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칼럼] 해리스가 소환한 가격통제 히스토리
(서울=연합인포맥스) "나는 오늘 미국 전역의 모든 가격과 임금을 동결할 것을 명령한다"
1971년 8월15일,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전국으로 방영되는 TV 연설에서 미국 경제사에서 가장 놀랄만한 정책을 발표한다. 90일간 물가와 임금을 동결해야 하며, 이후 인상하려면 당시 도널드 럼스펠드 대통령 경제고문이 주도하는 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동결 조치의 해제는 공교롭게도 1972년 대선 이후에나 이뤄질 것으로 계획됐다.
경제학자들은 경악했지만 국민, 심지어 언론조차도 우호적이었다. 여론조사에서 무려 75%가 가격 통제에 찬성했다. 실제 물가도 1970년 5% 후반에서 1972년 3% 수준으로 떨어졌고, 1972년 닉슨은 압도적인 지지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문제는 1973년 1월 가격 통제를 풀자마자 물가가 급등했다는 점이다. 닉슨은 같은 해 6월 다시 가격 통제를 실시했지만, 이번에는 소용이 없었다.
특히 쇠고깃값 급등을 막기 위해 정부가 육류 가격 상한제를 꺼내자 목장주들은 도축을 미뤘고, 농부들은 사룟값 급등에 닭을 물에 빠뜨려 죽였다. 슈퍼마켓의 선반은 텅 비워져 갔다.
1차 오일쇼크까지 겹쳐 1974년 물가 상승률은 11%에 달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예측했듯이 닉슨의 가격 통제는 결국 '완전한 실패'로 끝났다는 평가가 나왔다.
◇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독일 가격통제
나치 독일은 인위적으로 낮은 가격에 군수 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1936년 가격 통제를 도입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한 후에도 전승국 미국·영국·프랑스·소련 연합국은 가격 통제를 유지해 독일 국민은 약 12년간 가격통제를 받았다.
라이브러리 오브 이코노믹스 앤드 리버티(Econlib)에 따르면 1948년 5월 생계비 지수는 1938년에 비해 31% 높은 수준이었으나 1947년 기준 독일 통화량은 1936년 대비 5배에 달했다. 통화량이 이전 수준의 몇 배에 달했지만 물가는 극히 일부만 상승해 물자 부족이 불가피했다.
가격 통제로 식품 부족이 심각해지자 일부 사람들은 스스로 식량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사람이 농부들과 식량을 물물교환하기 위해 주말 시골로 향했다. 사람들은 달팽이처럼 느린 속도로 달리는 기차에 몸을 싣고 수 백마일을 이동해 개인 소지품을 몇 주간 먹을 곡식과 감자로 바꿨다. 기업에서는 '물물교환 전문가'라는 직책이 생겨날 정도였다.
독일 경제학자 발터 오이켄은 물물교환·자급자족은 노동분업과 양립할 수 없다며 "경제시스템이 원시적인 상태로 축소된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 1948년 3일 독일 전국 생산량은 1936년의 51% 수준에 불과했다.
△ 인플레를 잡기 위한 캐나다의 가격통제
캐나다는 1차 세계대전 중 인플레이션이 심해지자 가격 통제를 실시했다. 당시 총리였던 윌리엄 라이언 매켄지 킹은 전쟁조치법을 통해 전시물가 및 무역위원회를 설립해 물가가 통제 불능으로 치닫는 것을 막고자 했다.
처음 위원회는 임대료와 석탄, 설탕, 목재, 철강, 우유 등 일부 상품에 부분적인 제한을 거는 비교적 미미한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으로 1941년 생활비가 급격하게 오르기 시작하자 킹 총리는 라디오 방송에서 물가와 임금을 통제한다고 발표했다. 도널드 고든 전시물가 및 무역위원회 위원장은 가장 파워풀한 인물로 떠올랐고, 그는 화폐가치를 유지하려면 엄격한 통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직설적인 메시지를 캐나다인들에게 던졌다.
위원회는 13개 구역과 100개 지역 사무소로 구성된 거대 조직을 구축했다.
하지만 가격 통제로 공급이 부족해졌고, 전쟁으로 인한 노동력 부족으로 이 현상은 더욱 심화됐다. 많은 상품이 너무 부족했던 나머지 배급이 실시돼야 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배급 물자에 만족하지 못했고 결국 암시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소매업자들은 저품질 상품을 대중에게 제공하고, 고품질 상품은 암시장에서 팔았다. 싱크탱크 미국경제연구소(AIER)는 통제된 가격이 아닌 암시장 가격이 결국 '진짜 가격'이었다고 지적했다.
△ 해리스의 가격통제 공약…성패 여부 주목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식료품 대기업의 과도한 가격 책정을 법으로 단속하겠다고 공약해 뜨거운 논쟁이 일고 있다.
지난 16일 해리스 부통령은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경제 공약을 밝히면서 "식료품 바가지 가격을 연방 차원에서 금지할 것"이라면서 "대기업이 소비자들을 불공정하게 착취해 폭리를 취할 경우 새로운 규제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지 언론들은 줄줄이 실패했던 가격 통제의 역사를 언급하며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은 사설에서 해리스가 닉스노믹스(Nixonomics, 닉슨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지지했다며 "가격 고정이 가능하다고 해리스가 믿는다면 그는 경제학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일부에서는 반대의 의견도 나오고 있다. 우선 앞선 역사적 사례의 경우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 금본위제 폐지, 오일쇼크 등 거대 변수가 출현한 격동의 시기였기 때문에 지금의 환경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악시오스는 해리스의 '바가지 단속' 정책과 '가격 통제'는 다르다며, 정부가 약간만 개입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인해 인슐린 가격이 월 35달러로 제한된 것을 그 예로 들었다.
일부에서는 바가지 단속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지 아직 밝히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논란은 해리스가 적절한 세부안을 마련할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봤다.
물가 급등은 조 바이든 정권의 가장 큰 치부로 여겨진다. 바이든의 정책을 상당 부분 이어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해리스가 '바가지 단속'으로 전 정권과 다른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역사와는 다른 스토리를 써 내려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국제경제부 문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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