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균의 주주자본주의] 사모펀드의 딜레마
  • 일시 : 2025-12-10 10:10:00
  • [김형균의 주주자본주의] 사모펀드의 딜레마



    올해 한국 자본시장의 화두 중 하나는 사모펀드(Private equity)다. MBK파트너스의 고려아연 인수 시도와 홈플러스 사태 등으로 사모펀드가 악이냐 선이냐 하는 가치 판단 문제부터 차입인수(LBO) 기법에 대한 규제까지 다양한 문제가 다루어지고 있다.

    사모펀드는 기업의 지배지분을 인수한 후 효율성 개선을 통해 기업가치를 높인 뒤 매각하여 수익을 내는 펀드로서 바이아웃(Buyout) 펀드라고도 한다.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과정을 효율적으로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소수주주와 거래소 등 이해관계자들의 압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비상장기업의 지분 100% 취득을 선호한다. 'Private equity'라는 용어도 상장주식을 뜻하는 'Public equity'와 대별된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한앤컴퍼니의 남양유업, IMM PE의 한샘, 스톤브릿지캐피탈의 리파인 등 사모펀드의 상장기업 투자가 늘고 있다. 인수할 수 있는 비상장기업의 수가 적고 가격이 비싸졌기 때문이다. 사모펀드 산업이 성장하면서 펀드의 수가 늘고 국내외 연기금의 출자로 운용자금의 규모는 커진 반면, 인수합병을 위해 시장에 나오는 기업의 수는 많지 않다. 인수합병이 활발히 일어나는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기업의 지배주주가 기업을 자녀에게 물려주려고 하기 때문에 인수합병 시장이 작다. 팔려는 사람보다 사려는 사람과 자금이 더 많기 때문에 가격도 비싸진다. 막대한 눈먼 돈이 흘러 들어간 스타트업들의 가격에 거품이 크게 낀 것도 중견 비상장기업의 가치평가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반면, 상장기업은 이들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싸다. 지배주주가 일반주주를 공정하게 대하지 않아 주가가 저평가되어 온 코리아디스카운트의 수혜를 사모펀드가 입고 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사모펀드와 지배주주가 일종의 공모 관계를 형성한다. 지배주주들도 소위 '경영권 프리미엄'이라는 명분으로 본인 지분만 비싸게 사모펀드에 넘기고 이 과정에서 소외된 일반주주들의 주식은 더 저평가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사모펀드가 상장기업에 투자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기업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서는 지분 100%를 취득하는 것이 좋기 때문에 상장기업의 지배주주 지분을 인수하면서 동시에 나머지 주주들의 지분도 같은 가격에 공개매수하여 비상장화 한 후 경영하는 케이스가 있고, 반면에 지배주주의 지분만 인수하고 상장 상태를 유지하면서 기업을 경영하는 케이스가 있다. 전자의 대표적인 최근 사례는 MBK파트너스와 UCK파트너스 컨소시엄의 오스템임플란트, 한앤컴퍼니의 루트로닉 인수 등이고, 후자는 IMM PE의 한샘, 스톤브릿지캐피탈과 LS증권 컨소시엄의 리파인 사례 등이다.

    전자는 지배주주와 일반주주가 같은 가격에 주식을 팔 수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 비록 가격에 이견은 있을 수 있지만 최소한 지배주주와 일반주주가 공평하게 대우받는다. 반면, 후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 상시적으로 일반주주들을 대해야 하고 일반주주들이 참여하는 주주총회를 통해 주요 의사결정을 해야 하며 거래소에 공시 의무 등 각종 의무를 지는 비효율성을 넘어서, 선관의무와 충실의무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구조적 이해충돌 문제가 발생한다.

    사모펀드는 기본적으로 펀드 투자자들의 이익을 극대화할 의무가 있다. 자본시장법 제79조에서도 집합투자업자의 선관의무와 충실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기관전용 사모펀드나 해외 사모펀드가 법상 집합투자업자는 아니지만, 국내 판례와 해외 각국의 법을 통해 이러한 의무를 부여받고 있다. 사모펀드가 기업의 지분 100%를 인수하여 경영하는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선관의무와 충실의무는 펀드 운용사와 펀드 투자자 간의 문제일 뿐이다. 일반적인 경영자-주주 간의 대리인 문제다.

    그러나 사모펀드가 상장기업의 지분 100%를 인수하지 않고 일부만 인수하는 경우에는 심각한 구조적인 이해 상충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상장사의 경영자로서 사모펀드(정확하게는 사모펀드 경영진 등으로 구성된 상장사의 이사회)는 전체 주주에 대한 선관의무와 충실의무를 진다.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가 도입된 최근 상법 개정 이후에는 이러한 의무가 더욱 확실해졌다. 사모펀드는 소수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면서 펀드 투자자들의 이익을 극대화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반대로 소수주주에 더 큰 이익을 주면서 펀드 투자자들의 이익을 훼손해서도 안 된다.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한다. 사모펀드는 펀드 투자자와 일반주주들의 이익을 공평하게 추구하는 것만이 허용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자사주 매입을 얼마에 할 것인지, 배당을 균등배당할 것인지 차등배당할 것인지, 보통주 주주와 우선주 주주를 각각 어떻게 취급할 것인지, 이 모든 문제에서 이해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더구나 엄청난 '경영권 프리미엄'을 주고 지배주주 지분만 비싸게 인수한 경우에는 이러한 이해충돌 상황이 구조적으로 더 심각해진다. 펀드 입장에서 많이 비싸게 산 후 이익을 회수하려면 인수 후 효율성 개선만으로는 부족하고 나머지 소수주주들의 이익을 빼앗아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지분 100%를 사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일반주주와 펀드 투자자 간 이해충돌이 사라진다. 지금 국내에서 의무공개매수 제도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사모펀드 업계에서는 '상장사 M&A 금지법이 될 것'이라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다. 그러나 사모펀드는 상장사 지분 일부만 인수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선관의무 및 충실의무의 딜레마를 생각해야 한다. 사모펀드의 임원들에게 더 큰 부담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이제는 권리와 이익이 침해되고 훼손된 주주들이 잠자코 있는 시대가 아니다. 상법 개정의 정신도 거기에 있다. 지배주주도 본인만 '경영권 프리미엄'을 누리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배지분 인수 시 같은 가격에 잔여지분 100%에 대해 인수 제안을 해야 하는 의무공개매수 제도가 조속히 도입되어 사모펀드의 딜레마가 해소되길 바란다.

    (김형균 차파트너스자산운용 본부장/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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