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적 高환율] 네고 안 내놓는 수출기업…해외투자도 복병
(서울=연합인포맥스) 김지연 기자 = 달러-원 환율이 1,450원대를 상향 돌파했지만, 대규모 해외투자를 앞둔 수출업체들이 환율의 추가 상승 가능성에 무게를 두면서 달러 매도(네고)를 미루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0일 연합인포맥스 달러-원 거래 종합(화면번호 2110)에 따르면 지난 7일 달러-원 환율은 1,456.90원에 정규장을 마감했다. 지난 4월 9일(1,484.10원) 이후 최고 수준이다.
지난 3일 종가(1,428.80원)와 비교하면 5거래일간 28.10원 오른 셈이다. 익일 2시에는 레벨을 더 높여 1,461.50원에 야간거래를 마쳤다.
그칠 줄 모르는 환율의 뜀박질에 시장 참가자들이 느끼는 의아함도 커지는 분위기다.
A은행의 외환딜러는 "환율이 한 번의 하락도 없이 계속 오르기만 하니, 이제는 전망도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라면서 "당국의 관리는 부재한 것 같다"고 토로했다.
◇꼭꼭 숨은 네고…"환전할 이유 없다"
통상 달러-원이 고점에 근접하면 수출업체들의 네고 물량이 출회돼 환율의 추가 상승을 제한하곤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장중 네고 물량이 많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B증권사의 딜러는 "일주일 동안 환율이 큰 저항 없이 30원 가까이 오르면서 기업들도 네고를 굳이 내놓지 않는 모습"이라며 "반도체 등 주요 수출 대기업의 네고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C은행의 세일즈딜러도 "데스크, 트레이더들과 모두 확인해봐도 수출업체 네고가 많지는 않았다"며 "업체들이 인식하기에도 지금 환율이 많이 높은 상황이지만, 추가 상승 여력이 있다는 판단에 네고가 적은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여기에 개인 투자자의 해외투자 수요까지 겹치면서 수급이 달러 매수 방향으로 쏠린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앞서 달러-원은 지난 4월 9일 1,487.60원에 상단을 확인한 바 있다.
이에 수출업체 내부에서는 환율이 상승 추세를 따라 1,480원대를 재확인할 가능성을 주시하며, 당장 필요한 원화 자금을 제외하고 남은 달러화는 환전을 보류하는 분위기다.
조선사의 한 관계자는 "올해 조선사들의 글로벌 발주량이 줄며 수주로 인한 외화 유입이 전년보다 줄어든 측면이 있다"며 "여기에 여러 해외투자 건들이 예정돼 있다 보니, 재무팀에서도 달러를 환전하기보다는 보유하고 있는 추세"라고 귀뜸했다.
민경원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통상 수입업체들은 한 달가량의 결제 기한이 있어, 환율이 오르면 일단 달러를 매수하는 분위기가 있다"면서 "반면, 수출업체들은 매출채권(달러채권)을 받아 환전이 급하지 않다 보니 의사결정이 자연스레 미뤄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업들이 은행에 달러화로 예치한 외화 예금의 경우에도 현재 달러 금리가 원화 금리보다 높다 보니, 기업 입장에서는 환전할 이유가 더욱 없어진다"며 "올해 환헤지를 그렇게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던 중공업체들도 본인들의 전략이 맞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기업 해외투자도 복병…"연간 대미투자 2배로"
한미 관세협상 타결을 계기로 추진되는 기업들의 대규모 해외투자도 달러-원 하락의 발목을 잡는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9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2분기(4∼6월) 해외직접투자액(총투자액 기준)은 141억5천만달러로 전년 동기(163억4천만달러)보다 13.4% 줄었다. 당시 관세 협상의 장기화와 주요국 재정적자 확대, 고금리 지속 등에 따른 여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가 본격화하면 한국의 대미투자 규모가 향후 두 배 가까이 불어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앞서 한국은 미국과의 관세협상에서 3천500억달러 대미 금융투자 패키지 중 2천억달러를 현금 투자로 하되, 나머지 1천500억달러는 마스가에 별도로 할당하기로 했다.
허정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한국국제통상학회장)는 "연간 대미투자는 내년부터 2배가량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제는 기업의 대미투자가 늘어나게 되면 국내 제조업 기반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공급망에 해당하는 제조업 기반시설이 미국으로 옮겨가면 관련 일자리뿐 아니라 산업 전반의 유동성이 줄어들어, 지역경제 전반이 약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허 교수는 현재의 대미투자가 과거 2010년대 우리나라 기업의 중국 진출처럼 국내 투자와 보완적인 성격이 아니라면서, 고관세 속에 이뤄지는 대미투자가 국내 투자를 약화할 우려가 크다고 봤다.
한국은행은 지난 7월 발간한 지역경제보고서에서 제조업·수출 중심의 충남지역 제조업 성장률은 미국 신정부 관세정책으로 0.5∼1.5%포인트(p) 하락할 것으로 분석했다.
한은은 "2023년 충남지역 지역내총생산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48%이며, 수출 규모는 지역 내 총생산의 73% 수준이었다"면서 "미국의 관세부과는 대미수출 가격 상승에 따른 충남지역의 수출 부진과 제조업 위축 등으로 지역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관측했다.
민경원 이코노미스트는 "1,450원선이라는 상징적인 레벨이 붕괴되면 다음 '빅피겨'를 봐야 하는데, 이미 1,500원 얘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고점을 더 탐색을 여유는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연말에는 수출업체들이 각종 대금을 협력업체에게 지급하는 과정에서 달러를 원화로 바꿀 유인이 생길 것"이라며 "그 전에 외환당국이 '레드라인'을 긋는다면 기업들의 의사결정도 앞당겨질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jykim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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