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현의 글로브] "작은 정부 시대는 끝났다"
  • 일시 : 2025-09-02 08:33:29
  • [문정현의 글로브] "작은 정부 시대는 끝났다"



    (서울=연합인포맥스) 최근 미국 레스토랑 체인점 크래커 배럴(Cracker Barrel)이 회사 로고를 바꾸려다 홍역을 치렀다. 크래커 배럴은 미국 전통 스타일의 레스토랑으로, 남부 가정식 요리와 복고풍 컨셉의 매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통나무집 스타일 외관에 옛스러운 사진과 광고 간판이 벽에 장식돼 있고, 한쪽에는 흔들의자가 있다. 가족 단위와 노년층 고객이 자주 찾는, 전통적인 미국 정서를 선호하는 사람에게 인기 있는 장소다.



    undefined


    회사는 얼마 전 지난 56년간 사용해오던 로고를 바꾸기로 했다. 기존 로고에 있던 '엉클 허셜(Uncle Herschel)' 캐릭터와 '올드 컨트리 스토어(old country store)' 문구를 지우고, 노란색 배경 위에 '크래커 배럴(Cracker Barrel)' 글자만 남겼다. 회사 측은 로고 변경이 현대화의 일환이라고 강조했다.

    고객 반응은 좋지 않았다. 개성이 없고 밋밋하다는 혹평 속에 크래커 배럴 주가는 연일 급락했다. 이에 대해 회사는 '고객과의 소통이 부족했다'며 사과했지만, 정체성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며 로고 교체를 지속할 것임을 암시했다.

    그랬던 크래커 배럴은 결국 8월 말 새 로고를 폐기한다고 전격으로 발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루스소셜에 "크래커 배럴은 기존 로고로 되돌아가야 한다. 고객들의 반응(진정한 여론)에 따라 실수를 인정하고 그 어느 때보다 회사의 경영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 직후였다. 보수층의 반발과 트럼프의 한 마디에 5월부터 리뉴얼에 투입됐던 7억달러는 허공에 사라지게 됐다.



    undefined


    기업에 대한 트럼프의 영향력 행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의류 브랜드 아메리칸 이글이 백인 여배우 시드니 스위니를 모델로 쓴 광고가 논란을 빚자 여기에도 한마디 던졌다.

    아메리칸 이글은 광고에서 '시드니 스위니는 훌륭한 진(Jeans·청바지)을 가졌다'는 문구를 내걸었는데 청바지를 뜻하는 '진(Jeans)'과 유전자를 뜻하는 '진(genes)'의 발음이 같은 점을 두고 인종주의를 조장하는 광고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에 대해 트럼프는 트루스소셜에서 "공화당원으로 등록된 시드니 스위니가 지금 가장 '핫한' 광고를 찍었다"며 "아메리칸 이글 광고인데, 청바지가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잘하고 있어, 시드니!"라고 게시글을 올렸다. 이날 아메리칸 이글 주가는 무려 23% 급등했다.



    undefined


    트럼프는 7월 중순에 "나는 진짜 케인슈가(cane sugar·사탕수수에서 추출한 설탕)를 미국내 코카콜라에 사용하는 것과 관련해 코카콜라사와 논의해왔다"며 "그들은 그렇게 하기로 동의했다"고 밝혔다. 미국 시장에서 주로 옥수수 시럽을 사용해왔던 코카콜라는 트럼프 압박에 케인슈가를 사용한 콜라를 올해 가을에 출시하기로 했다. 인텔 이슈에 비하면 앞선 사례는 애교 수준에 불과할지 모른다. 트럼프 행정부는 인텔에 반도체 보조금을 지급하는 대가로 인텔 지분 10%를 취득, 최대 주주로 등극했다.

    지분 취득 추진 소식이 나왔을 당시 백악관 대변인은 "대통령은 국가·경제 안보와 관련된 핵심 제조업을 다시 확보해야 할 필요성을 분명하게 밝혔다"면서 "특히 반도체 관련해서다"고 설명했다.

    이후 지난달 말 트럼프는 자신의 SNS에 인텔 지분 10%를 "완전히 소유하고 통제"하게 됐다고 공식 발표하며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자"고 말했다.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반도체뿐만 아니라 방산, 조선업체 지분 확보 가능성도 언급하고 있다. 온라인상에서는 자유 시장·작은 정부의 시대가 저물고 국가 자본주의·큰 정부 시대가 도래했다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일각에서는 사회주의 논란이 일기도 했다. 민간기업인 인텔의 지분 취득이나 US스틸 황금주 확보, 엔비디아 대중(對中) 반도체 수출세 요구 등이 '생산 수단(기업)의 공동 소유'를 주창하는 '사회주의(Socialism)'를 연상케 한다는 것이다.



    undefined


    미국 시사주간 디애틀랜틱은 '트럼프의 우파 사회주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이 29년 전 '큰 정부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지만, 트럼프는 이 메시지를 받지 못한 것 같다"며 "(트럼프는)두 번째 임기에서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 이후 가장 광범위한 연방 권력 확장을 추진하고 있다. 작은 정부의 시대는 끝났다"고 보도했다.

    다른 일각에서는 기존 사회주의와 똑같지는 않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그 사이 어딘가와 비슷하다는 평가도 나왔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규제와 간섭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왔던 공화당이 대체로 트럼프의 행보를 용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워싱턴에서 활동하는 공화당 베테랑 요원 팀 채프먼은 한 외신 인터뷰에서 "지난 수십년간 이어져 온 정부·공공정책에 대한 기존 접근방식이 실망스러웠기 때문에 새로운 방식에 열려있어야 한다는 국가 권력 보수주의자들이 있다"면서 "(여기서 말하는)새로운 방식은 정부 권력을 휘둘러 보수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으로, 현재는 트럼프가 원하는 '그 무엇이든'으로 정의된다(defined by whatever Trump wants)"고 말했다.

    지난 주말 트럼프 행정부는 인텔,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중국내 공장에 미국산 반도체 제조장비를 공급할 때 예외적으로 누려온 개별 허가 절차 면제를 폐지하기로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국법인이 향후 중국 공장으로 미국산 반도체 장비 등을 반입할 때마다 미국으로부터 개별 수출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중국 시안에 낸드플래시 공장을 운영 중인 삼성전자와 중국 우시에 D램 공장을 가동 중인 SK하이닉스에는 날벼락과 같은 소식이다. 미국 상무부가 인텔의 다롄 공장에 대해서도 제한을 걸었지만, 이 공장은 SK하이닉스가 인수한 곳이다.

    자국 핵심산업과 전통주의, 보수주의 보호를 위한 각종 간섭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불똥은 미국 기업에만 튀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국제경제부장)



    undefined


    jhmoon@yna.co.kr



    <저작권자 (c)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주의사항
    ※본 리포트는 한국무역보험공사가 외부기관으로부터 획득한 자료를 인용한 것입니다.
    ※참고자료로만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