

    최근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의 1740 브로드웨이 빌딩에 대한 모기지를 담보로 한 3억800만달러 규모의 CMBS(상업용 모기지 담보증권) 중 AAA 등급 투자자들이 손실을 본 것으로 전해졌다.

    상업용부동산(CRE) 모기지를 담보로 한 우량채권에서 마이너스가 발생한 점은 시장이 발을 삐끗할 가능성을 부각시켰다.

    물론 이 케이스는 이례적인 경우이기는 하지만 AAA 등급이 이처럼 타격을 입는 경우가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뉴욕 금융시장은 올해 만기가 도래할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TD증권에 따르면 CRE 대출 중 약 5천400억달러 규모가 올해 만기를 앞두고 있다. 2025년에는 5천350억달러가 추가로 만기를 맞을 예정이다. 2027년까지 CRE 대출의 만기 도래 규모가 약 2조2천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문제는 이들 대출이 올해 예상보다 고금리 환경에서 만기를 맞는다는 점이다.

    출처: 연합뉴스 자료 사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인하 경로는 녹록지 않게 됐다.

    당초 올해 금리인하 횟수로 예상했던 3회는 물 건너갔고, 자칫하면 올해 금리인하를 한 번도 못 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물론 연준은 이같은 시장의 우려와 달리 "데이터에 따라", "인플레이션이 2% 목표치로 향하고 있다는 확신이 추가로 들면"과 같은 단서를 달아둔 채 금리인하 카드를 꼭 쥐고 있다.

    미 연준도 상업용 부동산 관련 대출에 신경을 쓰고 있다.

    지난 4월 30~5월1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의사록에 따르면 금융 여건에 대한 연준 스태프들은 'CMBS 풀의 평균 대출 연체율은 3월에 하락했지만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며 "특히 오피스 빌딩 담보 대출에서 은행권에서 90일 연체 등으로 정의되는 부실 CRE 대출 비율은 3월까지 더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뉴욕 금융시장에서 들려오는 경고음은 그동안 지속돼 온 경기침체 전망이 점차 힘을 얻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경제의 경착륙 또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언급했고, 제프리 건들락 더블라인 캐피털 CEO는 인플레이션이 크게 하락하지 않고, 경기 침체가 올 가능성을 여전히 남겨뒀다.

    시장의 유명한 말들을 재점검할 때가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밀물은 모든 보트를 들어 올린다. 그동안 좋았던 경제는 주식시장도, 부동산 시장도, 사정이 좋은 기업도, 어려운 기업도 그럭저럭 다 들어 올렸다. 하지만 물이 가득 차 있을 때는 모른다. 중요한 타이밍은 물이 빠지는 시점이다.

    "썰물이 빠지면 비로소 누가 발가벗고 헤엄쳤는지 알 수 있다." 투자의 달인 워런 버핏의 말에 곧 시장의 이목이 집중될 수도 있다.

    (정선영 뉴욕특파원)

    syjung@yna.co.kr

    주의사항
    ※본 리포트는 한국무역보험공사가 외부기관으로부터 획득한 자료를 인용한 것입니다.
    ※참고자료로만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