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우의 컴온웰스] 돈 벌고 싶었을 뿐인데
(서울=연합인포맥스) 환율이 고공행진하자 국내 경제주체들의 활발한 해외 투자가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정부뿐 아니라 민간전문가들도 해외 투자를 고환율 배경으로 거론하고 있고 데이터로도 뚜렷하게 나타나 이견은 없는 분위기다.
특히 서학개미로 일컬어지는 개인들의 해외투자 행렬이 눈에 띈다. 서부개척 시대에 금을 캐러 떠나듯 서학개미들의 미국행이 장관이다.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 세이브로에 따르면 서학개미는 지난 10월 미국 주식을 68억5천만달러, 약 10조원어치 이상 순매수했다.
11월 순매수 규모는 59억3천만달러로 8조7천억원어치를 넘는다. 단 두 달 사이에 개인들이 미국 주식에만 18조원 이상 투자한 셈이다. 12월 들어서도 채 10여일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 순매수 규모가 10억8천만달러를 넘어섰다. 최근 환율인 1,470원으로 환산해보면 1조6천억원에 육박한다. 환율이 크게 뛰어 환차손 위험이 커졌고 미국 증시의 상승 흐름도 주춤했지만 개미들의 서진은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로 인해 환율이 상승 압력을 받는 점이다.
의도가 있었겠냐마는 이런 수급 요인을 포함한 다양한 이유로 환율이 뛰자 정부가 경고음을 울리며 대책을 강구하는 중이다.
서학개미들은 자신들이 마치 고환율 현상의 주범처럼 여겨지는 분위기에 불쾌해하는 눈치다. 좋은 투자처로 향했을 뿐인데 환율이 높아진 게 과연 개인투자자 때문이냐는 반론이다. 설사 환율 상승에 영향을 줬더라도 알 바 아니라는 말도 나온다.
사실 서학개미들은 단지 좋은 투자를 통해 돈을 벌고 싶었을 뿐이다. 어찌 보면 순수한,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가진 기본적인 욕구에 기초한 움직임이었을 것이다.
산이 있어 오른다는 유명 등산가의 말처럼 미국 증시가 좋아 보여 미국 장에 투자했을 따름이다.
최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이 야속하게 들리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는 청년층이 '쿨하다'면서 해외 투자를 많이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진의는 리스크를 살펴보고 투자해야지 유행을 따라 투자하면 안 된다고 경각심을 불어넣고 싶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서학개미, 특히 청년들의 미국 주식투자를 단순한 유행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점은 이들의 투자처가 둘째가라면 서러울 우량주들이기 때문이다.
세이브로에 따르면 전날 기준으로 내국인이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주식은 테슬라로 273억7천만달러, 약 40조2천억원 이상이다. 엔비디아, 팔란티어, 알파벳(구글), 애플, 아이온큐, 마이크로소프트, 브로드컴, 아마존, 메타(페이스북) 등이 상위권에 올랐다.
블랙록, 뱅가드, 스테이트스트리트, 인베스코, 찰스슈왑 등 유수 자산운용사들의 유명 상장지수펀드(ETF)들도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전 세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글로벌 초대형 기업, 그리고 거대 운용사들이 운용 중인 ETF에 투자하는 것은 위험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투영된 것일 수 있다.
오히려 어느 정도 자본을 축적해 자산 배분이 가능한 중장년층과 달리 청년층에 모험 투자는 재기불능에 대한 공포로 다가올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안전하면서도 유망할 것 같은 기업, ETF에 투자하는 것이다. 단지 조금 더 안전하게 돈을 벌고 싶은 마음으로.
국내로 눈을 돌렸을 때 선택지를 떠올려본다면 과연 이런 기업에 견줄만한 종목이 있을지 의문이다. 연간 매출이 수천억달러로 웬만한 국가의 1년 예산을 넘어서는 기업이 다수 포진한 미국 증시 상장사에 투자하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다.
정부는 일단 '발등의 불'인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노력해야겠지만, 긴 시야에서는 국내 증시를 보다 더 매력인 투자처로 만드는 데 힘써야 할 때다.
마침 이재명 대통령이 부동산에 편중된 국민 자산을 자본시장으로 이동하게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는 점은 고무적인 부분이다. 지난 정부에서도 '밸류업'이라는 이름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려는 노력을 해왔는데 정권이 바뀌어도 일관성 있게 관련 정책이 진행되고 있다.
상법 개정을 통한 기업 지배구조 개선, 소수 주주 보호 등이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고 불공정거래 척결에도 칼을 빼든 상태다. 장기 투자자에 대한 인센티브 부여도 검토되는 중이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고민 없이 국내 기업과 주식을 선택하는 날이 오기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국장'에 대한 불신이 켜켜이 쌓여 있어 믿음이 생기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란 얘기다. 이에 대해서는 국내 기업들도 반성이 필요하다.
그래도 희망이 보이는 점은 정책방향이 틀리지 않아서다. 서학개미를 국내로 유턴시키기 위해서는 국내 증시의 매력도를 높이는 것이 필수적이다. 지난한 일이겠지만 외환 시장에서의 수급 쏠림도 예방하고 국민 자산도 증식시키는 일석이조의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경제부 시장팀 기자)
ywsh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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