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은 지금] 파월은 왜 하필 지금 FAIT를 건드렸을까
(뉴욕=연합인포맥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지난주 미국 댈러스에서 가진 공개 발언 자리에서 세간이 주목한 것은 "금리인하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대목이었다. 파월은 이날 대담 연설에서 현재 경제는 좋은 위치에 있고 금리인하가 다급하다는 어떠한 신호도 보내고 있지 않다면 금리인하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불과 두 달 전 연준이 야심 차게 '빅 컷(50bp 금리인하)'으로 기조를 전환할 때 파월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들을 강력하게 설득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당시 시장 컨센서스는 25bp 인하였으나 연준은 노골적으로 '언론 플레이'까지 동원하며 빅 컷을 관철하려 애썼다.
그 정도까지 했으니 월가는 자연스럽게 연준이 내년 6월까지는 FOMC 회의 때마다 25bp는 인하할 것으로 보던 터였다. 그런데 파월이 두 달도 지나지 않아 '속도 조절론'을 내세우니 월가에서도 어리둥절한 반응이 나오는 상황이다. 엑스(X·옛 트위터)에는 파월의 발언 이후 연준은 도대체 왜 빅 컷을 했었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지난주 공개 발언에서 속도 조절론만큼 시장이 주목한 부분은 파월이 '프레임워크'를 꺼낸 부분이다.
파월은 대담 말미에 "우리는 5년마다 프레임워크를 검토하는데 기본 시나리오(base case)는 좀 더 전통적인 대응 함수 같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이는 오버슈팅(overshoot)을 약속하는 게 아니고 어떤 것도 결정된 것은 없지만 그것이 우리가 현재 묻고 있는 질문들"이라고 말했다.
파월이 말한 프레임워크는 말 그대로 연준 통화정책의 기본 뼈대이자 큰 틀이다. 현행 프레임워크는 2020년 8월 발표된 '유연한 평균 물가 목표제(Flexible Average Inflation Targeting·FAIT)'로 일정 시간에 걸쳐 물가상승률 목표치 2%를 달성한다는 게 골자다. 일정 기간 물가상승률이 2%를 지속적으로 밑돌았다면 어느 정도는 2%를 상회하는 기간을 용인해 평균적으로 2%를 맞추겠다는 게 FAIT의 핵심이다.
이는 '전통적인' 연준의 물가 대응 함수와 다르다. 연준은 전통적으로 물가상승률 2% 목표제를 고수하면서 시간과 평균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지 않았었다. 2% 목표치를 '뻣뻣하고' 기계적으로 추구하는 게 전통적인 방식이다.
파월이 지난주 대담에서 "좀 더 전통적인 대응 함수와 같아야 한다"고 언급한 것은 그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4년 전 도입된 프레임워크를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회귀하거나 최소한 FAIT의 핵심 요소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연준은 5년마다 프레임워크를 재검토한다. '최대 고용'과 '물가 안정'이라는 연준의 이중책무를 달성하는 데 프레임워크가 얼마나 유효하게 기여했는지 평가하는 작업이다. 2020년 잭슨홀 심포지엄에서 도입된 현행 프레임워크는 올해부터 검토를 거쳐 내년 하반기 결과가 발표된다.
파월이 현시점에서 프레임워크를 거론한 것은 시간표상 연준이 이미 재검토에 들어갔기 때문에 이상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프레임워크를 거론하며 전통적인 방식에 더 가까워야 한다고 굳이 언급한 것은 방향성에 대한 힌트를 시장에 던진 것으로 봐야 한다.
주요 외신은 파월의 이날 발언에 대해 "파월은 연준이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연준이 전통적인 물가 목표제로 돌아갈 것이라는 점을 시사했다"고 평가했다.
파월이 전통적인 프레임워크로의 회귀를 시사한 것은 향후 트럼프 체제에서 더 높은 인플레이션이 예상되고 경기침체에 대비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시작되면 고율 관세로 인플레이션이 반등할 것이라는 우려는 이미 채권 및 외환 시장에 반영되고 있다. 이를 고려하면 연준은 미리 기준금리 동결로 돌아선 뒤 필요시 금리를 올리는 게 더 합당한 선택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때 '전통적인 프레임워크'는 통화 긴축의 근거가 될 수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연준이 경기침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이날 대담에서 파월은 연준이 프레임워크를 재검토하며 '제로 금리 하한(zero lower bound·ZLB)' 문제를 중점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제로 금리 하한은 명목 금리가 '0'보다 작아질 수 없기 때문에 정부가 금리인하로 경기를 부양하기 어려운 문제를 가리킨다.
외환 트레이더인 허스트레이딩은 엑스 계정에서 "고금리 환경에서 제로 금리 하한을 걱정한다는 것은 반직관적으로 보이지만 기준금리를 대폭 내려야 하는 경기 하강이 발생할 때를 대비한 계획"이라며 "파월의 발언은 연준이 미래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허스트레이딩은 "연준은 기준금리가 높을 때도 침체나 디플레이션 압력이 강해져 저금리나 제로금리마저 충분하지 않을 때 어떻게 조타할지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2008년 이후 시대의 교훈을 현재의 정책 프레임워크에 통합해 또 다른 유동성 함정을 대비하는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결국 여전히 기준금리가 높음에도 파월이 제로 하한 금리 문제와 프레임워크를 고려하는 것은 당장의 정책이 아니라 미래 연준의 대응 수단(tool kit)을 확보하는 차원이라는 해석이다. 이는 트럼프 체제에서 경기가 더 순탄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한편으로는 프레임워크를 전통적으로 되돌리면 현재 인플레이션 여건에선 연준이 기준금리를 내리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트럼프 정부와 갈등은 더 커질 수 있다.
트럼프는 대선 전에는 연준의 금리인하를 정치적이라고 공격했으나 자신을 '부채의 왕'이라고 부를 만큼 기본적으로 저금리를 선호한다. 그러나 연준이 FAIT를 폐기한다면 2%를 웃도는 인플레이션을 용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트럼프는 파월의 발언이 탐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진정호 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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