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은 지금] 해리스가 '기회 경제'를 내세운 이유
(뉴욕=연합인포맥스) 진정호 특파원 = "나의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기회는 모두에게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고. 그것이 우리가, 말하자면, '기회경제(opportunity economy)'를 만들려고 하는 이유다. 기회경제는 모두가 경쟁할 기회가 있고 성공할 기회가 있는 경제다."
지난주 열렸던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DNC)에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은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 자신의 경험담을 녹여냈다.
"나는 중산층 출신으로 어머니가 가계를 엄격하게 유지했다. 우리는 우리 예산 내에서 살아야 했지만, 더 바라는 것은 별로 없었다. 어머니는 우리가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고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기를 기대했다. 그녀가 말했듯이 기회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해리스가 민주당 대선 후보로 공식 지명되면서 미국 대선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가운데 그는 기회경제가 자신의 핵심 키워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10% 보편 관세'로 대변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관세 인상과 무역전쟁, 대(對)중국 압박을 핵심 정책으로 내세웠고 이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해리스는 갑작스럽게 등판한 만큼 어떤 의제가 핵심인지, 어디에 주안점을 두는지, 어떤 비전을 가졌는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월가에선 해리스의 경제 정책과 영향을 해부하느라 분주하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적어도 4월부터 기회경제라는 표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바이든 정부가 "미국인들을 위해 어떻게 경제적 기회를 구축하고 전달해왔는지 보여주기 위해" 해리스가 전국 순회를 발표한 시점이 올해 4월이다.
전국 순회에서 해리스는 ▲자본 접근성 강화 ▲소기업 투자 ▲주택 비용 관리 ▲국민들의 자산 증식을 위한 또 다른 조치 등의 의제를 공론화했다.
해리스는 특정 품목의 가격 인상을 연방 차원에서 금지하겠다는 규제부터 주택 구매자에 대한 지원 확대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포괄하는 도구로 기회경제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지금 미국 언론과 월가는 해리스가 기회경제를 말하며 '무엇을 내세웠는지'보다 '무엇을 내세우지 않았는지'에 더 주목하는 분위기다. 평등과 분배, 다양성과 형평성 등은 민주당을 관통하는 핵심 가치인데 해리스의 기회경제에선 이같은 표현들이 의도적으로 배제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WSJ은 "부통령으로서 해리스는 평등뿐만 아니라 형평성과 '공평한 분배'를 자주 주장하지만, 이 용어에 대한 그의 정의가 항상 정확한 것은 아니다"라며 "이번 수락 연설에서 해리스가 그런 우선 가치를 버렸다는 신호는 없으나 두드러지지 않은 것도 사실"이라고 짚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공개한 해리스의 수락 연설 전문을 보면 '기회'라는 단어는 6번이나 언급됐지만 '부자'나 '다양성', '형평성', '분배'라는 단어는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그동안 나왔던 민주당 대선 후보나 대통령의 연설과 비교하면 이질적이다.
미국 투자전문지 배런스는 "해리스가 민주당 후 대선 후보로 올라선 지 몇 주 만에 그의 대선 캠프가 더 좌파적인 입장 중 일부를 포기했다는 신호를 보냈다"며 "해리스는 더는 모두를 위한 의료 보험을 지지하지 않고 연소득이 10만달러 이상인 사람에게 세금을 더 부과하는 계획도 포기했다"고 전했다.
해리스의 이같은 기조는 공화당의 전통적인 수사를 일부 차용함으로써 중간 지대를 넓히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되고 있다.
WSJ은 "'기회'는 인기가 덜한 재분배나 형평성, 다양성은 함의하지 않으면서도 연방 자원 활용 같은 인기 있는 민주당적 의제를 연상시킨다"며 "또한 '기회'는 '애국심'이나 '자유'처럼 공화당원 사이에도 오랫동안 인기 있었던 표현"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또한 세금 혜택이 있는 '기회 구역'을 조성하는 것이 대표적인 도시 정책이었다. 더 과거에는 공화당 소속인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1986년 연설에서 "모든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성공 기회를 갖는 사회에 전념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월가는 해리스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경제 정책을 대체로 계승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기회경제의 모호성보다는 시장에 미칠 여파에 더 관심을 두는 모습이다. 민주당의 핵심 정책인 법인세 인상 등이 현실화하면 시장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 추산하느라 분주하다.
제프리스의 아니켓 샤 워싱턴 부문 리서치 총괄은 "법인세율이 높아지면 증시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법인세를 21%에서 28%까지 높이고 재무 모델을 통해 특정 시나리오를 돌려본다면 그것보다 증시에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울프리서치의 토빈 마커스 정치 및 정책 부문 총괄은 "해리스 캠프는 전략적 모호성에 빠져 있다고 본다"며 "유권자들에게 그들의 문제에 관심 있다는 것은 보여주고 싶지만, 후회할 수 있는 정책 세부 사항은 약속하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투자 노트에서 "이는 해리스가 대선에서 이길 경우 그의 정책 의제가 투자자들에게 이례적으로 나쁜 신호를 보낼 것이라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모건스탠리는 해리스의 승리가 투자자들에게 이로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모건스탠리의 마이클 제자스 미국 공공정책 연구 총괄은 "민주당은 대통령 행정 조치를 통해 하고 싶은 것은 거의 다 한 상황"이라며 "민주당의 승리는 투자자들이 현재 경제 주기의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와 성장, 물가,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상호작용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jh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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