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A' 공략하는 한국물 시장…산은 부담 속 외평채에 쏠리는 눈
공격적 프라이싱에 수요 저조, 유통금리 확대 가능성도
대한민국 정부 대기, 후발주자 영향은
(서울=연합인포맥스) 피혜림 기자 = 정부·국제기구·기관(SSA) 발행시장을 보는 한국물(Korean Paper) 업계의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이머징마켓(EM)이라는 한계 탓에 쉽사리 접근할 수 없는 영역으로 여겨졌으나 KDB산업은행의 개척으로 분위기가 달라졌다.
다만 KDB산업은행이 두 번째 SSA형 달러채 발행에서 평소보다 저조한 성과를 거두면서 후발주자의 긴장감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뒤이어 대한민국 정부가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을 처음으로 SSA 스타일로 찍을 예정이다.
◇외평채도 진입 채비…주춤한 산은, 부담 불가피
1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KDB산업은행은 오는 26일(납입일 기준) 10억달러 규모의 유로본드(RegS)를 발행한다. 지난 17일과 18일 이틀간 글로벌 채권시장에서 북빌딩(수요예측)을 마친 결과다. 트랜치(tranche)는 3년물 고정금리부채권(FXD)이다.
KDB산업은행은 이번 발행으로 역대 한국물로는 두 번째 SSA 발행을 마쳤다. 지난 2월 첫 SSA 스타일 발행으로 물꼬를 틔운 데 이어 시장 안착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이번 발행에서는 전보다 저조한 수요가 유입되면서 부담이 드러났다. 북빌딩에서 마지막까지 남은 주문 금액은 10억5천만달러 수준으로, 발행액을 겨우 웃돌았다. 통상 한국물 발행사들이 2~3배 이상의 수요를 확보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는 첫 SSA 발행에 도전한 지난 2월과 비교해도 주춤한 결과다. 당시 KDB산업은행은 30억달러 발행에 47억달러의 주문을 모아 비교적 넉넉한 수요를 확인했다.
문제는 결국 북빌딩에 참여한 투자자들이 모두 물량을 가져갈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이에 물량을 받지 못할 것에 대비해 넉넉하게 주문을 적어낸 기관들이 매도에 나설 경우 유통금리에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뒤이어 대한민국 정부의 외평채가 대기 중이라는 점에서 이번 발행의 파급력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다음 주 달러화 외평채를 SSA 스타일로 찍을 예정이다. 대한민국 정부의 첫 SSA 발행시장 진입이지만 KDB산업은행의 다소 저조한 흥행 탓에 부담이 불가피해졌다.
그동안 SSA 발행시장을 찾은 건 아시아에서도 일본 정책금융기관 몇 곳에 불과했다. KDB산업은행에 이어 대한민국 정부의 외평채까지 진입에 나서면서 이머징마켓(EM) 한계를 벗지 못했던 한국물의 외연이 보다 확장될 것이란 기대가 나왔다.
◇활황 속 홀로 주춤한 배경은…책임론 불거지기도
물론 KDB산업은행의 발행이 성공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당초 계획했던 10억달러의 자금을 모두 마련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비교적 저조한 수요를 확인하면서 유통금리 측면의 리스크를 안게 됐다. 더욱이 KDB산업은행은 한국물 벤치마크 발행사로서 시장을 선도해왔던 터라 이번 행보에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도 나온다.
글로벌 채권시장 전반이 활황을 이어가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북빌딩 결과는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전일 북빌딩에 나선 현대캐피탈아메리카의 경우 역대 최대 주문에 힘입어 37억5천만달러 규모의 글로벌본드(144A/RegS)를 찍는 등 상이한 분위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물은 물론 최근 글로벌 채권시장을 찾는 발행사들이 계속 흥행을 기록하고 있다"며 "활황이 이어지면서 스프레드 축소되는 현상도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KDB산업은행의 경우 공격적인 프라이싱(pricing) 전략이 투자자에게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KDB산업은행은 최초제시금리(IPG, 이니셜 가이던스)로 SOFR(Secured Overnight Financing Rate) 미드 스와프(MS)에 56bp를 더했다. 이는 KDB산업은행 유통금리와 동일한 수준이다.
KDB산업은행은 'AA' 신용등급에 걸맞은 금리대에 안착하기 위해 과감한 전략으로 시장을 찾았다. 일본 등 선진 시장(DM) 발행사의 경우 한국보다 국제 신용등급이 낮지만, 여전히 한국물보다 강한 금리를 형성하고 있다. 이에 신용등급에 부합하는 금리대를 달성하고자 나섰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을 맞닥뜨린 셈이다.
시장 활황으로 유통금리가 상당히 낮아진 상태였다는 점도 부담이 됐다. 낮은 유통금리에 IPG까지 공격적으로 제시하자 기관들의 관심이 덜해졌다는 설명이다. 통상 발행 스프레드가 IPG보다 낮게 확정되는 것과 달리 KDB산업은행은 IPG와 스프레드가 동일했다는 점은 이러한 판단을 뒷받침한다.
시간적인 제약 탓에 미국 등의 투자자까진 겨냥할 수 없었던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채권은 유로본드 형태였던 터라 미국을 제외한 아시아와 유럽, 중남미 등에서 투자자 모집이 이뤄졌다. 결산보고서 업데이트 작업 등으로 글로벌본드 형태를 취할 수 없었다.
다만 프라이싱 전략 측면의 한계가 드러난 만큼 한국물 벤치마크 발행사라는 KDB산업은행의 위상에는 금이 가는 모습이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KDB산업은행은 이전부터 시장과의 소통보단 금리 절감에 더 집중하는 측면이 강한 발행사였는데 하필 외평채가 나가기 직전에 이번 일이 불거지면서 벤치마크 역할보다는 도리어 부담 요소가 된 분위기"라며 "SSA 발행사로서의 자질 등을 돌아보게 한다"고 전했다.
KDB산업은행의 개척으로 SSA 발행시장의 문이 열린 만큼 발행사가 연이어 보이는 과감한 시도들이 돋보인다는 평가도 나온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외평채 발행 전 KDB산업은행이 SSA 발행시장의 문을 다시 열면서 분위기를 조성한 모습"이라며 "KDB산업은행 도전 이후 싱가포르 등 이외 아시아 기관도 SSA 시장에 대한 관심을 높였을 정도로 시장에 주는 의미가 상당했다"고 밝혔다.
SSA는 정부·국제기구·기관(Sovereign, Supranational & Agency)의 약자로, 글로벌 채권시장에서 초우량 발행사로 꼽힌다. 주요 투자자 역시 중앙은행과 국부펀드, 연기금 등 안정성이 높은 기관이다. SSA 채권은 글로벌 시장에서 현금화가 용이한 국공채 수준의 입지를 인정받는다.
ph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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