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국제금융 국장이 본 달러 패권의 흐름
(워싱턴=연합인포맥스) 진정호 특파원 = 미국 달러화가 더는 안전자산이 아니라는 관측이 일부 제기되고 있지만 이는 구조적 요인이라기보단 경기순환적(cyclical)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한 것이라고 베스 안 윌슨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국제금융 국장이 판단했다.
윌슨은 1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국제금융협회(IIF) 연례 회의에서 패널로 참석해 "사람들이 주목하는 한 가지는 각국 중앙은행이 여전히 달러를 외화보유고로 유지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해방의 날' 전후로 급격한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달러 지위에 대한 이런 의문이 제기됐다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해방의 날' 이후 약달러는 경기순환성"
윌슨은 "연준도 그 부분을 면밀히 들여다봤지만, 특정 주간을 제외하면 중앙은행들이 외화 보유액을 달러에서 대거 빼거나 달러 자산의 가치를 다르게 평가하는 식의 전면적 변화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며 "오히려 이번 주말 또 다른 무역 충격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달러가 안전자산으로서의 본래 역할로 돌아가는 모습에 가깝다"고 봤다.
윌슨이 달러 기피 움직임을 경기순환적 요인이라고 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올해 초 '미국 예외주의'에 대한 낙관론이 상당했다는 것이다. 미국 경제가 매우 강하게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가 컸는데 뒤이어 무역 충격이 터지면서 미국 경제의 견고함에 대한 의문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윌슨은 "4월의 움직임은 달러가 안전자산으로서 약해진 게 아니라 '미국 예외주의 트레이드가 과했던 것 아니냐'는 의문 속에 조정에 더 가까웠다"고 진단했다.
또 다른 이유는 몇 년간 시장 참가자들이 약달러를 예상해왔는데 오히려 달러 강세가 지속되면서 그런 기대가 무너졌다는 점이다.
윌슨은 "이 기간 사람들은 헤지 포지션을 해제하거나 달러 익스포저를 늘렸는데 4월 충격 후 다시 '양방향 위험(two-way risk)이 커지면서 헤지가 재개됐고 그것이 달러 변동성을 더 키운 요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후 달러가 비교적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달러 자산에서 '대규모 이탈'이 일어났다면 기대할 만한 모습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윌슨은 "누구나 직장에서 아주 힘든 날을 보내면 '이 일을 그만둬야 하나'하고 생각하거나 '이력서를 업데이트해야 하나'라고 생각할 때가 있지만 대부분은 실제로 그러진 않는다"며 "4월 이후 약달러는 시장 참가자들이 이력서를 수정하려고 생각한 것이었을 뿐 실제 직장을 옮길 생각을 한 건 아니었고 달러를 떠나기 전에 사람들은 정말 오랫동안 깊이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달러 보유고 축소는 "정상화 과정"
윌슨은 중앙은행들이 과거만큼 달러를 비축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오히려 정상화의 과정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시아 금융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무렵엔 각국 경제가 '자기 보험'을 들기 위해 외환보유액을 대규모로 쌓는 움직임이 있었고 이들 대부분은 달러를 쌓았기 때문에 준비자산 비중에서 달러 비중은 50~60% 수준에서 훨씬 더 높아졌었다"며 "지금은 중앙은행들이 더는 그런 '군자금(war chest)'을 축적하지 않고 건전한 정책 등 여러 이유로 큰 규모의 준비 자산이 필요하지 않게 돼 달러 비중이 점차 줄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윌슨은 "준비자산 규모나 달러 비중의 하락을 달러의 전면적 이탈 신호로 과도하게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며 "오히려 그것은 정상화 과정이고 전 세계 경제의 구조와 시장의 성숙도를 반영한 결과"라고 봤다.
윌슨은 각국 중앙은행의 달러 보유고가 예전과 비교해 작아졌다는 게 달러 지위의 약화라는 의미는 아니라고 해석했다.
그는 "진정한 의미의 기축통화가 되려면 헤지가 가능하고 결제 청구 체계도 갖춘 한편 무엇보다 필요할 때 유동성이 확보돼야 한다"며 "달러만큼 유동성이 높은 자산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윌슨은 오히려 달러 가치가 지금 "실질 가치 기준으로 봐도 사이클의 매우 높은 구간에 위치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윌슨에 따르면 미국 재무부 국제자본 유입 통계 기준으로 4월에 약간의 자본 유출이 있었으나 다음 달에는 오히려 훨씬 강한 자본 유입이 나타났다. 올해 전체 흐름도 작년과 비교해 특별한 흐름이 거의 없다.
국제통화기금(IMF)의 COFR(Composition of Foreign Reserves) 데이터나 최근 발표된 BIS 3년 주기 보고서에서도 전 세계 외환 거래의 약 90%에서 여전히 달러가 거래 쌍의 한쪽 통화로 사용되고 있다.
그는 "그렇다면 달러 가치에 큰 변동이 생긴다면 그게 단순한 사이클의 조정 국면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달러 사용 자체의 전면적 축소를 의미하는 것인지 의문이 생길 것"이라며 "현시점에선 그 둘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윌슨은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달러가 지배적 위치를 잃는다면 매우 뚜렷하고 극적인 변화가 동반돼야 할 것"이라며 "그런 움직임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통상적인 자본 흐름이나 경제 변수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될 것이고 시장은 상당한 변동성을 겪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윌슨은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은 뒤 1995년부터 연준에 이코노미스트로 몸담고 있다.
jh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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