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헌의 통화&시장] '워시'의 연준, 동화인가 새로운 출발점인가
미국 차기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으로 케빈 워시(Kevin Warsh)가 지명되자 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2011년 2차 양적완화(QE2)에 반대하며 연준을 떠났던 대표적 '매파(Hawk)'가 공격적인 금리 인하를 요구해 온 트럼프 대통령의 선택을 받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그를 트럼프의 요구에 맞춘 변절자 혹은 매둘기(매+비둘기)로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워시 지명의 본질은 단순한 금리 수준의 조정이 아니다. 이는 지난 15년 넘게 이어져 온 연준의 통화정책 운영체계(operating framework)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이자,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
워시의 구상은 분명하다. '금리는 낮추되, 대차대조표는 축소한다(QT for Rate Cuts)'는 것이다. 그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 등을 통해 "비대해진 대차대조표는 위기 시 대형 금융기관을 지원하기 위해 설계된 유산"이라며, 이를 줄여 확보한 여력을 가계와 중소기업을 위한 금리 인하로 재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성장 우선 기조, 그리고 스콧 베선트(Scott Bessent) 재무장관이 제기해 온 연준 기능 비대화(gain of function)에 대한 비판과도 맞닿아 있다. 더 나아가 워시는 1990년대 앨런 그린스펀 시기처럼, AI를 중심으로 한 생산성 혁명(productivity shock)을 금리 인하의 명분으로 제시할 가능성도 크다.
다만 이러한 정책 조합이 현실에서 곧바로 구현되기는 쉽지 않다. 빌 더들리 전 뉴욕 연준 총재가 대차대조표를 줄이면서 금리를 낮출 수 있다는 주장을 '동화(fairy tale)'라고 평가한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연준은 풍부한 지급준비금(ample reserves)을 전제로 금리를 운용하고 있으며, 급격한 대차대조표 축소는 2019년 9월 레포(repo) 시장 발작과 같은 단기자금시장 불안을 재현할 위험을 내포한다. 또한 연준 의장은 FOMC라는 집단적 의사결정 구조 속에서 움직여야 하며, 급진적인 정책 전환이 단기간에 합의를 얻기도 쉽지 않다.
따라서 워시 지명을 곧바로 위험한 실험의 시작으로 단정하는 것은 과도할 수 있다. 연준의 운영체계, 특히 지급준비금 구조와 대차대조표 운용 방식에 대한 논의는 본질적으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책 프레임워크는 단번에 도입되기보다, 충분한 논의와 점진적 조정을 거쳐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이 점에서 단기적으로 미국 금융시장에 미칠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
다만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체계를 둘러싼 논의가 본격화되는 국면에서는, 정책의 최종 형태뿐만 아니라 그 방향과 속도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금융시장 변동성을 키울 가능성이 있다. 또한 그가 지속적으로 비판해 온 안전판, 이른바 연준 풋(Fed put)에 대한 기대가 점차 낮아지는 과정에서 시장은 더 큰 위험을 가격에 반영하려 할 것이고, 이는 자산 가격의 변동성을 확대시킬 수 있다.
한국 금융시장 입장에서 워시의 등장은 단순한 미국 금리 인하 호재가 아니다. 워시가 추구하는 '작은 연준'은 글로벌 달러 유동성의 축소를 의미하며 장기금리의 상승과 달러화 강세를 초래할 수 있다. 또한 그의 정책 실험이 실패하여 미국 단기자금시장이 요동칠 경우, 그 충격은 국내 외환·채권 시장으로 고스란히 전이될 것이다.
그러나 워시 구상의 실현 가능성과 그 잠재적 위험성 여부를 떠나서 그가 던지는 문제의식 자체는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연준 대차대조표의 지속적인 확대와 과도한 유동성 공급이 자산 가격 상승을 구조적으로 뒷받침해 왔고 그 혜택이 특정 계층과 대형 금융기관에 집중됐다는 비판은 상당 부분 현실을 반영한다. 이러한 환경은 금융시장의 도덕적 해이를 키우고, 높은 레버리지를 활용한 공격적 투자 행태를 일상화시켰다. 자산 가격 상승이 성장의 과실을 왜곡된 방식으로 배분해 왔다는 점에서 워시의 문제 제기는 충분히 경청할 가치가 있다.
케빈 워시의 지명은 연준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출발점에 서 있음을 의미한다. 그 길이 동화로 끝날지, 아니면 기존 통화정책의 한계를 보완하는 새로운 프레임워크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연준 대차대조표 확대가 초래한 자산 가격 상승과 그 부작용에 대한 문제 제기를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우리는 연준의 기준금리 숫자만이 아니라, 그 이면에서 진행될 통화정책 체계의 재논의와 그 파급 효과를 차분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승헌 숭실대 교수/ 전 한국은행 부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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