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외환시장 개방은 새로운 항해에 대한 희망
◇신중범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
올해 7월 1일부터 우리 외환시장을 전 세계에 본격 개방한다.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국내 은행과 증권사만 거래할 수 있었던 서울 외환시장이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전 세계 어디에서든 본인들의 영업시간에 맞춰 거래할 수 있도록 새벽 2시까지 문을 열게 된다. 단언컨대 1998년 자유변동환율제를 도입한 이래 외환정책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다.
너무나도 힘들었던 외환위기 시절이 또 반복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그동안 외환당국은 거래 활성화보다는 시장 안정에 중점을 두고 외환정책을 운영해왔다. 외환위기 이후 집권한 모든 정부가 국민과 기업의 삶을 더 편리하게 만들기 위해 '규제 개혁'을 추진했지만, 항상 핵심 외환규제는 개혁의 대상에서 제외돼왔다. 외환당국보다 오히려 국민과 언론·정치권에서 외환규제 완화를 우려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숱한 경제·금융위기를 극복하면서 한국 경제는 세계 10위권으로 올라섰다. 경제와 무역 규모가 커지면서 국내외 투자가 급격히 늘어나고 새로운 금융거래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여전히 외환제도에 있어서만큼은 30년 전의 규제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 필자가 외환시장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 외화자금과장으로 근무하던 10년 전과 지금의 외환시장 거래량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어쩌면 우리 자본시장이 '박스피'라는 웃지 못할 별명을 가지게 된 데 일조했는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그림자를 뒤로하고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외환 분야에서는 '시장 개방'이라는 새로운 항해를 시작하려고 한다. 신항로 개척을 위해 '해외외국환업무취급기관(RFI, Registered Foreign Institution)' 제도를 도입해 건전한 재무구조, 높은 신용등급 등 우리 정부가 제시한 요건을 모두 충족한 29개의 외국 금융기관들을 우리 외환시장에 참여시켰고 앞으로도 그 수를 늘려나가려고 한다. 또한, 그들이 현지 영업시간에 편하게 거래할 수 있도록 우리 외환시장의 거래시간을 글로벌 금융 중심지인 런던 금융시장 개장시간을 커버하는 새벽 2시까지 확대한다. 개장 시간 연장 이후 거래 동향, 시장 상황 등 경과를 봐가며 최종적으로는 24시간 개장까지 추진할 계획이다.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도 글로벌 표준에 맞게 업데이트했다. 외국 금융기관들이 효율적으로 위험을 관리할 수 있도록 원화거래로 발생한 포지션(매입액과 매도액의 차이, 포지션 중립(0)이 아닌 경우 해당 금융기관은 환변동 리스크에 노출)을 본점 장부에 집중해 효율적으로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도록 'CBM(Centralised Booking Model, 글로벌 은행의 지점·법인이 거래귀속주체 명의로 FX거래를 수행하는 모델) 가이드라인'을 제정했다. 또한, 이들이 외환당국에 대한 보고체계에 충분히 익숙해질 수 있도록 의무 위반에 대한 계도기간을 연말까지 연장하고, 외국 금융기관이 물리적·법적으로 파악하거나 보고하기 어려운 항목들은 보고 의무 자체를 유예했다.
외환거래 실수요 확보를 위해 외환제도도 대폭 손질했다. 투자자가 예금계좌를 개설했는지와 관계없이 가장 경쟁력 있는 가격을 제시하는 금융기관과 외환거래를 할 수 있도록 '제3자 외환거래(Third-party FX)'를 전격 허용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결제 실패 가능성을 제로(0)로 만들기 위해 증권결제 목적에 한해서는 외국인투자자도 일시적으로 원화대출(Overdraft)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국제예탁결제기구인 유로클리어 및 클리어스트림의 국채통합계좌 개통에 맞춰 국제 표준으로 통용되는 국제예탁결제기구 내에서의 장외 채권거래, 이자상환 등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거주자 간의 원화거래는 모두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할 수 있도록 허용할 예정이다. 외환당국에서는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르는 비거주자 간의 원화거래와 비거주자에 대한 원화대출에 대한 공포심을 항상 마음 한켠에 가지고 있다. 위에 언급한 항목들은 그간 엄격한 외환규제 중에서도 타협할 수 없는 '레드라인'에 해당하는 항목으로 분류되는 과제들이었다.
우리 외환시장 개방은 한 번 시작하면 되돌릴 수 없다. 그러나 우리 경제와 금융시장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가야하는 길'이라는 데는 외환당국뿐만 아니라 국내외 시장 참가자들 어느 누구도 이견이 없다. 우리나라의 순대외금융자산, 외환보유액 등 대외안전판도 우리가 위기를 겪던 그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두터워졌다. 이제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새로운 항해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가지고 외환시장 개방을 추진하고자 한다.
(서울=연합인포맥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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