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문성의 다른시각] 부동산에서 주식으로 머니무브를 위한 과제
현 정부에서 추진 중인 '부동산에서 주식으로 머니무브'는 분명히 쉽지 않은 과제다. 여기서 '부동산'은 최근까지도 과열되었던 서울 한강변 아파트에 한정해도 무방하다. 상승은 짧고 조정은 길었던 주가지수, 상승은 길고 조정은 짧았던 서울 아파트 시장의 기억은 대중에게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러니 '주식이건 암호화폐건 다른 분야에서 번 돈은 결국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간다'는 생각이 강하고, 주식시장의 강세마저 결국 부동산 수요를 자극할 요인으로 거론된다.
주식, 채권 시장과 달리 국내 부동산 시장은 시장참여자가 리테일(개인)에 국한된다. 주식의 상승장에선 기관투자자의 차익실현 매물이 조정의 빌미가 되지만, 부동산 시장에서는 상승 시 호가를 더 높이거나 매물을 거둬들여 급등하는 양상이 나타난다. 10·15 대책 이전까지 토지거래허가제로 지정되지 않았던 한강변 지역 아파트에서도 볼 수 있던 현상이다. 반면 주식의 하락장에서는 간혹 기관의 손절매가 하락 폭을 키우기도 하지만, 부동산 시장의 개인은 버티기에 들어가 하락 폭이 제약되기도 한다. 과거의 이런 패턴을 감안하면 부동산에서 주식으로 머니무브는 요원해 보일 수 있다.
'머니무브'까진 아니어도 서울아파트 시장의 약세장이 장기화되었던 시기가 있는데, 이명박 정부 재임 기간과 박근혜 정부 초기에 걸친 2010년~2013년이다. 해당 기간 코스피는 현재만큼 인상적이진 않지만 1,680에서 2,000으로 상승했다. 반면, 대치동 은마아파트 35평은 12억원에서 8억 중반, 도곡동 타워팰리스 66평은 30억원에서 16억원대까지 하락한 바 있다. 지방의 미분양아파트는 9만3천호에서 2만8천호로 감소하는 동안 수도권은 2만5천호에서 3만4천호로 되려 증가하였고, 강남·대형·재건축 등 비싼 조건일수록 가격 하락률이 높았던 것이 특징이다.
해당 시기에 신용평가사에서 건설업 애널리스트로 활동하여 정책들에 대한 기억이 선명한 편인데, 수도권 LTV·DTI 규제, 분양가 상한제 등을 완화해 달라는 요구가 이어졌으나 이를 일축하고 상당 기간 수도권과 지방이 차별화된 규제가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수도권 사업 비중이 높은 1군 건설사(시공능력순위 100위 이내) 중 대략 30%가 워크아웃 또는 회생절차를 밟게 되었다.
이명박 정부 시기 토지보상금은 4대강 사업과 신도시 택지개발 보상 등으로 약 117조원에 달하여 노무현 정부(약 103조원), 박근혜 정부(약 59조원) 대비 상당한 규모였다. 이에 더해 2012년 하반기부터 금리인하기에 들어가고 수도권에 대한 수요규제를 일부 완화했으나 이후에도 약세장은 1년 넘게 지속되었다. 서울 집값 하락이 장기화되자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졌고, 금리인하와 토지보상금 등 유동성 확대가 강남·재건축 아파트 매수세로 연결되지 않은 것이다.
