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균의 주주자본주의] 축제와 같은 주주총회를 꿈꾸며
최근 세 차례의 상법 개정 이후 처음 맞이하는 정기 주주총회가 이번 달 열린다. 주주총회 안건들이 속속 공시되고 있는데, 이미 많은 상장기업들이 상법 개정의 취지를 무력화하거나 방어하기 위한 대응에 나선 것처럼 보인다. 이사 수의 상한과 임기를 조정해 시차임기제를 구축하려는 시도, 정관 개정을 통해 이사의 자격 요건을 제한하려는 움직임 등 다양한 방식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어김없이 이러한 모습 뒤에는 주주를 기업의 주인이자 파트너로 인식하지 않는 지배주주와 경영진, 그리고 대형 로펌과 상장기업 협회가 자리하고 있다. 일부 상장기업들은 전체 주주의 돈으로 변호사들에게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의 자문료를 지급하며, 주주가치 제고라는 대의 아래 이루어진 상법 개정을 무력화하기 위한 각종 꼼수를 동원하고 있다. 상법 개정으로 일감이 늘어난 대형 로펌 변호사들이 웃음을 감추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공공연히 들린다. 전체 주주의 돈을 회비로 삼아 운영되는 상장기업 협회들 역시 각종 가이드라인을 통해 기업들의 편법과 꼼수를 사실상 지원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 많은 기업의 경영진은 주주를 기업의 소유주나 파트너라기보다는 최대한 피하고 막아야 할 존재로 여기는 듯하다. 22년 전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한 주주의 질문에 대해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이 "몇 주 갖고 있는데 남의 회사 주총 와서 목소리 높여요? 몇 주 갖고 있어요?"라고 응수했던 장면에서 드러난 인식이 지금까지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기업들에 붙어 편법을 자문하며 이익을 얻는 대형 로펌 등 우리 사회의 엘리트 집단의 인식 역시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반면 버크셔 해서웨이의 새로운 CEO 그렉 아벨이 최근 처음 작성한 연례 주주 서한을 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 보인다. 그는 주주를 진정한 파트너이자 주인이라고 명시하며, 2026년 5월 2일 열리는 주주총회를 '주인의 날(Owners' Day)'이라고 표현했다. 또한 주주총회가 열린 소통과 직접적인 관여가 중심이 되는 자리라고 강조했다. 서한의 마지막에서도 주주들, 즉 버크셔의 주인들과의 관계가 버크셔 해서웨이의 이례적인 성공의 핵심이었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필자 역시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에 두 차례 참석한 경험이 있다. 하루 종일 이어지는 질의응답 시간 동안 버핏과 멍거, 그리고 임원들이 주주들의 질문에 매우 성실하게 답변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것을 느꼈다. 주주총회장 밖에서는 주총 전후 며칠 동안 마치 축제와도 같은 행사들이 이어진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주들은 주주를 진정으로 존중하는 경영진이 운영하는 세계 최고의 기업의 주주라는 자부심과 잊지 못할 기억을 안고 집으로 돌아간다.
이제는 한국 기업들도 주주를 성가신 외부인이 아니라 기업의 소유주이자 파트너로 인정하고 변화해야 할 때다. 기업 경영진에게 묻고 싶다. 한 번뿐인 인생을 살면서 기업가치를 높인 위대한 경영자로 역사에 남고 싶은가, 아니면 온갖 꼼수로 주주가치를 훼손해 왔다는 비판과 오명 속에서 기억되고 싶은가. 이들에게 잘못된 조언을 해주는 각종 전문가들과 단체들에도 같은 질문을 하고 싶다.
워런 버핏은 우리의 행동이 전국 신문의 1면에 실렸을 때도 부끄럽지 않을지 항상 반문해 보라고 이야기했다. 이번 주주총회에서 각종 편법을 고민하고 있는 경영진들도 이 말을 한번 떠올려 보면 어떨까.
물론 희망적인 변화도 있다. 필자는 지난 8~9년 동안 행동주의 투자를 해 왔는데, 올해는 예년과 달리 주주와 우호적이고 건설적인 관계를 구축하려는 움직임도 일부 기업에서 감지된다. 과거처럼 무조건 방어에만 나서기보다 주주가 추천한 인사를 이사회에 받아들이는 변화도 실제로 경험하고 있다. 이는 최근 기업거버넌스와 주주가치에 대한 인식 변화, 그리고 법제도 개선이 기업 경영진의 인식 변화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다. 이러한 기업들이 점점 더 늘어나 주주와 협력적인 관계 속에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례가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이제는 변화해야 할 때다. 한국에서도 버크셔 해서웨이와 같은 위대한 기업이 탄생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올해부터 일부 기업에서라도 주주를 주인이자 파트너로 인식하고 건설적인 대화가 오가는 축제와 같은 주주총회가 열리기를 기대한다.
(김형균 차파트너스자산운용 본부장/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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