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한은 수장은] 각자도생의 통화정책 시대…산적한 숙제
(서울=연합인포맥스) 윤시윤 손지현 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임기 종료를 앞두고 차기 총재가 맞이하게 될 통화정책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해지고 있다.
16일 한국은행 및 금융시장 관계자들은 중동 분쟁에 따른 유가 급등과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로 지난 2월 금융통화위원회 이후 상황이 크게 변했다고 입을 모았다.
금리 인상과 인하 어느 쪽도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평가다.
한국은행은 최근 국고채 단순매입 등 시장 안정 조치에 나서며 금융시장 변동성 관리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통화정책 역시 특정 방향을 제시하기보다는 대외 변수의 전개를 지켜보며 신중하게 대응할 가능성이 커졌다.
또 올해 외환시장 24시간 체제 도입 등 시장 제도와 구조 변화도 예정돼 있어 차기 중앙은행 수장이 관리해야 할 시장 변동성 부담도 커졌다.
한국은행 내부에서도 정책 여건의 불확실성이 크게 높아졌다는 진단이 나온다.
박종우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최근 통화신용정책보고서 설명회에서 "2월 통화정책방향 이후 2주 사이 정책 여건에 굉장히 큰 변화가 있었다"며 신중한 정책 대응 필요성을 강조했다.
◇더욱 중요해진 외환시장 메시지 관리…"펀더멘털보다 기대 심리"
최근 환율 변동성이 커지면서 한국은행의 외환시장 관련 메시지 관리는 더욱더 중요해졌다.
시장에서는 환율이 펀더멘털보다 기대 심리와 자본 흐름에 크게 영향을 받는 만큼 중앙은행 수장의 발언이 시장 기대 형성에 미치는 영향도 과거보다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외환시장 거래 시간이 야간까지 확대되면서 달러-원 변동성도 과거보다 커졌고 이에 따라 당국의 시장 안정 대응 여력은 상대적으로 제한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여기에 글로벌 지정학 리스크와 해외 투자 흐름이 환율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중앙은행의 메시지 관리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창용 총재 역시 통화정책 운용에서 환율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해 왔다.
이 총재는 올해 초 기자간담회와 신년 발언 등을 통해 최근 원화 약세가 한국 경제 펀더멘털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달러-원 환율이 1,400원대 후반까지 상승하자 "현재 환율 수준은 경제 펀더멘털과 다소 괴리가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커뮤니케이션 리스크…포워드 가이던스 방향은
차기 한은 총재가 풀어야 할 과제 중 하나로는 커뮤니케이션 리스크 관리도 꼽힌다.
통화정책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시장과의 소통이 적절하게 이뤄져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의도와 다르게 전달될 경우 시장 변동성을 오히려 키우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이창용 총재의 '방향 전환' 발언으로 채권시장이 크게 출렁였던 사례는 이러한 리스크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당시 총재의 발언은 금리 인하 사이클 마무리와 동결 국면 진입 가능성을 염두에 둔 차원이었으나 시장은 이를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열어둔 매파적 신호로 받아들이며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후 한국은행은 정책 시그널 소통 방식을 보다 정교하게 보완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실제로 최근에는 금통위원들의 향후 금리 전망을 담은 포워드 가이던스를 확장해 제시하기 시작했다.
전망 시계를 당초 3개월에서 6개월로 확장하고, 금통위원들의 금리 전망 수준을 각 3개의 점으로 제시하는 방식의 점도표를 도입했다.
시장의 통화정책 경로 전망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조치다.
차기 총재 역시 새롭게 도입된 점도표 등 커뮤니케이션 도구들을 앞으로 어떻게 활용하고 발전시켜 나갈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통화정책의 파급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적절한 커뮤니케이션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금융안정 과제도…부동산과 가계부채
차기 한국은행 총재가 직면할 또 다른 과제는 금융안정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통화정책 운영에서 물가 안정뿐 아니라 금융 불균형 문제도 주요 고려 요인으로 강조해 왔다. 특히 부동산 시장과 가계부채는 통화정책 결정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핵심 변수다.
국내 가계부채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금리 정책 변화가 금융 안정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는 평가다.
정부의 거시건전성 규제와 부동산 정책 영향으로 상승세가 다소 둔화되긴 했지만 수도권 주택 시장은 여전히 높은 가격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중앙은행이 경기 대응과 금융 안정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만큼 정책 운신의 폭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시장에서는 차기 총재 역시 금리 정책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부동산 시장과 가계부채 흐름을 중요한 정책 변수로 고려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 美 통화정책 변수…'독립성' 속 정책 공간 확보
글로벌 통화정책 환경도 한국은행 통화정책 운용에서 빠질 수 없는 변수다.
현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정책금리는 3.5∼3.75%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으며 향후 금리 인하 시점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진 상태다.
최근에는 중동 지정학 리스크로 국제 유가가 상승하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다시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미 연준의 금리 인하 베팅은 상당 부분 거둬들여진 상황이다.
특히 오는 5월 임기가 끝나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 이후 연준 지도부 변화와 통화정책 방향 역시 불확실성 요인으로 남아 있다.
파월 의장에 대한 미 법무부의 형사 기소로 극단적으로 치달은 연준 독립성 문제와 후임으로 오는 케빈 워시 취임 이후 정책 방향도 시장 변동성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는 한국 통화정책의 자율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미 금리 차는 자본 유출과 환율 변동성 확대의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시장에서는 차기 총재가 글로벌 통화정책 변화 속에서 정책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국내 금융시장 안정과 환율 변동성을 고려한 정책 공간을 확보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 금리만으로 부족한 시대…정책 수단 다변화 과제
최근 통화정책 환경이 복잡해지면서 기준금리 조정만으로 경제와 금융시장을 관리하기 어려워진 점도 차기 총재가 안게 될 과제다.
환율과 자본 흐름, 금융시장 변동성 등 다양한 요인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중앙은행이 금리 정책만으로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최근 원화 약세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확대와 외환 수급 구조 문제가 시장에서 주요 변수로 부각되기도 했다.
이 총재는 지난해 말 외환시장 수급 구조 개선 필요성을 언급하며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관련 '뉴 프레임워크' 논의를 제기한 바 있다. 국민연금이 해외투자 과정에서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다만 이 같은 논의는 연기금의 투자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시장 개입 논란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시장에서는 이 사례가 금리 정책만으로는 환율과 자본 흐름을 조절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보여준 사례로 보고 있다.
향후 중앙은행 정책이 단순한 금리 조정에서 벗어나 외환 수급 관리와 금융시장 안정 장치 등 다양한 정책 수단의 조합을 고민해야 하는 국면에 들어선 만큼 차기 한국은행 총재 역시 다차원의 통화정책 수단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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