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권의 쿰파니스] '트럼프 2.0'과 외환시장 카오스
(서울=연합인포맥스) "트럼프와 같이할 수 없어 스스로 옷을 벗고 나왔다더라". "자신들의 정책과 맞지 않는 인물이라면서 해고했다고 하더라".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미국 워싱턴에서 미 정부 주요 부처를 상대로 아웃리치 활동을 해 온 한 공무원이 전해준 얘기였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자비하게 칼질을 하는 통에 미 공직 사회가 크게 흔들렸다. 결국 미 경제 정책을 진두지휘하는 재무부와 상무부, 무역대표부(USTR)의 많은 '초엘리트' 공무원들은 워싱턴을 떠나 유럽, 홍콩, 일본 등의 금융회사와 기업들로 이직했다. 문제는 수년간 네트워크를 쌓아왔던 사람들이 홀연히 떠나면서 생긴 공백이었다. 흔들린 것은 미 공직 사회뿐 아니라 우리 공직 사회도 마찬가지였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사람도 바뀌기 마련이다. 바뀐 환경에 맞춰 새롭게 네트워크도 구축하고, 서로의 이해관계도 조정하면서 더 발전된 관계로 만들어 가는 게 통상적이다. 하지만 그 전제는 지금까지의 관계가 앞으로도 일정 수준에서 지속 가능할 것이란 기대가 담보돼야 한다. 외교적인 문제이든, 통상적인 문제이든 일단 서로의 눈높이가 비슷해야 대화도 된다. 그런데 앞으로 4년간은 일방적으로 독주하는 미국을 헉헉 대면서 따라가야 할 처지가 될 듯싶다. 우리가 맞닥뜨리게 될 '트럼프 2.0' 시대는 그래서 사실 두렵다. 위기가 기회일 수도 있겠지만 현시점에서는 위기는 그저 위기일 뿐이다. 기회로 만들자는 낙관보다는 위기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현실 직시가 더 좋은 전략이라고 본다.
내년 1월 공식 출범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추진할 많은 정책 중 전 세계가 주목하는 것은 아무래도 강력한 관세정책이 될 것이다. 지구상 교역체계를 완전히 뒤흔들 수 있는 이슈이기 때문이다. 미 상무부를 이끌 수장에 하워드 러트닉 캔터 피츠제럴드 최고경영자(CEO)를 지명하고, USTR 대표에 제이미슨 그리어를 내정할 것으로 알려진 것만 봐도 관세를 무기로 '무역전쟁'도 불사하겠다는 트럼프의 의지는 명확하게 드러난다. "소득세가 없고 관세만 있었던 1900년대 초, 미국은 가장 번영을 누렸다"는 러트닉의 발언은 미국을 상대로 한 교역국엔 섬뜩함 그 자체다. 트럼프의 '경제 책사'이자 1기 트럼프 정부의 USTR 대표를 맡았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의 비서실장 출신이 USTR의 수장이 되는 것 또한 메시지가 무엇인지 뚜렷하게 보여준다.
트럼프 새 행정부가 펼칠 정책이 사실 너무나 명확하기 때문에 오히려 예측도 어렵지 않을 수 있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물론 그럴싸한 분석처럼 보이지만 세상이 1 더하기 1은 2처럼 단순하지 않다. 대외의존도가 너무 높은 우리 입장에선 금융시장과 외환시장 변동성 확대라는 변수까지 고려해야 하므로 셈법은 더 복잡하다. 특히 트럼프 정부가 외환시장을 어느 방향으로 이끌 것인지는 우리에겐 가장 핵심적이고 위협적인 이슈라고 본다.
잘 알려진 것처럼 트럼프의 주변에는 '약(弱)달러 주의자'들로 가득하다. 대외 수출 경쟁력을 높이고 고질적인 무역적자를 해소하려면 달러 가치를 한없이 떨어뜨리는 것이 해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트럼프 정부의 2인자인 J.D. 밴스 부통령은 달러가 세계 기축통화의 역할을 하는 게 미국 국민에게 혜택을 주고 있느냐는 '무서운' 생각을 내뱉기도 했다. 전 세계 교역의 중심축인 달러의 역할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국제 금융시장의 기준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다. 라이트하이저는 더 나아가 '제2의 플라자합의'를 주장한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경쟁국의 경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환율을 무기로 기꺼이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 정부의 핵심 정책인 관세정책은 그들이 주장하는 약달러와는 배치된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강력한 관세부과와 대규모 감세는 강(强)달러로 이끄는 요인들이다. 결국 '목표의 약달러'와 '현실의 강달러'라는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트럼프 정부는 강력하게 외환시장 개입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라이트하이저가 주장하는 것처럼 1985년의 플라자합의와 같은 다자간 협상의 틀을 만들 여지는 충분하다. 물론 그 당시와 비교해 주요국의 경제 및 통상 규모가 거대해져 짬짜미 환율 통제가 쉽지 않다는 지적도 많다. 하지만 트럼프의 '하면 된다' 주의를 가볍게 볼 수도 없다. 환율조작국을 대폭 확대해 교역상 불이익 정도를 넓히는 것, 외환시장 개입 국가에 대해 징벌적 관세를 추가로 부과하는 정책들도 동시다발적으로 다시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나라에는 가차 없이 보복하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실제 그런 정책들이 집행될지 현재로선 가늠할 수 없지만 실제화할 경우 우리 경제와 금융시장, 외환시장에는 폭탄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1기 정부의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과 같은 속도조절론자가 현재까지 두드러지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더 우려된다. 트럼프 당선 이후 정부는 금융·외환시장, 통상, 산업 등 3대 분야에서 별도 회의체를 가동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금융·외환시장 분야는 거시경제금융회의, 통상 분야는 글로벌 통상전략회의, 산업 분야는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통해 대응책을 모색한다고 한다. 협의체를 조기에 구축하고 가동하는 것은 다행스러운 점이다. 다만, 통상·산업 분야에 대한 사전적 대응도 매우 중요하지만, 모든 경제주체에 직접적 영향을 줄 수 있는 금융·외환시장에 대한 대비에 좀 더 가중치를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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