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원의 뷰포인트] 전환의 신호
(서울=연합인포맥스) 우리는 지금 전환의 시대에 살고 있다. 무역 질서와 국제정치 질서, 국제금융시장의 질서까지 모든 게 바뀌고 있다. 30년 이상 세계무역을 지탱해왔던 자유무역 체제가 막을 내리고 보호무역 체계로 들어서고 있고, 세계화(글로벌라이제이션)은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 철저하게 국익을 따지는 세계정치 질서는 과거의 적과 우방을 가리지 않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고선 더욱 도드라지게 나타난 현상이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이 최고조로 이른 가운데 미국과 러시아는 어느 때보다 가까운 사이로 변하고 있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국제금융시장의 패러다임 변화다. 미국의 장기금리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달러화는 위상이 추락하고 있다. 과거에는 흔치 않던 미국의 채권, 통화, 주식 등이 모두 약세를 보이는 '트리플 약세' 현상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투자자들이 미국 자산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미국 대신 유럽과 아시아로 자금이 이동하는 흐름이 포착되고 있다. 대만달러가 최근 강세를 보이며 아시아 통화의 강세를 유발한 것이 그 예다. 유로화는 달러가 아닌 통화 중에서 제일 안전자산으로 여겨지고 있다. 미국 국채 대신 독일 국채가 투자자들 사이에서 선호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달러 자산에 대한 투자자 노출은 19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월가에선 이를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인 변화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은 미국 자산의 비중을 줄이기 시작했다. 미국 증시가 폭락했다가 반등할 때 헤지펀드 등 스마트 머니들이 뛰어들며 시장을 선도하는데, 요즘은 그런 흐름이 없다. 이건 단순한 자금 흐름의 변화가 아니다. 세계 패권과 지정학 리스크까지 반영된 상징적 움직임일 수 있다.
무디스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하면서 미국의 신뢰, 달러의 신뢰는 더욱 궁지에 몰린 것 같다. 미국의 30년물 국채금리는 5%를 넘고, 10년물 금리도 한때 4.5%를 넘었다. 막대한 정부 빚을 진 미국의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해소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월가에선 30년물 국채금리 5%를 익숙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분간 탈달러와 세계금융시장의 변동이 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은 항상 먼저 움직인다. 요즘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나타나는 각종 지표들은 단순한 '단기 불안'의 반영이 아니다. 그것은 전환의 신호다. 미국 고금리의 고착화, 달러의 흔들림, 글로벌 자본의 이동 경로 변화는 지금 우리가 탈달러·다극화 시대의 초입에 서 있음을 보여준다.
제인 프레이저 씨티그룹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일련의 흐름을 '전환의 신호'로 정의했다. 이는 '탈달러화(de-dollarization)'라는 말이 더 이상 외교적 슬로건이 아니라 시장의 현실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환의 신호 속에 과연 우리나라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환율 리스크는 어떻게 관리할 것이고, 달러 자산은 어떻게 다변화할 것인가. 세계 외교무대에서 우리의 이익은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수많은 숙제가 놓여 있다. 미국 재정 파탄을 보고 우리는 무엇을 느껴야 할까. 우리나라도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복지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이며 이는 재정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씨티그룹의 프레이저 CEO는 불확실성은 위기이자 기회라고 했다. 그 기회를 살리기 위해선 전략적 유연성과 명확한 계획이 필요하다고 했다. 혼란한 세상 한가운데서 방향을 찾지 못하는 우리가 꼭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국제경제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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