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버린 주목도 낮은 캥거루본드, 외평채 낙점에 의구심 증폭
"WGBI 사전 마중물" 연내 조달 잰걸음
이례적 조달 행보, 효용성·상징성 모호
(서울=연합인포맥스) 피혜림 기자 = 기획재정부가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의 조달처로 호주 시장을 낙점했다. 외평채로는 처음으로 캥거루본드(호주달러 채권)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
다만 관련 업계에서는 이례적인 외평채 행보를 두고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다. 국가 부채 부담이 커지는 상황인 데다 이번 발행물의 효용성과 상징성마저 모호하다는 지적이다.
남은 발행 한도 또한 정부채의 벤치마크 위상과는 거리가 있는 3억달러에 불과하다. 캥거루본드 시장의 경우 해외 정부의 관심 또한 크지 않다. 시장 비수기로 진입 중인 연말을 앞두고 돌연 발행 작업에 나선 점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돌연 캥거루본드 채비, 한도 소진 배경은
15일 투자은행(IB) 업계 등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호주달러 외평채 발행을 위한 준비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달 초 주관사 선정을 마친 데 이어 이달 말 로드쇼, 12월 초 발행에 나설 전망이다.
기획재정부는 이미 지난 7월(납입일 기준) 10억달러 규모의 외평채 발행을 마쳤다. 이후 별다른 조달 움직임이 없었던 데다 통상 외평채는 발행 한도가 남더라도 연 1회 정도만 시장을 찾았던 터라 관련 업계에서는 이번 행보를 두고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앞서 기획재정부는 국회로부터 올해 외평채 발행 한도로 13억달러를 승인받았다.
기획재정부는 호주달러 외평채 조달은 지난 10월 결정된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에 대응한 행보라고 설명했다. 호주의 경우 연기금 등 다수의 우량 투자자가 존재한다. 이번 조달로 이들과의 접점을 넓히고 한국 국채 시장에 대한 관심을 북돋겠다는 것이다.
한국과 호주의 자본시장 협력 강화 및 조달처 확대도 기대 요소다. 호주는 한국의 중요한 무역국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어 이번 조달로 자본시장에서의 협력 또한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캥거루본드는 글로벌 시장 변동성 및 이벤트 등의 파급력이 비교적 덜하다는 점에서 안정적인 조달처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최근 국내 금융기관과 회사들의 호주달러 채권 발행이 늘고 있다"며 "이번 조달로 정부가 기준금리 제시해 벤치마크 역할을 한다면 기업들의 관련 자금 조달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가부채 부담 느는데…" 관치 조달 비판론도
글로벌 채권 시장 내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외평채는 꾸준히 실효성 논란에 휩싸여왔다. 과거 금융위기 등의 불안 속에서 정부가 벤치마크 역할을 하던 시대가 막을 내렸기 때문이다. 최근 국가부채 문제가 더해지면서 도리어 이자 비용 및 채무 부담을 높이는 외평채 조달 필요성에 의구심이 가중되고 있다.
관련 업계에서는 이번 캥거루본드 발행 또한 큰 실익이 없을 것으로 관측하면서 기획재정부의 기대와는 온도 차를 드러냈다.
캥거루본드의 경우 해외 정부조차도 자주 활용하지 않는다. 더욱이 3억달러는 정부의 벤치마크 역할을 하기에도 다소 작은 규모라는 점에서 도리어 국가 위상을 고려할 때 아쉬움이 남는 조달 행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해외 정부가 호주달러 채권을 찍은 건 2004년 이탈리아와 2005년 스웨덴 정도에 그쳤다는 후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선진국의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 정부채를 발행하는 경우 자체가 드문 데다 양국 관계 증진 측면에서 고려해도 이번 캥거루본드는 발행 규모와 상징성 모두 모호해 보인다"며 "대한민국 정부가 3억달러도 없어서 시장을 찾는다는 이미지로 비칠까 우려될 정도"라고 전했다.
벤치마크 역할에 대한 기대감도 미미하다. 캥거루본드의 경우 이미 한국수출입은행·KDB산업은행 등의 국책은행을 필두로 발행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한국주택금융공사의 호주달러 이중상환청구권부채권(커버드본드) 조달로 국제 신용등급 기준 'AAA' 크레디트물마저 등장한 실정이다.
캥거루본드의 경우 주요 투자자 또한 호주에 국한되지 않고 아시아와 유럽 등으로 다양하다. 이에 이미 기존 국내 발행사들이 호주 배정 비율을 높이면서 역내 기관과의 접점 확대에 나서왔다.
더욱이 외평채에 앞서 신한은행이 캥거루본드 조달을 준비 중이다. 통상 외평채 발행 후 후발주자가 조달에 나서 정부의 벤치마크 금리 효과를 누렸던 것과 대조적이다. 신한은행의 경우 지난 9월 주관사단 선정 절차에 나서는 등 사전에 캥거루본드 발행을 준비해왔다.
이번 외평채의 경우 과거 조달 대비 조급함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업계 내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정부가 지난달 말에 이르러서야 관련 절차에 나선 데다 호주달러 시장도 12월 중순부턴 비수기에 접어든다는 점에서 준비 기간이 촉박하기 때문이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통상 RFP 배포 후 일정 수준의 시간을 주던 것과 달리 이번엔 관련 절차까지 소요되는 기간이 급격히 단축됐다"며 "연말이다 보니 채권을 찍을 수 있는 시장 자체가 얼마 없어 캥거루본드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달처 확대 시 투자자는 해당 시장을 꾸준히 찾을 지 등을 주목한다. 물량을 지속해 공급하면서 유동성을 높이고 관계를 이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외평채는 연간 한차례 정도만 발행에 나서기 때문에 조달 시장을 넓힐수록 향후 활용도 측면의 한계가 더해질 수밖에 없다. 이에 앞서 외평채를 발행했던 달러와 유로화, 엔화 채권 시장에 더해 이젠 캥거루본드까지 공급해야 한다는 부담마저 생긴다.
이에 기재부 관계자는 "레귤러 이슈어로 자리 잡는 것이 중요한 이슈 중 하나라는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이에 대한 고민도 지속하고 있다"며 "호주 투자자를 중심으로 IR 진행하며 투자 저변 확대 및 벤치마크 금리라는 역할의 목표를 조화롭게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ph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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