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용의 글로브] 트럼프 2기 국채 발행계획은
(서울=연합인포맥스) 매년 2월과 5월, 8월, 11월 첫째주 수요일에 발표되는 미국 재무부의 '분기 국채 발행계획(Quarterly Refunding Announcement, QRA)'은 금융시장 참가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중요한 이벤트다. QRA 발표를 통해 글로벌 금융시장 움직임은 물론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도 점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상 재무부가 국채를 예상보다 많이 발행하면 국채 금리와 달러화 가치는 상승하고 주가는 하락한다. 연준은 금리를 올리지 않아도 긴축 효과를 얻을 수 있다.
QRA 발표가 도입된 것은 1982년이다. 미국 정부는 1970년대 후반 재정 적자가 증가하면서 국채 발행 규모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여기에 1981년 레이건 행정부 출범 후 감세 정책과 국방 지출 증가로 국채 발행이 급격히 늘어나자 QRA를 전격 도입했다. 일정 주기로 국채 발행계획을 발표해 시장 참가자들이 안정적으로 거래 전략을 세울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연준 통화정책과의 충돌 위험도 줄이기 위한 것이었다.
QRA는 이후 채권시장에서 투기적인 변동성을 줄이고, 국채 금리를 안정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다만 역대 정부의 재정정책과 국가신용도 변화가 시장에 가져오는 영향까지는 차단하진 못했다. 2001년 미국 정부는 30년 만기 국채 발행을 중단, 시장을 출렁이게 했다. 재정 흑자라는 긍정적 요인을 반영한 것이었지만 급격한 정책 변화가 시장을 뒤흔든 것이다. 30년물 국채는 2006년 발행이 재개됐다. 재정수지가 악화하는 가운데 차환 리스크를 줄일 필요성이 커지자 미국 정부가 다시 입장을 바꾼 것이다.
2011년 8월 5일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미국의 장기 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에서 'AA+'로 강등했다. 당시 재무부는 부채 한도 협상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도 QRA 발표를 통해 국채 발행을 지속하겠다고 공표했지만, 주가는 폭락했고 국채 금리는 급등 후 급반락하는 등 요동쳤다. 이 사례는 대규모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상황에선 QRA 발표만으론 시장의 안정을 담보할 수 없다는 평가를 불렀다.(챗GPT 등 AI툴 활용 사례 정리)
재무부는 지난 5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경제 사령탑인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이 취임한 뒤 처음으로 발표된 QRA를 통해 오는 4월까지 석 달 동안의 국채 발행 규모를 종전 석 달과 동일하게 유지했다. '(국채 발행) 규모에 당분간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포워드 가이던스도 그대로 뒀다.(2025년 2월 6일 오전 3시 31분 송고된 '베센트의 첫 국채 발행 계획, 규모·포워드 가이던스 모두 그대로' 제하 기사 참조) 일각에서 베센트 장관이 지난 대선 국면에서 재닛 옐런 전 장관을 여러 차례 비판한 만큼 입찰 규모나 포워드 가이던스에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는 관측이 있었던 만큼 이번 발표는 시장을 안심시키는 재료로 분류됐다.
다만 장기물 발행이 늘어날 가능성 자체가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미국의 재정적자 문제가 해결될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월가 큰손들이 재무부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월가 대형 금융기관의 책임자급으로 구성되는 재무부 차입자문위원회(TBAC)는 QRA와 함께 공개된 서한에서 "앞으로 3년간 누적으로 1조5천억달러의 자금 부족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재무부가 현 국채 발행 규모를 유지하면 재정적자를 메우기가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베센트 장관은 QRA 발표 후 언론 인터뷰에서 장기국채 금리를 상승시키는 일은 꺼려진다는 생각을 드러냈다. "그(트럼프 대통령)와 나는 10년물 국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에너지 비용을 낮춰서 인플레이션이 내려가고 규제를 완화하면 금리는 스스로 조정될 것이고, 달러도 스스로 조정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베센트 장관은 글로벌 투자사인 키스퀘어그룹 창립자로 지난해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후보의 경제자문단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제79대 재무장관으로 지명됐다. 예일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면서 교내 신문 기자로 활동하다가 퀀텀펀드 공동 설립자인 짐 로저스 밑에서 인턴십을 한 게 투자업계에 발을 디딘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집권 2기 경제정책운영의 파워 엘리트로 떠오른 그의 행보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국제경제·빅데이터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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