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영의 FX환담] '인위조작 없다'는 환율협상과 구두개입
(서울=연합인포맥스) 외환당국이 1년 반 만에 움직였다. 미중 갈등 재점화 우려로 달러-원 환율이 20원 이상 급등한 1,430원대를 나타내면서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공동 구두개입에 나섰다.
외환당국은 전일 공식 메시지로 "최근 대내외 요인으로 원화의 변동성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시장의 쏠림 가능성 등에 대해 경계감을 가지고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밝혔다.
환율이 30원 이상 급등할 때도 공식 대응을 자제하던 당국이 왜 움직였을까.
외환당국 메시지를 살펴보면 원화 변동성 확대와 시장 쏠림이 언급돼 있다. 달러-원 환율의 변동폭은 긴 추석 연휴를 보내는 동안 급격히 커졌다.
연휴 동안 엔화 약세로 미 달러가 강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지난 10일 하루 만에 환율이 21.00원 갭업했다.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 환율 급등을 달러-원 환율이 하루 만에 반영했다. 이후에도 달러-원 환율은 상승 곡선을 그렸다. 주말이 지나고 전일 본격적으로 개장한 후 환율은 장중 1,434.00원까지 10원 이상 올랐다.
시장 쏠림도 본격화됐다. 미중 갈등 재점화 우려에 시장 참가자들은 빠르게 롱포지션으로 기울었다. 지난 9월 25일 이후 달러-원 환율이 다시 1,400원대로 오르면서 롱포지션은 점차 쌓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당국 구두개입 이후 달러-원 환율은 1,420원대 후반에서 주춤한 양상을 보였다.
외환당국의 대응은 미중 관세전쟁이 불거졌던 지난 4월과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지난 4월 7일 당시 달러-원 환율은 장중 35원 이상 급등했다.
환율 레벨은 1,460원대로 환율 상승폭은 5년 만에 최대였다. 당시 국내 증시도 4% 이상 밀렸고, 위험회피 속에 엔화는 급격한 강세를 보였다.
당시 미국과 중국이 서로 100% 이상의 보복 관세를 매기면서 글로벌 외환시장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외환당국도 이 과정에서 달러 강세로 급등한 환율에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지만 공동 구두개입에 나서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연휴가 지나고 환율이 급등할 조짐을 보이자 공동 구두개입에 나섰다. 이는 외환시장이 달러 강세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하면서 환율이 치솟을 가능성에 제동을 건 것으로 추정된다.
원화는 최근 엔화와 함께 급격히 약세로 기울었다. 연휴 동안 일본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총재 당선 소식에 일본 금리인상 기대가 축소되면서 달러-엔 환율이 153엔대로 치솟자 역외 NDF 환율도 급등했다.
문제는 미중 갈등이 재점화되면 위험회피에 따른 원화 약세 압력도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3,500억달러 대미 투자 불안에 달러-원 환율이 좀처럼 내리지 않으면서 서울환시에서 하반기 달러 약세 기대가 위축된 상태다.
최근 원화 약세는 다른 아시아통화와 비교해도 두드러졌다. 지난 한달 사이에 원화는 3% 이상 절하된 엔화 흐름에 연동되면서 2% 이상 절하됐다. 같은 기간 대만달러나 위안화가 달러 대비 각각 1.3%, 0.2% 절하된 것과 확연히 다른 움직임이다.
앞으로 달러 강세 요인이 중첩되면 환율이 1,400원대 중반으로 향할 공산이 커진다. 환율 1,430원대에서 경고음이 없으면 시장 참가자들은 빠르게 1,450원대, 1,500원대를 바라볼 수 있다.
외환당국이 움직이지 않으면 오히려 과도한 원화 약세를 용인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즉, 당국으로서는 환율 안정을 위해 시장에 경계심을 심어줄 필요가 있는 레벨과 타이밍이었다. 환율 방향을 꺾지는 못하더라도 환율 상승 속도를 조절하는 차원에서 구두개입은 필요한 조치로 볼 수 있다.
앞으로 환율이 상승할 경우 외환당국이 변동성 완화에 나설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차원에서도 제 역할을 했다.
그런데 최근 한국과 미국, 일본과 미국은 인위적인 환율 조작을 하지 않기로 환율 협의를 한 바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환율 구두개입은 다소 의아한 대응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공동 구두개입은 최근 미국과의 환율 협의를 이행하는 과정으로도 풀이된다. 최근 한미 환율 협의에서 양국은 "효과적인 국제 수지 조정을 저해하거나 부당한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자국 통화가치를 조작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환율을 시장에 맡기고, 수출에서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환율을 인위적으로 조작하지 않는다는 점에 두 나라는 공감했다.
일본 역시 지난 9월12일 환율정책 공동성명에서 "과도한 변동성과 질서 없는 환율 움직임을 방지하기 위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시행된다"며 "과도한 절상이나 절하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는 한국과 일본 모두 달러 대비 자국 통화의 과도한 절상이나 절하에 대응해야 함을 시사한다. 통상 자국에 유리한 방향은 주로 통화 약세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우리 외환당국의 원화 약세 대응은 더욱더 필수적이다.
일본 역시 지난 10일 엔화 약세로 환율 변동성이 커지자 구두 개입에 나선 바 있다. 가토 가쓰노부 일본 재무상은 "최근 엔화가 일방적이고 급격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외환시장에서 과도한 변동이나 무질서한 움직임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처럼 우리 외환당국의 과도한 원화 절하 방어를 위한 공식 구두개입도 한미 환율 협의에 부합하는 대응으로 볼 수 있다.
당국은 시장 안정 조치를 시의적절하게 함으로써 원화 절하를 유도하지 않도록 시장의 환율 상승 기대를 누그러뜨렸다. 달러-원 환율 1,430원대에서 1차 방어선을 구축하는 동시에 향후 원화 변동성이 커지면 추가로 개입할 여지도 생겼다. 즉, 이번 개입은 자국 통화가치를 조작하지 않는다는 환율 협의대로 과도한 원화 절하를 막기 위한 '인위적인' 조치인 셈이다. (경제부 시장팀장)
syj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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