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헌의 통화&시장] 인내할 수 있는 지혜
6월 27일 미국의 대선 후보 첫 TV 토론은 트럼프의 압승으로 끝났다. 다음날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예상에 부합하는 미국 개인소비지출(PCE)에도 불구하고 장기금리가 10bp 넘게 올랐다. 트럼프 당선 시 예상되는 미국의 관세 인상과 감세에 따른 재정적자 확대가 가져올지 모를 인플레이션 재상승과 미 연준의 피벗 지연 우려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미국의 예외적인 경기팽창(US exceptionalism)에 더해 이러한 우려가 현실화된다면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내에서는 얼마 전부터 금리인하 기대가 커지고 있다. 특히 5월 산업생산, 소매판매 및 투자가 모두 감소한 것으로 나오자 금리를 인하하여 내수를 진작시켜 경기를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월별 지표의 경우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그 흐름을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이러한 주장은 전체 거시경제 흐름을 볼 때 성급하지 않나 싶다.
높은 금리가 수요를 억제하고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러자고 금리를 올린 것이다. 높은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서는 긴축적 통화정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3.5%인 우리나라 기준금리는 경제활동을 제약하는 수준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긴축정책은 소비와 투자를 억제하여 성장을 둔화시켜 수요 측면에서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추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주요 전망기관에서 제시하고 있는 우리 경제의 성장세는 잠재 수준에 근접하는 것이다. 인플레이션도 아직 제자리를 찾아 안정되고 있다고 확신하기는 어렵다. 일부의 주장처럼 금리인하는 총수요를 확대하여 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인플레이션 잔불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될 수 있다.
공급 측면에서도 금리인하에 신중해야 할 이유가 있다. 기업의 생산활동 확대에 있어 임금 등 비용의 안정이 중요하다. 긴축정책으로 물가상승률이 낮아지면 점차 기업이 직면하는 생산요소 비용의 상승률도 하락하여 기업의 생산 확대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런데 지금과 같이 인플레이션이 아직 제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에서 금리 인하를 통한 총수요 확대 정책은 인플레이션 기대를 다시 높여 이러한 균형으로의 복귀 흐름을 방해하여 오히려 경제의 총공급 회복을 지연시킬 수 있다.
교역에 크게 의존하는 우리 경제의 특성상 수입 비용 면에서의 인플레이션 요인이 적지 않다. 특히 더욱 확대되고 있는 미국 등의 보호무역주의 강화가 국내 인플레이션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불확실성이 크다. 중동지역 불안으로 해상운송 비용 상승이 지속되고 있는 것도 걱정거리다. 전기 가스 등 인상 요인과 임금 상승 요구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달러-원 환율이 과거보다 금리에 더 민감해진 것도 부담이다. 중국경제의 침체와 일본의 정책 불균형으로 외환시장의 불안정성이 크게 증대되어 있고 달러-원 환율이 과거보다 매우 높은 수준에 올라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섣부른 금리인하는 원화의 추가 약세를 유발해 금융시장을 크게 교란시킬 위험이 있다. 거시경제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것이라는 신뢰를 통해 외환시장 참가자들의 과도한 투기심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향후 인플레이션이 전망처럼 안정될 수 있느냐이다. 인플레이션은 실물경제뿐 아니라 금융 상황의 변화에 크게 영향받고 이 과정에서 여러 금융현상과 밀접한 상호작용을 한다. 이런 점에서 향후 인플레이션 추세를 가늠하기 위해 금융시장 가격과 물량지표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이번 인플레이션 사이클에서는 부동산 가격과 가계 및 기업부채 증가 추이가 중요하다.
2021년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할 때를 기억한다. 그 배경에 가계부채의 급증이 있었다. 2020년 여름부터 통화 증가율이 빠르게 높아지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기업에 대한 금융지원 때문이었다. 전염병이 잡히기 시작한 2021년 여름 즈음부터는 통화 증가율이 제자리로 돌아올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통화 증가율은 더 빨리 오르기 시작했다. 기업 대출이 지속되고 있는 데다 큰 폭의 가계대출 증가가 가세하였기 때문이다. 전국 아파트 가격 상승과 함께 주택 관련 대출이 급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 인플레이션 압력이 함께 커지고 있었다. 최근 금리인하 기대에 따른 아파트 가격 상승, 그리고 가계대출 확대는 인플레이션이 반등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경고하는 것은 아닐까.
인플레이션 대응에 있어 글로벌 경제는 물론이고 우리나라도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인플레이션 안정을 아직은 단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섣부른 금리 인하로 인플레이션 기대가 다시 흔들리고 최근 들썩이고 있는 부동산 가격 상승과 가계대출 증가가 기조로 자리 잡게 된다면 상당한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지금은 좀 더 참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그렇지 않으면 그동안 들인 노력과 견뎌온 고통이 모두 수포로 돌아 갈 수 있다.
(이승헌 숭실대 교수/ 전 한국은행 부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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