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문성의 다른시각] 호르무즈가 닫히면 금리가 열린다
  • 일시 : 2026-03-18 10:10:00
  • [배문성의 다른시각] 호르무즈가 닫히면 금리가 열린다



    누구나 경험에 근거한 강렬한 기억을 품고 살아간다. 개인적으로 2020~2021년 국책은행 선박금융 현장에서 겪었던 경험이 그렇다.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4분기, 컨테이너선 운임이 꿈틀대기 시작했을 때 업계의 시선은 냉소적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넘게 이어진 저운임 기조와 선박 공급과잉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후 컨테이너선 운임의 파괴적인 상승은 2천원대에 불과했던 HMM 주가를 5만원 위로 끌어올렸다. 미국채 10년물 금리도 이때부터 심상치 않게 움직였다. 해상운임은 단순한 물류비용이 아닌, 병목현상이 유발할 거대한 인플레이션의 전조였다.

    이제 시장은 또 다른 병목,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미지의 영역에 진입했다. 컨테이너 운임은 급등하더라도 개별 상품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다소 제한적이다. 10억원가량의 상품을 보내는데 100만원이던 운임이 500만원이 된다고 해서 비용을 감수하는데 큰 부담이 되진 않는다. 그러나 급등한 탱커운임은 유가에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특정 선사가 유조선을 싹쓸이하며 탱커 공급자 교섭력을 한없이 높였고, 임시로 가동을 중단한 대규모 유전·가스전의 정상화는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는 등 에너지 병목현상은 일단 받아들여야 할 상수가 되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고 누구도 리스크 값을 예상할 수 없지만, 장기화될수록 직면 가능한 위험들을 짚어보았다.

    ◇예상에 없던 기준금리 인상 경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한 물가 상승은 전형적인 공급충격 인플레이션이다. 일각에서는 공급발 인플레이션은 금리로 잡을 수 없다고 말하지만, 중앙은행의 계산법은 다르다. 핵심은 지속성이다.

    『박종우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또한 공급측 물가 상승 압력이 발생했을 경우 물가가 어느 정도 올랐을 때 통화정책으로 대응하는 것이 맞는지 묻는 말에 "물가의 상승 속도나 레벨보다는 어느 정도 지속되는지가 중요하다"고 짚었다. 그는 "비용측 물가 상승이어도 장기간으로 이어지면 사람들의 기대에 영향을 미치고 그렇기 때문에 통화정책 대응이 필요해진다"고 설명했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에 미치는 영향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한은 부총재보 "중동사태로 향후 금리 결정 훨씬 신중하게 할 것", 3월 12일 연합인포맥스 보도)』

    유가 급등이 일시적인 것이라면 기존의 금리 정책에 변화가 없겠지만, 에너지 가격의 고착화가 기대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치게 되면 글로벌 정책금리 경로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잠재 부실을 키우는 유동성 경색, 사모대출 이슈

    사모대출(Private Credit) 시장은 여러모로 우리나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 글로벌 사모대출 시장은 지난 10년간 3배 이상 급성장하며 2조 달러 규모로 비대해졌다. 이는 과거 우리나라의 제2금융권 부동산 PF 팽창 속도와 닮아 있다. 미국과 한국 간 금융시장 규모 차이를 감안하면 사모대출 규모가 부동산 PF보다 양적으로 과도하다고 보긴 어렵고, 추산되는 부실 비율도 유사하여 어느 쪽이 더 위험하다고 속단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부동산 PF 위기가 연착륙할 수 있었던 것은 금리 하락과 만기 연장 덕분이었다. 설사 위기가 터지더라도 은행의 자본 완충력이 충분하여 시스템 리스크로 번지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최근의 사모대출 이슈는 차주의 상환 능력보다는 리테일 펀드의 환매 압력에 따른 유동성 대응 문제라 할 수 있다. 환매 압력이 잦아들고 유동성 공급이 원활해지면 우리나라 부동산 PF가 그랬듯 일부 투자자의 손실 문제로 국한될 수 있다. 그러나 이란 사태 장기화로 금리가 상방 압력을 받으면 상황은 달라진다. 2022년 10월 레고랜드 사태 때 겪었듯 금리 상승은 신용 경색 문제를 심화시킨다. 이 경우 사모대출 문제는 국지적 손실을 넘어 금융시장에 상당한 혼란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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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면 아래의 역류, 엔캐리 트레이드 문제

    엔캐리 청산은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워 간혹 공포의 대상이 되지만 평소에는 간과되곤 한다. 미국의 이란 공습(Epic Fury) 직전인 2월 27일과 최근 일자인 3월 13일 주요 국가의 국채금리 변동폭이 이목을 모은다.

    일본은 1~2월 중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재정확대 및 감세공약으로 재정위기 공포가 확산, 국채금리가 급등하며 전 세계 채권시장에 충격을 준 바 있다. 그런데 미국의 이란 공습 이후 주요국 국채금리가 치솟는 와중에도 일본 국채금리는 유독 평온한 모습이다. 이는 글로벌 안전자산 선호 덕분이 아니다. 같은 기간 달러-엔 환율이 160엔에 육박하며 엔화 약세가 심화된 점을 고려하면, 이는 일본 금융기관들이 일본 국채를 공격적으로 편입하며 금리 상단을 억제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일본의 대형은행과 보험사는 일본국채 보유량을 점진적으로 확대할 계획을 밝혀온 만큼, 새로운 회계연도가 시작되는 4월 이후 자국 국채로의 자산 배분은 더욱 가속화될 수도 있다. 환율과 국채금리를 낮추기 위한 일본 정부의 잠재적인 압력도 힘을 싣는 요인이다. 문제는 유동성이다. 글로벌 유동성 공급의 한 축을 담당해온 엔캐리 자금이 일본 내부로 환류되는 흐름은, 인플레이션과 금리 상승이 맞물린 글로벌 시장에 유동성 공급을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부상할 수 있다.

    과거의 경험은 미래를 비추는 등불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변화된 현실을 보지 못하게 가로막는 안개가 되기도 한다. 단기간 내 호르무즈 봉쇄가 해제되고 유가가 언제 그랬냐는 듯 전쟁 이전의 평온을 되찾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란 사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잦아들고, 시장은 이 사태를 상수로 받아들이는 피로 구간에 접어들 수도 있다. 하지만 진짜 위기는 모두가 익숙해진 병목의 끝에서 조용히 고개를 드는 법이다. 봉쇄가 장기화될 경우 발생할 파장은 단순한 에너지 가격 상승에 그치지 않고 금융시스템의 균열을 만들 수 있다. 수면 아래서 소리 없이 진행 중인 금리의 역습과 유동성의 환류에 대해, 이전보다 날 선 경각심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배문성 라이프자산운용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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