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춘추전국시대-1] '팬데믹 충격'…연준도 달라졌다
'고빈도 데이터' 활용 대안적 지표들 활발히 개발
최근엔 '휴민트'에 대한 관심↑…경기침체 경계감 보여줘
[※편집자주: 팬데믹 사태는 경제 분석과 전망에 있어서도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특히 데이터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면서 수많은 새로운 데이터들이 새로 등장, 기존의 데이터들과 경합하는 국면이 벌어졌습니다. 이에 연합인포맥스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ㆍFed)의 대응과 데이터가 가리키는 미국 경제의 향방 등에 대한 기획 기사를 송고합니다.]
(서울=연합인포맥스) 김성진 기자 = 팬데믹 사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ㆍFed)의 통화정책 실행에 전례가 없는 도전이었다.
미국 경제에 전대미문의 충격이 가해지기도 했지만, 팬데믹 여파에 중앙은행이 판단의 근거로 삼을 '데이터'의 산출 자체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는 강력한 통화·재정 부양정책에 힘입어 위기를 극복했으나 데이터를 둘러싼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응답률의 하락과 계절조정의 교란 등으로 공식 데이터의 신뢰도가 낮아졌다는 지적이 부쩍 늘어난 가운데 각양각색의 데이터를 활용한 갖가지 해석들이 난립하는 양상이다.
◇ 연준도 고려하게 된 '고빈도 데이터'
보통 월별(monthly) 또는 분기별(quarterly)로 발표되는 '전통적인' 경제지표들은 팬데믹 사태 초기 때는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
대면 접촉의 제한 때문에 여론조사에 기반한 데이터는 산출 과정에서부터 곤란함에 직면했고, 바이러스의 확산 여부에 따라 경제 상황이 급박하게 변해가는 가운데 공식 데이터가 나오기까지 한 달 또는 한 분기를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에 따라 시장 참가자들은 나름의 '자구책'을 강구하게 됐는데, 이것이 '고빈도 데이터'(high-frequency data) 또는 실시간 데이터가 급부상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고빈도 데이터는 그 주기가 하루(daily) 또는 한주(weekly)로 매우 짧은 대안적 지표를 일컫는다.
아이폰의 트래픽부터 시작해서 레스토랑 예약 사이트의 예약 건수까지 시장 참가자들의 관심 대상이 전방위적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연준도 결국 이런 트렌드를 따라가게 된다. 팬데믹으로 인해 고빈도 데이터가 미국 중앙은행의 의사결정 과정에 공식적으로 등장하게 된 셈이다.
연준을 구성하는 12개 지역 연방준비은행(연은) 중 한 곳인 댈러스 연은은 팬데믹 사태가 터진 직후 발 빠르게 '이동성 및 참여지수'(Mobility and Engagement index)를 내놨다.
휴대전화 트래픽에 기반, 팬데믹 발발 전에 비해 사람들의 이동량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를 포착하기 위해 고안된 이 지수는 팬데믹 사태 초반 미국 경제가 얼마나 빠르게 위축됐는지를 실감 나게 보여준다.
더 의미 있는 변화는 지역 연은 중 무게감이 가장 큰 뉴욕 연은이 '주간경제지수'(Weekly Economic Index, WEI)를 개발한 데서 찾을 수 있다. WEI는 일간 또는 주간 단위로 발표되는 10개 데이터에 기반해 매주 산출되며, 미국 전체 경제의 성장률을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제롬 파월 의장도 당시 고빈도 데이터를 참고하고 있음을 공식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파월 의장은 2020년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일종의 비표준(nonstandard), 고빈도 데이터라고 생각하는 것 중 상당수를 모니터링한다"면서 "그것은 매우 중요한 게 되었다"고 말했다.
현재는 댈러스 연은으로 발표가 이관된 WEI는 이달 15일로 끝난 주간에 2.43%를 나타냈다. 이 같은 속도가 한분기 동안 유지된다면 분기 국내총생산(GDP)은 1년 전에 비해 2.43% 높은 수준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는 의미다. 13주 이동평균치는 1.82%를 나타냈다.
WEI는 지난 5월 초 1.34%까지 하락한 뒤 반등 흐름을 보이고 있다. 단기적이긴 하지만 미국 경제의 모멘텀이 고빈도 데이터상으로는개선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 '일화적 증거들'의 부상…'베이지북' 중요성 커져
데이터에 대한 연준의 태도는 작년 가을 또 한 번의 중대한 변화를 맞는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펼쳐온 고강도 긴축으로 미국 경제가 돌연 경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게 그 배경이다.
가장 중요한 공식 지표 중 하나인 비농업부문 고용이 견조한 증가세를 보이는 와중에도 연준 고위 관계자들의 경계감이 커진 것은 현장에서 직접 만난 경제 주체들로부터 걱정스러운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휴민트'(HUMINT)가 대두하게 된 것이다.
특히 저소득층 등 경제의 '약한 고리'에 위치한 이들이 고금리로 인해 받는 고통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경기침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총량적인 데이터로는 잘 잡히지 않는 측면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인식이 작용한 결과다.
연준 인사들은 경제 주체들과의 접촉을 통해 얻는 정보들을 '일화적 증거들'(anecdotal evidence)이라고 부른다. 파월 의장은 올해 1월 FOMC 기자회견에서 일화적 증거들에 대해 "나는 그걸 굳게 믿는 사람(big believer)"이라며 신뢰를 드러냈다.
일화적 증거들은 정량화된 것은 아니지만 공식 데이터가 나오기 전에 미리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이점이 있다. 성격은 반대지만 고빈도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과 목적은 같다고 할 수 있다.
FOMC 2주 전에 발간되는 '베이지북'은 일화적 증거들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다. 베이지북은 12개 지역 연은이 미국 전역에 형성돼 있는 네트워크를 활용, 여러 경제 주체들과 만나 수집한 '정성적'(qualitative) 정보들을 취합한 것이다.
연준 고위 관계자들이 일화적 증거들에 비중을 두게 된다면 베이지북의 중요성도 따라서 올라가게 된다. 파월 의장은 1월 FOMC 기자회견에서 베이지북에 대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는 데 개인적으로 매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때때로 데이터에 드러나기 전에 무언가들을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아드리아나 쿠글러 연준 이사는 지난 18일 연설에서 디스인플레이션에 대해 낙관적인 이유 중 하나로 기업들로부터 수집된 "다양한 일화들"을 들었다.
그는 "가장 최근 베이지북에 따르면 기업들은 추가 가격 인상에 반발하는 소비자들에게 점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면서 "이들 기업은 단기적으로 완만하게만 가격을 인상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말을 들어보니 가격 오름세가 꺾일 것 같다는 얘기다.
sj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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