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영의 FX환담] 물가전쟁 직면한 외환시장
(서울=연합인포맥스) '2026년에는 커피 원두값 상승으로 한 잔에 1만원이 넘을 겁니다', '2050년에는 커피 한잔에 2만원이 넘는 시대가 올 거예요'
커피값 경고가 나왔을 때만 해도 이런 이야기는 기후 변화와 식량 인플레이션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중동에서 이란 전쟁이 발발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최근에는 기름값이 치솟고, 평소에 쓰는 쓰레기봉투나 포장재도 공급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불거지고 있다. 원유와 관련한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고 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으로 원유 수송로이자 원자재 물길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파가 컸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 위기 이후 가까스로 잡혔던 인플레이션은 중동 위험에 되살아났다. '물가 전쟁' 승리를 선언하고 금리인하에 나섰던 각국 중앙은행들은 다시금 접어뒀던 물가 지표를 들여다보고 있다.
유가 고공행진이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일 것이라는 관측에 일본은행(BOJ)뿐 아니라 호주중앙은행(RBA), 유럽중앙은행(ECB) 등도 물가 상승 우려와 금리 인상에 무게를 실었다.
각국 채권금리도 일제히 오름세를 보였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연 4.44%대로 높아졌고, 일본 10년물 금리도 2.28%대로 올랐다. 영국 국채금리는 지난 23일 한때 10년물이 5%를 웃돌았고, 독일 10년 국채도 2.64%대로 금리 레벨을 높였다.
이란 전쟁이 길어지고, 유가 급등세가 이어지면 앞으로 금리 인하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강해지고 있다.
시장 일각에서는 중동 리스크가 과거 중동 오일쇼크와 가스 위기를 합쳐놓은 파급 효과를 낼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달러-원 환율 전망도 밝지만은 않다. 종전 기대가 불거질 때마다 환율이 20원 가까이 급락하고 있지만 이란과의 군사적 충돌 소식이 전해지면 달러 매도세가 주춤해진다.
유가 100달러대면 달러-원 환율 1,500원대, 장기화되면 1,550원을 넘어 1,600원을 향할 것이라는 비관론도 자리 잡고 있다. 시장의 무게 중심이 유가 급등으로 이어지면서 각국 중앙은행은 새로운 물가 전쟁에 대비하는 양상이다.
이렇게 되면 물가 압력은 외환시장에 새로운 위험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달러 그래프는 새로운 산을 만나게 된다.
금리 인상 전환에 따른 역학 구도 변화는 달러 흐름을 재편할 여지도 있다.
ECB와 BOJ 금리 인상 기조에 유로화와 엔화가 강세를 보일 경우 달러 약세가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시장 참가자들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도 금리인하가 어렵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
유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을 맞닥뜨리면서 향후 연준의 금리 인상 기조가 두드러질 경우 달러 강세 기조가 다시 탄력을 받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물가 전쟁이 가져올 자본의 흐름 변화는 계속 살펴야 할 대목이다.
그동안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열풍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증시로 향했던 글로벌 투자의 방향이 다시 미국으로 되돌아갈 가능성도 있다.
중동 위험에 따른 위험자산 회피가 하루아침에 회복되지 않을 수 있는 셈이다.
서울환시는 달러-원 환율이 1,500원 수준으로 고공행진을 하는 상황에서도 외국인 자금 유입 기대가 살아있었다.
4월부터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에 따른 외국인 자금 유입이 본격화될 경우 환율이 하락 압력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이 강했다. 패시브 자금유입 규모만 연간 500억~700억달러, 한 달에 못 해도 40억~60억달러 자금이 들어올 것으로 예상됐다.
WGBI 채권자금은 환헤지를 절반 이하로 할 수 있어 환율 하락 압력이 이전보다 클 것이라는 기대도 일었다. 편입 초기에는 대규모 달러 매도세가 집중될 수 있다.
이는 서울환시에서 그동안 달러-원 환율이 급등하더라도 다시 내려갈 수 있다는 전망에 힘을 싣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중동 위험에 따른 물가 압력이 커질 경우라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각국의 금리 인상 기조가 두드러지고, 위험자산 회피가 큰 물결을 이룬다면 달러-원 환율은 새로운 판에 적응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지명자가 확정되면서 향후 금리 인상 전환 가능성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한국은 유가 상승에 따른 물가 압력은 물론 달러-원 환율 1,500원대 급등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도 한꺼번에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아직 한국은행은 금리 동결에 무게가 실려있지만 향후 기조가 바뀔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하는 셈이다.
서울환시의 믿는 구석이었던 WGBI 자금 유입 효과가 예상만큼 나올 수 있을까.
달러-원 환율이 불안할 때마다 1,500원 선으로 치솟은 만큼 외국인이라면 헤지 없이 원화 자산에 투자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볼 대목이다.
중동 위험이 4월이 되기 전에 빠르게 해소된다면 원화 자산도 급격히 회복될 수 있다. 하지만 중동지역의 전쟁이 길어진다면 외국인 자금유입 기대에 따른 달러-원 환율 하락 전망이 다소 약해질 가능성도 있다.
유가와 환율 상승이 겹친 물가 전쟁이 우리의 살림살이도 고달프게 할 수 있다. (경제부 시장팀장)
syj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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