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은 지금] ECB 금리인하와 라가르드 총재의 목걸이
(뉴욕=연합인포맥스) 정선영 특파원 = 유럽중앙은행(ECB)의 이번 통화정책 회의는 금리인하 첫발을 뗀 이벤트였다.
그리고 뉴욕 금융시장에서는 ECB 금리인하와 함께 목걸이 하나가 주목을 받았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가 기자회견에서 하고 나온 목걸이였다.
라가르드 총재는 다른 기자회견 때도 눈에 띄는 액세서리와 세련된 패션으로 눈길을 끌었지만, 이번에는 남달랐다.
이 목걸이에는 'In charge'라고 글자가 쓰여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말 그대로 보면,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므로 앞으로의 통화정책, 물가와 금리에 대한 책임 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 목걸이의 글자는 ECB의 금리인하 결정이 처한 이례적인 경제 상황을 떠오르게 하는 소품이기도 했다.
보통 통화정책 회의와 기자회견은 작은 '시그널'도 중요하게 여겨진다.
예를 들어 성명문의 작은 문구 변화나 어떤 상황에 대한 달라진 해석, 단어 등은 통화정책의 변화를 예고하는 변수로 읽힌다.
남자 총재일 경우 넥타이 색깔로 미묘한 분위기 변화를 읽기도 한다.
그만큼 금융시장이 작은 신호에도 촉각을 곤두세우는 날이라 어떤 식으로든 메시지를 읽고 싶어 하는 마음이 크게 작용한다.
이런 날, 뚜렷하게 메시지가 쓰여 있는 소품을 착용하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다.
특히 ECB가 2019년 이후 처음으로, 그것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보다 선제적으로 금리인하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이에 뉴욕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라가르드 총재의 목걸이에 쓰여 있는 'In charge'에 집중했다.
라가르드 총재의 의도는 지난 8일 ECB 블로그에 '왜 우리는 금리를 조정했나'라는 주제의 글에 반영되고 있다.
그는 블로그 글에서 "우리의 결정은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중요한 순간을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우선 가장 큰 이유는 인플레이션 하락이었다.
2년 전 인플레이션이 너무 높아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상황이 개선된 것이 금리인하의 주된 배경으로 꼽혔다.
라가르드 총재는 "일부 물가, 서비스 부문은 현저히 오르고 있지만 전반적인 인플레이션은 크게 하락했다"며 "지금은 내년에 2%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하며, 이는 물가 안정을 추구하는 ECB의 목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2022년 7월에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한 후 1년여의 기간 동안 4.5%포인트로, 역대 가장 빠른 속도로 금리를 인상했다며, 인플레이션이 너무 올라 2022년 10월에 10.6%에 최고치를 찍으면서 강하게 조치를 했다고 설명했다.
ECB는 인플레이션 급등세를 막기 위해 금리를 인상했고, 인플레이션은 2023년 9월까지 전년 최고치의 약 절반인 5.2%로 떨어졌다.
라가르드 총재는 "이를 통해 정책의 다음 단계인 '동결 단계'로 들어갈 수 있었다"며 "이 단계에서는 금리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더 세게 밟거나 압력을 낮추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금리가 인플레이션을 낮추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지만 여전히 인플레이션이 너무 높았고, 이런 상황에서 너무 일찍 금리인하를 시작하면 역효과가 났을 것이라고 라가르드 총재는 설명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인플레이션이 추가로 진전을 보여 2.6%대로 이전보다 절반 정도로 줄어든 점에 무게를 뒀다. 그리고 내년 후반에는 2%까지 도달할 것이라는 예상에 금리인하 결정을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라가르드 총재도 블로그에서 "경제에서 인플레이션이 제거될 때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며 "지속적인 물가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한 금리를 제약적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전처럼 브레이크를 세게 밟지 않더라도 또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아직 브레이크에서 발을 뗄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고 분명하게 시사했다.
이는 금융시장이 ECB 금리인하 시작에도 추가로 계속 인하할 수 있을지에는 의구심을 보이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시장 전문가들이 이른바 '매파적 인하'라고 표현한 것도 앞으로 계속 완화적인 정책이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약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유로존의 인플레이션이 2.6%를 기록했지만 올해 들어 좀처럼 디스인플레이션 과정이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ECB는 여전히 유로존의 인플레이션과 금리 수준에 대해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In charge) 입장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너무 확실한 예고편 끝에 ECB의 금리인하가 나왔다는 점이다.
라가르드 ECB 총재는 지난 3월 회의에서 "금리인하 논의는 없었다"면서도 "6월까지 봐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는 금리인하 시그널로 읽혔지만 여전히 데이터에 따르겠다는 점도 열어뒀다.
하지만 ECB의 6월 금리인하 신호는 점점 분명해졌다.
특히 6월 통화정책 회의를 앞두고 4월과 5월에 걸쳐 루이스 드 귄도스 ECB 부총재는 사실상 서프라이즈가 없다면 6월 금리인하가 기정사실화될 것이라는 점을 말했다.
라가르드 총재의 시그널과 달리 귄도스 부총재를 비롯한 다른 ECB 관계자들의 발언은 금리 동결 가능성을 거의 배제하는 신호로 전달됐다.
즉, 금리인하가 6월에 이뤄지지 않으면 시장에 오히려 '서프라이즈'가 될 위험이 있었다.
중앙은행의 신뢰성 보호 차원에서라도 금리인하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시장에서는 ECB가 이번에 강한 예고편을 날리지 않았다면 금리인하를 못했을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5월 유로존 CPI 예비치가 2.6% 상승하면서 직전월의 2.4%보다 반등했기 때문에 분명한 예고편이 없었다면 다시 금리 동결을 했을 수도 있는 셈이다.
스태그네이션 우려가 컸던 유로존이 경제 여건이 좋은 미국보다 먼저 금리를 인하한다는 점은 시장 참가자들도 공감했던 대목이다.
그럼에도 인플레이션이 반등한 시점에 단행한 금리인하는 'In charge'라는 목걸이의 메시지를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지점이었다.
이는 인플레이션 하락세가 확실하게 지속 가능해 보일 때 금리를 인하하겠다는 기존의 이야기를 약간 벗어난 결정이었다.
따라서 ECB는 5월 인플레이션 반등에 대한 남다른 책임감을 어필해야 하는 처지라 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금리인하 카드를 내미는 순간 '금리인상' 카드는 버리는 카드가 된다.
금리인하 선언 이후 다시 인상 카드를 썼다가는 통화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유지되기 어렵고, 인플레이션을 다시 잡으려면 이전보다 금리를 더 많이 인상해야 한다는 부담이 뒤따른다.
이는 앞으로 유로존의 인플레이션이 반등세를 이어갈 경우 ECB는 금리를 동결하는 것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이례적인 행보를 택한 ECB는 앞으로 유로존의 인플레이션이 하락하기를 기도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남은 금리인하 시작 카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로 넘어갔다.
미 연준은 금리인상을 배제하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지만 금리인하를 앞두고도 아직 동결과 인상 카드를 완전히 버리지 않은 상태다.
어쩌면 연준은 유로존 인플레이션의 운명도 함께 쥐고 있을 수 있다. (정선영 뉴욕 특파원)
syj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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