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헌의 통화&시장] 큰 불확실성을 넘어서려면
9월 30일 상당 폭 하락하기는 했으나 미국 금융시장은 1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50bp '빅컷' 가능성을 50% 이상으로 반영해 왔다. 몇 달간 미국의 소비와 고용에서 엇갈리는 지표들이 나오고 있다. 인플레이션율 자체는 뚜렷한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으나 기대인플레이션이 불안해지는 모습도 관찰된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도 마찬가지다. 지난 9월 FOMC의 경제전망요약(SEP)은 분명한 방향성을 보여주었으나 그 진행 속도에 대해서는 오히려 크게 분열된 모습을 보였다. 시장이 싫어하는 불확실성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기자간담회는 이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시장은 50bp 인하를 경기침체 위험과 연관시키고 있었지만 그는 이번 빅컷이 노동시장의 강건함을 유지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급속한 노동시장 냉각 위험에 대한 언론사들의 거듭된 질문에 파월은 재조정(recalibration)이라고 거듭 정의했다. FOMC는 50bp 인하를 통해서 경기침체의 가능성을 헤지(hedge)하는 한편 재조정이라는 뉘앙스(nuance)로 시장의 불안을 잠재웠다. 그리고 향후 정책은 매 회의마다 결정될 것이라고 했다. 시장은 저만치 앞서가며 연준을 압박하고 있지만 연준은 현재 경제에 내재된 불확실성에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매우 큰 전환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2021년 늦봄 즈음으로 기억된다. 한국은행 일부 부서에서 매우 의미 있는 보고서가 여러 개 제출되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발발을 예측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 달러화 강세의 장기화 전망도 제기되었다. 향후 2~3년의 큰 방향성을 이해하고 전망하는 데 매우 중요한 논의였다. 결과적으로 그 보고서들의 통찰력은 매우 정확했다. 또 하나의 보고서가 기억이 생생하다. 향후 글로벌 경제가 큰 경제권별로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었다. 미국, 중국, 유럽 및 일본 경제가 서로 비동기화 되며 다른 모멘텀을 가지고 움직일 것이라고 했다. 다름 아닌 바로 지금의 모습이다. (당시 모두들 코로나에 대한 단기 분석에 빠져 있을 때 이런 앞을 내다보는 주장을 할 줄 아는 후배들과 같이 있었던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먼저, 미국 경제의 방향 전환은 자리를 잡았지만 연준의 금리인하 경로가 이렇게 불확실한 경우는 드물다. 재정지출의 큰 영향과 시장 자체가 만들어내는 금융 상황이 연준의 정책 결정을 어렵게 하고 있다. 11월 대선 결과가 내재하고 있는 불확실성도 매우 크다. 물가안정과 완전고용이라는 서로 엇갈리는 양대 책무도 연준과 시장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누적된 모순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새로울 것은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줄곧 제기되어온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누적되어 온 것이다. 이제는 가래로도 막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중국은 이제 더 이상 미루기 어려운 거대한 디레버리징(deleveraging) 압력으로 장기침체에 빠질 위험에 직면해 있다. 지난 달 시장 예상을 넘어서는 경기대응책이 나왔으나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한 강력한 정책 없이는 큰 흐름을 바꾸기 힘들 것이다. 거대한 중국 경제가 흔들리며 큰 파동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 파고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일본도 오랫동안의 상수에서 벗어나 글로벌 금융시장의 주요 변수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 일본은행을 압박했던 엔화의 대규모 약세 압력은 그 전조증상이라고 할 수 있다. 글로벌 경제의 금리인하 사이클을 거슬러 올라가는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은 엔화의 중요성을 새롭게 각인시키고 있다. 저금리의 안정적인 엔화 자금이 사라지면서 글로벌 펀드 움직임에 양적, 질적으로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그 방향 전환이 얼마나 가파를지, 어디까지 갈지 아직은 속단하기 힘들다. 그러나 장기간 경험해 보지 못한 엔화의 움직임에 내재된 불확실성이 큰 만큼 변동성도 크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불확실한 대외 환경변화에 비하면 국내 주택가격 상승과 가계 빚 누증의 문제는 그 방정식이 그리 복잡하지 않다. 아마 가계대출의 증가세 지속 여부는 한두 달 내에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 문제가 2000년대 들어선 이후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2005년에도 아파트 가격이 서울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빠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낮은 수준을 보였던 전국 주택가격 상승률도 2006년 4분기 이후 급등했다. 그 배후에 주택담보대출의 높은 증가세 지속이 있었다.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빠르게 올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한국 경제가 휘청거린 배경으로도 작용했다. 2021년에도 한국 경제는 다시금 비슷한 증상을 경험했다.
주택금융과 주택가격, 인플레이션 그리고 금융위기의 밀접한 연관관계에 주목해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금융시장은 근본적으로 변했다. 그 이전에 은행들은 대기업의 주된 자금 조달처였다. 그러나 1997년 말 외환위기의 충격이 기업에 높은 레버리지를 제공한 시중은행들을 강타하면서 소위 5대 시중은행(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이 사라졌다. 대기업들이 주식, 채권 등 직접금융으로 옮겨가면서 그 자리를 대체한 것이 주택금융이다. 은행의 주된 영업 기반이 기업어음할인에서 주택담보대출로 바뀐 것이다.
이러한 금융구조 변화의 과정에서 한반도는 온통 아파트로 뒤덮였다. 아파트는 주거지 이상의 것으로 변모했다. 지역별 면적별로 표준화된 투자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21년 말 한국 가계 자산 중 주택 등 비금융자산의 비중은 64.4%에 달한다. 미국(28.5%) 일본(37.0%)에 비해 매우 높다. 특히 아파트가 대부분 거대 단지로 조성되어 공급되다 보니 공급의 비탄력성이 매우 크다. 반면 아파트 수요는 주택가격 상승 기대에 빠르게 반응한다. 가격 안정기에 전세로 잠재되어 있다가 가격상승 기대가 커지면 매수수요로 빠르게 전환한다. 아파트 수요는 강남과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군불을 때다가 가격 상승 기대가 본격화되면 들불같이 전국으로 퍼져 나간다. 주택담보대출이 그 연료의 주된 공급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제 주택금융의 안정 없이는 한국 거시경제의 안정은 기대하기 어렵다.
글로벌 경제는 큰 전환기에 접어들었다. 미국, 중국, 일본이라는 거대 경제권이 각기 다른 방향과 모양새로 움직이고 있다. 단기적 변화보다는 중장기적인 변화의 방향과 크기가 중요하다. 한국 경제가 지속적인 성장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변화 사이에 제대로 포지셔닝 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거시경제와 금융이 중심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 2021년 우리는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상함으로써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큰 충격을 상대적으로 잘 버텨낼 수 있었다. 이번에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이번에도 주택시장 안정 여부가 관건이다. 10월이냐 11월이냐가 중요하지 않다. 큰 그림이 제시되기를 기대한다.
(이승헌 숭실대 교수/ 전 한국은행 부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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