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원의 뷰포인트] 부채의 제국…안전자산 왕좌에 오른 금
(서울=연합인포맥스) 올해 글로벌 금융시장의 핵심 포인트는 안전자산의 위상 변화일 것이다. 미국 달러와 국채에 대한 믿음이 약해진 가운데 전통적 안전자산인 금이 승승장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동발 리스크가 커진 최근 금융시장의 움직임에서 이런 변화가 재확인됐다. 이란과 이스라엘의 전쟁이 벌어졌을 때 국제금융시장의 자금은 미국 국채 시장으로 예전만큼 폭발적으로 몰리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달러화도 크게 오르지 않는 현상이 나타났다. 달러와 국채가 안전자산으로서 누리는 지위가 과거에 비해 약해졌다는 의미다.
미·중 관세전쟁의 흐름 속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시장은 미국의 오락가락 정책을 불신하고 부채 문제에 대한 신뢰 상실 등을 이유로 미국 국채와 달러를 내동댕이쳤다. 이를 대신해 찾은 자산은 금이다. 한때 구식 자산으로 치부됐던 '금'이 안전자산의 최고 우선순위로 부상한 것이다. 금은 채권ㆍ주식과 달리 이자와 배당을 주지 않지만, 정부 부채와 정치 리스크와 무관한 자산이라는 점에서 압도적 선택지가 됐다. 금은 이제 지정학적 불확실성을 담보할 수 있는 유일한 자산으로 떠올랐다.
국제 금 현물 가격은 올해 들어 사상 최고치를 세 번이나 갈아치우며 30% 이상 올랐다. 이러한 가격 부담에도 금은 좀처럼 하락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온스당 3천300~3천400달러선에서 안정적 흐름을 보이고 있다. 국제금융계에선 금의 랠리는 단기적 피난처가 아니라 구조적 흐름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내년 말까지 강세장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를 형성하고 있다. 금이 너무 오르다 보니 갈데없는 자금은 은으로 향하기도 한다. 과거 같았으면 미국 국채로 갔을 돈들이 다른 대체 안전자산을 찾아 나선 모양새다.
글로벌 자산시장의 기둥 역할을 했던 미국 국채는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한다. 미국 30년물 국채금리는 4.9% 수준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 미국만 그런 것도 아니다. 영국이나 일본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이들도 장기 국채 수요에 구멍이 났기 때문이다.
일본은 지난주 초장기 국채 발행을 감축하기로 했다. 일본 생명보험사 등 기관투자자들이 일본 장기채 투자를 꺼리고 있어서다. 일본 정부가 국채 발행 물량을 조정한 건 사상 유례없는 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영국도 장기채 수요 부족에 맞서 국채만기를 줄이려 시도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유동성 문제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자산시장이 국가 부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근본적 회의를 품고 있음을 나타낸 증거일 수 있다. 가장 안전한 최후의 보루로 평가받는 국채가 신뢰를 잃으면서 금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미국 국채의 몰락으로 달러의 위상도 추락했다. 미국 달러지수는 연초 대비 10% 하락해 1986년 상반기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달러의 수요 감소는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미국의 무역적자, 재정건전성 악화, 지정학적 우려 등이 고루 반영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기초체력 없는 달러 강세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평가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가 실시한 글로벌 펀드매니저 설문에서 '달러 숏(매도)'이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과밀한 포지션으로 지목됐다. 이는 글로벌 자본이 미국을 떠나 유럽과 신흥국, 실물자산 중심 산업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투자전략의 다극화 시대가 온 것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은 안전한 자산은 무엇이라는 질문에 다시 답을 내려야 할 시점이다. 그 답은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달러는 구조적 약세의 길에, 국채는 신뢰의 기로에 서 있으며, 금은 조용히 왕좌를 되찾고 있다. (국제경제부 선임기자)
jang7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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