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헌의 통화&시장] 그렇게 서두를 일이 아니다
8월 들어 며칠 밤을 잠 못 들고 뒤척였다. 여행 후 시차와 무더위 때문만이 아니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일본은행 및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 회의 결과, 그리고 미 7월 실업률 발표 이후 벌어진 글로벌 금융시장의 요동은 무척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시장금리 급락은 그렇다 쳐도 160엔 위를 넘나들던 달러-엔이 142엔대로 추락하며 현기증을 일으켰다. 주식시장에서도 오랜만에 사이드카, 서킷브레이커 등 시장안정장치가 발동되었다. 미국 경기침체 임박설과 엔 캐리 트레이딩 청산에 대한 우려로 시장은 온통 공포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미 고용시장 상황과 시장 급변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다. 임박한 경기침체에 대응한 큰 폭의 금리인하를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인플레이션 지속에 대한 경계도 여전하다. 무엇이 맞는지 알려면 앞으로 한 두 달이 더 걸릴 것 같다. 필자는 여전히 금리인하를 서두를 이유가 없고 내리더라도 천천히 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그런 생각이 더 굳어졌다.
미 고용시장은 금융시장에 반영된 것처럼 그렇게 빠르게 악화될 것 같지 않다. 7월 실업률은 일시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이 있다. 지난주 신규 실업보험 청구자 수가 시장 예상치를 크게 밑돌기도 했다. 실제가 어떤지는 8월 통계를 통해 확인될 것이다.
이번에 '삼의 법칙(Sahm Rule)'이 크게 주목을 받았다. 실업률의 3개월 이동평균이 직전 12개월 중 가장 낮은 수치보다 50bp 이상 높으면 이미 경기침체에 들어갔다고 판단하는 기준이다. 미국의 과거 데이터를 볼 때 대부분 들어맞았다. 지난 7월 실업률이 이 기준에 닿았다. 미 경제가 경기침체에 이미 들어섰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 기준을 만든 클로디아 삼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미 실업률이 이민자 유입에 큰 영향을 받고 있어 그대로 적용하면 안 된다고 설명한다. NBER(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에서 경기침체 판단에 사용하는 여러 지표(비농업고용, 실질개인소득, 산업생산)가 모두 증가하고 있다. 현재 상황을 경기침체로 판단하기 어렵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이 기준은 경제법칙이 아니라 통계적 규칙성(statistical regularity)일 뿐이라고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미 경제가 경기침체에 들어갔다 아니다보다는 노동시장이 급격히 위축될 것이냐이다. 시장에 영향력이 있는 일부 전문가들이 과거에 삼의 기준이 충족되고 나면 실업률이 지속적으로 200bp 이상 올랐다는 점에 주목했다. 앞으로 미 실업률이 6% 수준 이상으로 오른다는 것이다. 금융시장은 이 점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삼은 2022년 12월 말 한 기고에서 경험적(empirical) 규칙성에 불과한 이 기준을 가지고 경기침체가 곧 도래한다는 전망을 제기하는 것에 자신이 괴물(monster)을 만들어 냈다고 한탄했다.
여하간 앞으로 미국의 실업률이 빠르게 높아질 것인가가 중요하다. 과거 데이터로 보나 경제이론으로 보나 경기침체기에는 실업률이 큰 폭으로 오른다. 고용시장의 위축은 기업수익과 가계소득의 감소를 동반한다. 이러한 실물경제의 위축은 금융위축으로 이어진다. 연체와 부도가 잇따르며 금융기관은 신용공급을 줄인다. 그리고 이는 다시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킨다. 실물과 금융이 연쇄적으로 악순환한다. 이를 막기 위해 중앙은행은 금리를 낮추고 신용공급을 확대한다.
이런 관점에서 금융 부문을 살펴보자. 2주 전 발표된 연준의 2분기 SLOOS(Senior Loan Officer Opinion Survey) 통계를 보면 은행 대출 수요가 확대되고 있고 은행은 대출 심사 기준을 완화시키고 있다. 연초까지 하락하던 통화량(M2)도 완만한 상승세로 전환되었다. 금년 들어 금융 상황이 완화되는 현상을 대변하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신용위축이 발생할 징조를 찾기 어렵다. 최근 발생한 주식 및 외환시장의 큰 혼란은 신용시장과는 괴리된 것이었다. 변동성 지수(VIX)의 급등에도 신용스프레드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회사채 발행도 원활하다. 가계와 기업의 재무 상황이 좋기 때문이다.
미 경제의 70%를 차지하는 가계 부문을 좀 더 살펴보자. FHFA(Federal Housing Finance Agency)에 따르면 2023년 4분기 기준으로 가계가 보유하고 있는 주택담보대출(mortgage)의 96%가 고정금리인데 63%가 4% 미만이다. 현재 신규 모기지 금리가 평균 7% 가까이 되고 있지만 장기대출을 보유한 가계수지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고 있다. 오히려 머니마켓펀드(MMF) 등 저축에서 5% 이상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이는 팬데믹 이후 저금리로 장기자금을 조달한 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최근 신용카드 부채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연체율도 높아지고는 있으나 이를 두고 가계부문의 건전성과 소비 여력을 우려할 것은 아니다. 미국 가계 빛의 70%는 저리의 모기지가 차지하고 있고 신용카드는 6%에 불과하다. 다른 통계를 보면 연체된 가계부채의 비중이 전체 가계부채의 3%를 조금 넘는 수준에서 더 증가하지 않고 있다. 역사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금융 부문이 이렇게 양호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향후 통화정책 운영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2020년의 경험을 뒤돌아보자. 팬데믹의 엄청난 충격에도 경기침체는 단기에 그쳤다. 통화 및 재정정책의 역할도 컸지만 자본 여력이 충분한 금융 부문이 실물경제에 신용을 확대 공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신용공급 시스템이 붕괴된 2008년 위기 시와 전혀 달랐던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은행의 신용창조 능력을 감안하지 않은 과대한 정책지원의 지속은 인플레이션을 발생시켰다.
미국 은행시스템에 거대한 본원통화가 공급되고 있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연준은 양적완화를 통해 은행이 결제자금으로 필요로 하는 지급준비금(지준)을 매우 풍부하게 유지하고 있다. 이 시스템에서 은행들은 지준부족의 불확실성에 노출되지 않을 뿐 아니라 지준이라는 초우량 자산을 확보함으로써 대출 등 위험자산을 더 많이 보유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매우 높은 신용창조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는 5.5%의 높은 금리로 억제되고 있을 뿐이다.
9월부터 이 '제약적' 수준의 금리가 낮아질 것이다. 만일 연준이 시장의 기대와 같이 큰 폭의 금리인하를 단행한다면 큰 실수가 될 것이다. 시장의 유동성은 매우 빠르게 확대될 것이다. 그 결과는 먼저 자산 가격 급등으로 나타날 것이다. 심할 경우 인플레이션 경로를 다시 위로 향하게 할 수 있다. 그렇게 서두를 일이 아니다. 거시경제가 균형으로 안착하도록 좀 더 다질 필요가 있다.
몇 년을 고생하여 정상에 올랐다. 그러나 산을 오르기보다 내려가기가 더 힘든 법이다. 지름길을 찾아 자칫 깊은 골짜기로 들어설 경우 더 멀고 험한 길을 가야 할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이승헌 숭실대 교수/ 전 한국은행 부총재)
주의사항
※본 리포트는 한국무역보험공사가 외부기관으로부터 획득한 자료를 인용한 것입니다.
※참고자료로만 활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