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혁의 투자] '나쁜 건 나쁜 거야'
(서울=연합인포맥스) 두 달 전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를 가로막던 원화 약세 공포는 잦아들었다. 미국의 고용 호조와 뉴욕 증시의 상승세를 연료로 삼아 1,400원 선 상승 돌파를 위협하던 달러-원 환율이 지금은 거래 수준을 몇 단계 낮췄다. 항상 공포의 강도가 위험의 양보다 큰 서울외환시장의 심리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하지만 올해 초 연중 저점인 1,290원 수준까지는 내려가지 못하고, 1,320원에서 번번이 막히고 있다. 원화가 나름 안정세를 찾았지만, 추가 강세는 보이지 않는 장벽에 막힌 형세다. 장벽이 외환시장 내부의 단순한 수급 문제일 수 있지만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모순 탓일 수도 있어 보인다.
최근 글로벌 달러 가치가 하락하는 배경에는 미국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있고, 이는 달러-원의 상승세를 꺾은 주동력으로 작용했다. 그동안 유럽, 아시아와 달리 미국 경제만 차별적인 높은 성장세를 보여왔지만 요즘 들어 발표된 미 제조업과 고용 지표의 둔화 조짐이 우려를 낳고 있다. 미 경기가 나빠지면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인하해 유동성을 공급해줘 호재라는 '나쁜 것이 좋은 것'이라는 낙관론이 더 이상 안 먹히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빅테크가 이끌던 뉴욕증시 랠리가 흔들리는 데다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라는 불확실성이 등장했다. 점점 다가오는 미 대선에 대한 막연한 불안도 있어 보인다. 그래서 연준이 만일 9월에 '빅 스텝(50bp)' 금리인하라도 나선다면 그만큼 미 경기가 큰 침체에 빠질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라는 걱정도 커지고 있다.
'나쁜 것이 나쁜 것'이라는 새 흐름은 위험자산으로 분류되는 원화에 좋지만은 않다. 글로벌 달러 약세 덕분에 이전의 원화 약세가 되돌려지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어느 정도 강세가 진행되고 나면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게 하는 '현실 자각'의 기회를 꼭 주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가 나빠지면 우리 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지, 원화를 감싼 속살이 괜찮은지 자연스레 들여다보게 하는 셈이다. 한 마디로 우리 경제는 수출만 잘되는 구조적인 한계에 부딪힌 상태라는 게 중론이다. 실질성장률은 잠재성장률을 웃돌고 소비자물가도 둔화되는 등 지표는 좋지만, 경제주체들의 체감 경기는 바닥인 게 현실이어서다. 경기 회복이 수출을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가계와 내수 경기는 온기를 못 느끼고 있다.
게다가 이렇게 나쁜 내수 상황에도 최근 부동산 시장의 상승세는 또 다른 불안을 낳는다. 가계부채 위험과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민감도를 높이고 있어서다. 한국은행은 팬데믹 이후 수도권을 중심으로 주택가격이 크게 상승하면서 자산 불평등이 심화한 점이 체감경기 부진에 일조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경제주체가 느끼는 체감경기는 자신의 소득이나 자산변동뿐 아니라 다른 주체와의 상대적 격차에도 영향을 받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소득 불평등 정도는 주요 선진국에 비해 높지 않지만, 불평등에 대한 사회적 민감도는 여타 국가에 비해 높은 편이라고 한다. '나쁜 것이 나쁜 것'이 되는 글로벌 국면에서 원화의 지속적인 강세가 가능해지려면 우리 경제의 근원적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구조개혁 노력이 동반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해 보인다. 경제구조 개혁이 시급하다. (취재보도본부 금융시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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