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칼럼] '협상의 기술' 그리고 환율
(서울=연합인포맥스) 마감 시한은 협상에서 매우 불리한 요소다. 언제까지 협상을 타결해야 한다는 마음이 커지는 순간 압박감이 클 수밖에 없다.
세계적인 협상 전문가인 허브 코헨은 그의 저서 '협상의 기술'에서 모든 협상 상대는 마감 시한이 있다며 인내해야 대가를 얻는다고 말한다.
그가 첫 협상을 위해 일본으로 갔을 때 일본에 얼마나 머무르는지, 돌아가는 표는 끊었는지 묻는 말에 2주 뒤에 돌아간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만찬과 골프가 이어졌다. 결국 코헨은 비행기 떠나기 전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마감시한이 임박한 협상을 하면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협의와 타결은 마감 혹은 그 이후에 일어나며, 확실히 유리한 상황이 아니라면 서두르지 말라고 조언한다.
이런 협상의 기술이 한미 무역 협상에서도 가능할까. 협상 여건은 녹록지 않다.
마감 시한은 8월 1일. 일본, 유럽연합(EU)이 차례대로 협상에 성공하면서 입지가 매우 좁아졌다. 일본이 상호관세율을 15%로 낮췄고, 앞서 영국은 10%, 베트남 20%,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은 19%로 각각 협상을 마쳤다. 유럽연합(EU) 관세율도 15% 정도로 예상됐다.
이런 상황에서 15%가 기준선이 되면서 한국의 무역 협상 어려움은 더욱 커졌다.
사실 15% 관세도 낮은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과의 협상 상대국이 워낙 많아 상대적으로 낮은 15%에 시선이 집중됐다.
한국의 무역 협상은 어떤 기술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 재무장관의 긴급 일정으로 당초 예정된 한미 간 2+2 협상도 개최가 미뤄졌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전일 오전 9시께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직전에 미국 측으로부터 이메일을 통해 협의 취소 통보를 받았다.
무역 협상에 환율 협의도 함께 이뤄질 것으로 예상됐던 터라 이 같은 일정 변경은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구 부총리와 베선트 미 재무장관의 만남은 빠른 시일 내로 일정을 잡을 가능성이 크지만 한미 무역 협상에 대한 경계심은 커졌다.
일본처럼 크게 내어주고 관세를 깎을 것인가. 마감 시한을 열어놓은 채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협상에 임할 것인가. 앞서 협상을 마친 나라들과 다른 획기적인 안을 제시하면서 판도를 바꿀 것인가.
아카자와 일본 경제재생상은 관세 협상을 위해 8차례 미국을 방문했고, 대면 회담과 전화 통화한 횟수는 러트닉 장관이 15회, 베선트 장관은 7회, 그리어 대표와는 3회 각각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의 상황은 좀 다르다. 계엄 사태 이후 정치 불확실성으로 혼란스럽다 6월에야 새 정부가 들어섰고, 사실상 무역 협상의 새로운 테이블이 만들어진 상태다.
일본이나 유럽과 같은 결과를 몇 번의 협상으로 내놓기는 쉽지 않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의 움직임을 보면 일본 협상 결과에 기대감이 일부 반영됐다. 달러-원 환율은 이번주 들어 1,390원대에서 1,360원대로 30원 이상 하락했다. 국내 증시가 연고점을 기록한 여파도 있지만 일본이 관세를 15%로 낮추면서 엔화가 강세를 보이자 달러 약세가 반영된 영향도 컸다.
달러-엔 환율은 149엔대에서 145엔대까지 내렸다. 일본은 5천500억 달러(약 759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일본산 자동차에 부과하는 관세도 기존 25%에서 12.5%로 하향 조정해 기존 관세 2.5%와 합치면 15%를 적용하게 됐다.
그러나 일본 협상 결과를 되짚어 보는 동안 엔화 환율을 따라가던 달러-원 환율도 다시 우리나라 무역 협상을 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가 어떤 협상을 끌어내느냐에 따라 원화의 여건도 달라질 수 있다.
아울러 트럼프 행정부의 15% 이상 관세 부과가 글로벌 달러에 어떤 영향을 줄지 여부도 중요하다.
미국으로 대미 투자금이 쏟아져 들어갈 경우 그만큼 달러는 강세를 보일 여지가 크다. 달러인덱스는 2개월 넘게 100선을 밑돌고 있지만 하단은 지지되고 있다.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달러가 완전히 약세로 돌아섰다는 확신을 갖기에 앞서 조심스러운 양상이다. 달러-원 환율은 관세와 환율 협상 이야기가 나온 후 이미 100원 이상 내렸다. 지난 4월9일 고점이 1,487.60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이미 1,370원대 달러-원 환율은 큰 폭으로 낮아진 셈이다.
무역 협상 결과가 한국에 매우 괜찮다면 원화 강세를 불러올 수 있다. 하지만 불리한 결과라면 무역의 지각변동으로 달러-원 환율이 크게 하락할 처지가 아닐 공산이 크다.
현재로서는 관세 협상 테이블에서 환율 논의가 빠진 상태다. 미국 관세 협상은 주요국 대미 투자를 늘리는 방향이라 달러 약세를 견인하기도 쉽지 않다.
한 외환당국자는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며 "환율(논의는)은 통상 이슈에 보조를 맞춰가야 할 것"이라고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무역 협상뿐 아니라 달러-원 환율도 갈림길에 서 있다. (경제부 정선영 기자)
syjung@yna.co.kr
<저작권자 (c)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주의사항
※본 리포트는 한국무역보험공사가 외부기관으로부터 획득한 자료를 인용한 것입니다.
※참고자료로만 활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