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워시 연준] 트럼프는 왜 매파로 통하는 워시 지명했나
  • 일시 : 2026-01-30 23:11:21
  • [케빈 워시 연준] 트럼프는 왜 매파로 통하는 워시 지명했나



    (뉴욕=연합인포맥스) 진정호 특파원 = 케빈 워시는 통화정책 측면에서 '매파적 인물'로 평가된다. 강력한 금리인하를 압박해 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구미'에는 맞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트럼프가 워시를 차기 연준 의장으로 지명한 배경에는 두 사람 모두 '연준 개혁'이 필요하다는 데 교집합을 형성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워시를 지명한 것은 당장의 금리인하보다도 연준의 근본적인 체질 변화에 더 방점을 찍은 것일 수 있다는 얘기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과감한 '레짐 체인지' 요구

    워시는 지난해 여름 미국 CNBC와의 인터뷰에선 "연준에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레짐 체인지는 단순히 정권 교체를 넘어 근본적인 체제 변화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연준은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약 17년간 강력한 통화완화 정책을 근본 기조로 삼아왔다. '헬리콥터 머니'로 대변되는 벤 버냉키 연준 의장과 재닛 옐런 연준 의장, 제롬 파월 연준 의장까지 연준의 기본 기조는 물가 앙등으로 금리인상한 시기를 제외하면 대차대조표 확대와 금리인하, 통화 공급으로 정의될 수 있다. 이에 따라 미국 경제도 '돈풀기'에 중독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워시가 보기에 이는 연준의 근본 원칙에서 벗어난 방향성이다. 워시는 연준이 돈풀기에 중독돼 신뢰 상실의 위기에 있다며 '준칙 기반 통화정책(Rules-based Policy)'로 회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작년 5월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가 주최한 행사에서 워시는 "인플레이션을 낮추고 안정성을 높이는 동시에 통화정책의 기강을 강화하는 길은 복잡하지 않다"며 "필요한 것은 규칙에 기반한 통화정책 의지, 연준의 대차대조표 축소, 핵심적 역할에만 집중하는 중앙은행"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1993년 존 테일러가 처음 제안한 '테일러 준칙'은 통화정책의 황금률이고 우아함과 단순함으로 표현할 수 있다"며 "그것은 오늘날 연준의 복잡한 소통 방식과 대비된다고 지적했다.

    테일러 준칙은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과 산출갭에 따라 기준금리를 결정하도록 제시하는 규칙이다. 워시는 현재 연준은 의사 결정 구조가 너무 복잡하고 불투명하다며 이같은 단순한 산식으로 도출되는 기준금리는 연준이 정치적 압력이나 단기 시장 변동성에 휘둘리지 않도록 하는 방어막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는 연준이 오히려 정치적이며 의사 결정 구조가 불투명하다고 비판해 온 트럼프의 시각과 궤를 같이하는 부분이다.

    워시는 또 연준이 본분을 망각하고 정치적 및 사회적 의제로 지나치게 확장하는 '미션 크립(Mission Creep)' 현상을 비판하며 '작고 효율적인 연준'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전개해왔다.

    이는 트럼프를 비롯해 공화당 내 보수파 정치인 및 경제학자들의 비전과 맞닿는 부분이다. 공화당 보수파는 연준 이사와 지역 중앙은행 총재 등 주요 연준 인사들이 지나치게 정치 및 사회적 의제에 몸을 담고 있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다.

    워시는 작년 4월 국제통화기금(IMF) 춘계 회의 연설에서 "현대의 중앙은행은 '금지품목(contraband)'을 거래하는 데 너무 적극적이라고 생각한다"며 "기후 변화와 포용성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들로 연준은 이 분야에서 정치적 판단을 내릴 전문성도, 권한도 없다"고 지적했다.

    작년 7월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선 "(연준 개혁은) 일부의 '머리를 깨트리는(breaking heads)' 일에 관한 것"이라며 "그들이 일해온 방식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과격하게 말하기도 했다.



    ◇트럼프 입맛에 맞는 '재무부와의 새로운 협약'

    워시가 매파적 성향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마음을 사로잡은 배경에는 재무부와의 '새로운 협약(New Accord)'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연준과 재무부는 1951년 협약을 맺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채금리를 낮게 유지하기 위해 화폐를 찍어내던 연준이 재무부로부터 독립해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하는 협약이었다.

    워시는 이 협약을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연준 의장과 재무부 장관이 공동으로 연준 대차대조표의 적정 규모를 선언하고 이를 부채 전략과 정렬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또 현재 미국의 국가 부채가 역대 최고 수준인 만큼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서로 엇박자를 내는 것도 비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워시는 작년 여름 CNBC와의 인터뷰에서 "연준이 재무부와 국가 부채 발행 관리에 협력해야 한다"며 "재무부와 협력해 차입 비용을 낮추고 금리를 내려 그 균형을 바로잡는 게 연준이 할 일"이라고 말했다.

    워시는 양적긴축(QT)으로 대차대조표를 줄이는 것은 시중의 장기 금리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며 그에 따라 인플레이션이 억제되는 만큼 단기 정책 금리 인하를 할 여력이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입장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기조와 부합한다. 트럼프는 막대한 정부 부채를 해결하려면 연준은 금리를 내려야 하고 연준은 국채 이자 비용을 낮추는 데 협력해야 한다고 줄곧 주장해왔다.

    이를 두고 연준은 국가 채무 관리는 연준의 관할 영역이 아니라고 선을 긋는 상황이다. 워시는 연준 의장이 되면 연준의 이런 내부 분위기를 일신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연준 조직 개편은 최근 블랙록의 릭 리더 글로벌 채권부문 최고투자책임자(CIO)가 연준 의장 후보로 급부상한 배경에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리더는 트럼프와의 면접에서 연준 조직 개편 구상을 밝혔는데 이후 트럼프는 리더가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공개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AI와 생산성 확대로 금리인하 논리 확보

    워시가 과거보다 덜 매파적 기조를 띠는 점도 연준 의장 문턱을 넘는 데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워시는 버냉키 의장 시절 새롭게 도입되는 양적완화(QE) 정책에 공개적으로 반박한 유일한 인물로 알려졌다. 이후로도 연준이 지나치게 완화적으로 통화 공급을 하면서 인플레이션을 키웠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가혹한 매파적 이미지와 달리 최근에는 금리인하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트럼프의 구미를 맞추고 있다.

    워시의 '변절'에는 인공지능(AI) 혁명에 따른 생산성 향상이라는 논리가 사용되고 있다.

    워시는 AI 기술의 급격한 발전이 미국 경제의 잠재 성장률을 높이고 공급 측면의 비용을 절감시켰다며 강력한 경제 성장 속에서도 물가 상승 압력은 낮아지는 '디스인플레이션'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에 따라 생산성이 개선되는 국면에서 명목 금리를 낮추더라도 실질적인 긴축 효과가 유지될 수 있기 때문에 미국 경제는 과거보다 금리를 내릴 여유가 더 생겼다고 워시는 주장한다.

    이같은 변화를 두고 시장에선 워시가 "재발명된(reinvented) 리더"라는 평가가 나온다. 단기 금리는 낮게 유지해 경제 성장을 뒷받침하되 대차대조표는 과감하게 축소해 시장의 과잉 유동성을 줄이는 '질적 긴축(Qualitative Tightening)'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워시의 전략이 하이브리드성 전략이지만 성과는 미지수라는 점, 또 재무부와 연준의 새로운 협약이 연준의 독립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 등은 불안 요소로 꼽히고 있다.

    jh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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