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칼럼] 외환시장 경제지표 실종사건
(서울=연합인포맥스) "요즘 경제지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일선 외환 딜러의 이 한마디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과 새 정부 출범 이후 바뀐 글로벌 금융시장의 풍경이 함축돼 있다.
과거에는 주요 경제지표가 어렵다는 환율을 전망하는 데 있어 그나마 '등대' 같은 역할을 했던 존재였다면, 이제는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더욱 압도적인 어둠에 묻혀 존재감을 잃은 모양새다.
이에 경제지표에 대해 차분하고 진중한 논의가 자취를 감춘 모양새다. 구체적인 면면을 살펴보며 환율을 가늠해보려는 노력도 점점 무색해진 느낌이다.
한 은행 딜러는 "지금 상황에서는 펀더멘털이고 뭐고 없다"면서 "원래 미국 주간 실업수당 청구건수가 단기적으로 환율에 영향을 미치고, 고용지표가 나오면 세부 항목을 보고 환율에 어떻게 반영될지 가늠했는데, 요즘은 관세 이야기 외에는 딱히 할 말이 없다"고 푸념했다.
그러면서 "다른 나라에서 어떤 지표가 나오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 어떤 내용이 담겼든 의미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이 펼쳐진 배경에는 트럼프 대통령, 그리고 그가 야기하는 불확실성이 있다. 그는 취임 이후 무역질서를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또 국제질서를 미국에 유리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관세를 무기처럼 휘두르고 있다.
동맹국, 우방국, 인접국을 가리지 않고 고율 관세로 압박하고 중국, 러시아 등 경쟁국에는 100% 이상의 관세 폭탄을 던지기도 했다.
소통 방식도 이례적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메시지를 레거시 미디어뿐 아니라 자신이 직접 만든 소셜미디어를 통해 마구 쏟아내는데 타이밍을 종잡을 수 없다.
경제지표를 보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정책 경로를 예측하는 것도 사실상 무의미해지는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을 조롱하며 기준금리 인하를 종용하고 있고, 해임까지 검토하고 있어서다.
시장 충격을 감안하는 것으로 전해지지만, 언제 갑자기 파월 의장을 해임하고 자기 말을 잘 따라줄 새 연준 의장을 지명할지 모르는 일이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미스터 카오스' 그 자체가 되다 보니 서울외환시장이 경제지표 발표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일선 딜러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환율 움직임을 분석하고 예측하며 베팅해왔는데 예측불허 트럼프 대통령의 영향력이 압도적이므로 지표를 살펴볼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런 현상은 시장에서 미국 대통령이 얼마나 많이 회자하는지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전임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6개월여 동안 서울외환시장 마감 시황에서 '바이든'이라는 이름이 등장한 경우는 9번에 불과했다. 반면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이후 같은 기간 '트럼프'라는 단어는 무려 83차례나 등장했다.
거의 매일 거론됐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다. 이는 시장 움직임과 향후 방향을 논하는 데 있어 '트럼프'가 필수적인 존재라는 의미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해소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4년 임기 중 고작 6개월 정도 보낸 트럼프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갑자기 자취를 감추는 것도 사실 상상하기 어렵다. 가뜩이나 어려운 환율 예측을 트럼프발 불확실성이 더 힘들게 만드는 기간이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란 의미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끝날 그날을 기다리며 어려운 시장환경을 버텨내는 한 딜러의 말을 한층 순화해 적는다. "님아 그 입을 다물어다오". (경제부 신윤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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