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外人 35억弗 vs 서학개미 247억弗'…달러-원 안떨어지는 이유
(서울=연합인포맥스) 신윤우 김지연 기자 = 서학개미의 해외주식 투자가 역대급 행진을 이어가면서 달러-원 환율을 떠받치는 핵심 변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주식 투자를 압도하는 데 따른 수급 불균형이 상승 쏠림을 유도하는 모양새다.
연기금 등 기관 투자자의 해외 투자도 끊이지 않아 각종 대외 변수를 배제해도 상방 압력이 꾸준히 가해지는 추세가 형성되고 있다.
5일 국제금융센터가 예탁결제원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10월 '서학개미'로 일컬어지는 국내 개인 투자자의 해외 주식 순매수 규모는 68억1천만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2011년 집계를 시작한 이래 최대 규모로 최근 환율 기준으로 무려 10조원에 육박하는 규모다.
이 중 미국 주식 순매수 규모가 68억5천만달러로 거의 전부다. 그만큼 지난 10월 달러화 환전 수요가 밀려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달 외국인의 국내 주식 순매수 규모가 42억1천만달러로 적지 않지만 서학개미 매수와는 26억달러나 차이가 난다.
서학개미 환전 수요를 외국인 투자자가 일부 상쇄할 수 있었겠지지만 역부족이었을 것이란 얘기다.
서울외환시장의 '큰손'으로 꼽히는 국민연금의 월간 달러화 환전 수요가 20억달러에서 30억달러 수준으로 추정되는 점에 비춰보면 일시적일지라도 서학개미가 국민연금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성장했음을 엿볼 수 있다.
연초 대비 수치를 보면 불균형은 한층 더 뚜렷해진다.
올해 서학개미의 미국 주식 순매수 규모는 246억5천만달러인데 반해 외국인의 국내 주식 순매수 규모는 34억5천만달러에 그쳤다.
이 변수만 따로 떼놓고 본다면 연중 달러-원 환율에 미치는 상승 압력이 꾸준했을 것이란 추정이 가능하다.
서학개미의 해외채권 매수 규모도 증가하는 추세다.
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 세이브로에 따르면 올해 1~10월 해외채권 순매수 규모는 187억달러를 웃돈다.
지난해 연간 순매수 규모인 168억달러를 이미 앞지른 수치다. 지난 2023년 순매수 규모는 약 100억달러다.
이런 국내 투자자 동향은 달러화 수요를 마르지 않게 함으로써 달러-원 환율을 지지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특히 최근 달러화 수요가 부각되면서 서학개미가 유발하는 심리적 영향이 커지는 분위기다.
달러-원 환율이 수급 변수만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므로 단순히 수급과 환율 레벨이 동조된다고 볼 수 없지만 쏠림 현상을 심화하는 배경이 된다.
지난 5월부터 1,300원 중후반대 구간에서 움직이던 달러-원 환율은 한미 관세 협상 이슈 등으로 지난 9월 말 1,400원선 위로 올라섰다.
관세 협상 타결에도 좀처럼 아래로 향하지 못하고 있는데 대미 투자로 인한 달러화 수요가 상당하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많다.
A증권사 딜러는 "순매수 누적 기준으로 봤을 때 달러 수요가 확실히 더 많은 것으로 보인다"며 "서학개미의 해외투자 심리는 지금도 꽤 강한데 향후 환율이 하락세로 전환하려면 한국 자산에 대한 외국인의 매수세가 계속 이어져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환율이 바로 튀어버리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경상 흑자가 2년 넘게 이어지고 있지만 연기금 등 기관 투자자를 포함한 해외증권 투자로 빠져나가는 달러화도 상당하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8월 내국인 해외증권투자액은 886억5천만달러로, 같은 기간 외국인 국내증권투자액(303억7천만달러)의 약 2.9배였다.
특히, 지난 8월 한 달간 내국인 해외증권투자액은 84억1천만달러 증가했다. 같은 기간 외국인 국내증권투자액은 2억9천만달러에 불과했다.
개인뿐 아니라 연기금·기관의 해외투자까지 확대되면서 달러화 유출이 유입을 웃도는 모습이다.
최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이에 대해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이 총재는 10월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내국인 해외증권투자가 환율 상승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올해 들어 해외로 나가는 자금이 들어오는 것보다 거의 4배 정도 많아, 민간에서 상당한 규모의 자금이 해외로 이동 중"이라고 언급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개인 및 기관의 해외증권투자 증가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문홍철 DB증권 수석연구위원은 "해외 투자를 환율과 연계해서 볼 때 조심할 필요가 있다"며 "경상수지 흑자는 환율의 하락 요인이지만, 쌓인 무역 흑자가 다시 해외 투자로 빠져나가는 과정에서는 환율의 상승을 부추기게 된다"고 설명했다.
문 수석연구위원은 "경제학적으로 한 국가의 저축과 투자를 비교할 때, 저축액이 쌓인 상태에서 투자할 대상이 제한적이면 그 갭(gap)은 반드시 해외로 유출된다"며 "연기금 등 기관 투자자의 해외 투자도 기본적인 자산 배분 계획에 의해 불가피하게 늘어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지금의 환율 상승은 근본적으로 해외투자 증가세를 넘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그간 양적긴축(QT)을 과도하게 진행해 시장에서 달러가 부족해진 요인이 크다"면서 "여기에 한미 무역 협상에서 대미 투자 총액에 변화가 없었고,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이 주식 순매도세로 돌아선 점 등이 당분간 달러-원의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한 외환시장 관계자는 "경상수지 측면에서는 흑자가 확대됐지만, 기업들도 해외 투자를 늘려가는 과정에 있다보니 벌어들인 달러를 환전하는 경향이 많이 줄었다"면서 "기관 투자자들이 5월에 포트폴리오 중기 전략을 발표하면 통상 이 계획에 맞춰 투자를 하는데, 국내 주식 비중이 정해진 상황에서 코스피가 상승하면 오히려 해외 자산을 더 구매하는 여력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그는 "큰 틀에서 봤을 때는 기관 투자자들이 전체 자산에서 해외 투자 비중을 60%까지 늘려가는 과정에 있으니 앞으로도 해외 자산을 계속 구매한다고 봐야할 것"이라며 "국민연금은 이전에 1,450원 안팎에서 전략적 환 헤지를 개시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현재 환율이 1,440원 수준인 상황에서 환 헤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부연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서학개미 투자 열기가 식으면서 달러-원 환율에 가해지는 상승 압박이 줄어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B외국계은행 외환딜러는 "이창용 총재도 언급을 했지만, 올해 들어 외국인이 국내에 투자한 것보다 서학개미들이 해외에 투자한 금액이 굉장히 컸기 때문에 달러-원 환율에도 상방 압력을 가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면서도 "다만, 서학개미 매수세도 어느 정도 잦아들 수 있는 구간에 접어들면서 향후 이 역량이 줄어들 것으로 본다"고 진단했다.
그는 "현재는 서학개미의 해외주식 매수세가 이어지고 있으나 레벨 부담이 있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며 "작년, 재작년에도 서학개미 수급이 있었지만 그 수급의 역량은 점진적으로 약화되는 양상을 보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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