이렇듯 2010년~2013년은 서울 집값 안정과 서울·비서울 양극화 해소라는 관점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둔 시기였다. 그린벨트를 해제하여 주위 시세보다 저렴하게 공급하는 보금자리주택 정책이 주로 언급되지만, 서울 세곡·내곡지구와 하남미사지구를 감안해도 입지나 물량이 여타 정권과 비교해서 크게 차별화되는 수준은 아니었다. 특히 이명박 정부 재임 기간(2008년~2012년) 서울 아파트 착공물량은 연평균 2만5천호로 장기평균(2005년~2024년) 3만4천호에 크게 미치지 못했고, 최근 3년 평균(2022년~2024년) 3만호보다도 낮은 편이다. 공급만으로 소기의 성과가 설명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총알을 100발 넘게 맞아서 죽었을 경우, 어느 한발이 이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했는지는 알 수 없다'는 말이 있다. 특정 성과(집값 안정)를 두고 하나의 방편(공급)으로만 설명할 순 없는 노릇이다. 당시 미국이 제로금리를 유지하는 동안 한국은행은 국내 경기회복과 물가 상승을 근거로 2010년 7월부터 2011년 6월까지 기준금리를 5차례(2.00%→3.25%) 인상하였고, 금융위원회는 가계부채 관리에 심혈을 기울였다. 수도권 부동산 침체가 장기화되자 건설사와 일부 언론에서 금리인하, 규제완화를 꾸준히 주문했지만 3년 가까이 약세장을 인내한 것이다. 그런 하락에도 국가 경제에 무리가 될 만큼 취약해지지도 않았고, 2012년 말 대선에서 당시 여당의 정권도 연장되었다.
과거를 통해 시사점을 찾자면, 부동산 문제를 두고 공급 확대처럼 한 가지 방법만 강조할 게 아니라 금융규제, 세제개편 등이 복합적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고, 1~2년 이상의 약세장을 용인할 수 있는 정책 일관성이 관건이라 할 수 있다. 아래 그래프는 우리나라의 기준금리 추이에 서울 부동산 시장이 부진했던 시기를 음영 처리한 것이다. 금리 인상기가 약세장을 촉발했다는 공통점이 보인다. 그러나 2020년에는 코로나로 인한 초저금리 돌입, 2023년부터는 대규모 정책자금 지원으로 금리인상 효과가 무력해지면서 최근 10년간 두 번의 약세 기간은 각각 반년 정도에 그쳤다. '약세장이 오더라도 이는 잠시뿐이고 버티면 결국 상승이다'라는 학습효과가 각인된 것이다.
아무리 좋은 자산도 1~2년 이상 오르지 않으면 우상향에 대한 믿음도 희미해진다. 언론에서 오르는 자산들을 끊임없이 부각하는데 내가 가진 자산만 안 오르는 것은 상당한 고통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현재 금이 처한 상황도 이를 방증한다. '디베이스먼트 트레이드'(debasement trade)라며 급하게 올라타면서 우리나라 금 현물 가격이 국제 시세보다 20%나 더 비싸지기도 했으나, 최근의 하락과 함께 프리미엄도 낮아졌다. '금 말고 반도체 주식 살걸'이라는 헤드라인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금값이 V자 반등을 한다면 재차 열기를 이어가겠지만 몇 달가량 약세를 이어간다면 프리미엄도 완전히 소멸될 것이다. 부동산 투자 열기가 우리 못지않았던 중국도 약세장이 2년 이상 지속되자 부동산 우상향에 대한 믿음이 약해져 유동성을 풀어도 집값이 좀처럼 오르지 않는 시기를 겪고 있다. 이렇듯 관건은 '오랜 기간 약세를 용인할 용기'이며, 일정 기간 인내하고 나면 주식 및 여타 투자를 통해서 번 돈이 무작정 부동산으로 흘러가진 않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 시기에는 차화정(자동차·화학·정유) 중심의 대중국 수출 호조가 내수 부진을 보완하여 인내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재명 정부와 AI·반도체·전력 중심의 호황이 '인내할 수 있는 힘'을 보태고 '머니무브'를 가속화할 수 있을지 기대해 본다.
(배문성 라이프자산운용 이사)
ywshin@yna.co.kr
<저작권자 (c)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주의사항
※본 리포트는 한국무역보험공사가 외부기관으로부터 획득한 자료를 인용한 것입니다.
※참고자료로만 활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