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세연의 프리즘] 3시 30분
  • 일시 : 2026-05-12 13:00:00
  • [곽세연의 프리즘] 3시 30분



    (서울=연합인포맥스) 영원할 것 같던 시간도 결국 바뀐다. 당시엔 '세상이 뒤집힐 것처럼 떠들썩했던 일'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이 된다. 오늘날 우리에게 오후 3시30분은 너무도 당연한 주식시장과 서울 외환시장의 '종가의 시각'이다.

    종가란 시장이 마감되는 순간의 가격이다. 거래 시간이 제한적이던 시대에는 분명 의미가 있었지만, 시장은 이제 잠들지 않는다. 글로벌 자금은 시차를 넘어 움직이고, 금융상품은 24시간 거래된다. 그런 시대에 특정 시각을 기준 삼아 하루를 끊는다는 건 사실상 플레이어들의 편의를 위한 약속에 가깝다.

    문제는 이 편의가 대중성을 확보하면 대표성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단 몇 분, 몇 초의 가격이 기업의 외화자산 가치와 금융회사의 손익을 결정하고, 수출입 기업의 결제 기준이 된다. 투자자의 평가손익도 종가에 따라 바뀐다. 분기말·반기말·연말 종가는 누군가의 실적이 되고, 누군가의 성과급이 된다.

    서울 외환시장이 운영시간 연장을 추진했을 때 딜링룸에서 가장 많이 나온 질문도 결국 이것이었다. "그래서 근무 시간과 종가는 어떻게 되는 건데…"

    2024년 7월 서울 외환시장 거래시간은 오후 3시30분에서 새벽 2시까지로 연장됐다. 형식상 종가는 두 개가 됐다. 기존의 오후 3시30분 종가와 새벽 2시 종가다. 엄밀히 말하면 새벽 2시가 진짜 종가에 가깝지만 현실은 달랐다. 시장은 여전히 오후 3시30분 가격을 심리적·실질적 종가처럼 받아들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서울장에 비해 거래 유동성이 턱없이 작았기 때문이다.

    이 질서도 오래가긴 어려워 보인다. 오는 6월 말, 7월 초로 예정된 24시간 체제 개편은 서울 외환시장의 '종가 개념' 자체를 다시 흔들 가능성이 크다. 벌써 시장에서는 서울장 종가를 오후 4시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MAR 폐지와 함께 픽싱 시간이 정해지면 그 시간이 사실상의 종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논리다.

    시한부였던 새벽 2시 종가는 새벽 6시에 그 자리를 내줄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플랫폼 상당수가 이미 한국시간 기준 새벽 6시를 하루 마감 시점으로 활용하고, NDF 시장 역시 이 시간대 종가 개념이 자리 잡고 있다. 국제화된 통화일수록 특정 국가만의 '독자적 종가' 개념은 점점 희미해진다. 결국 오후 3시30분 종가는 한국 안에서만 의미를 갖는 숫자로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돌이켜보면 주식시장도 비슷했다. 지금은 너무 당연한 오후 3시30분 종가도 원래는 오후 3시였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2016년 정규시장 마감시간을 30분 연장했다. 당시만 해도 시장에서는 "청산은 어떻게 하느냐", "공시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는 반발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10년이 지나고 그 논란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제는 3시 30분이 하루 주식 전쟁의 종료 시각처럼 받아들여진다.

    그 사이 시장은 더 빠르게 변했다. 지난해 3월 대체거래소 넥스트레이드가 등장했고, 출근길, 퇴근길에도 투자자들은 주식을 사고판다. 코스피와 코스닥 종가는 여전히 오후 3시30분에 결정되지만, 실상은 ETF 기준가와 펀드 평가가격, 계좌 잔고를 계산하기 위한 '편의적 숫자'에 가까워지고 있다. 한국거래소가 프리·애프터마켓을 도입해 사실상 '종일 거래'를 추진하겠다고 예고했고, 더 나아가 전면적인 24시간 거래 시스템을 구축 완료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국장 쇼핑도 전 세계 추세인 24시간 거래에 동참하게 되면 주가지수 종가 산출 시간 역시 바뀔 수 있다.

    자본시장연구원


    문제는 종가만이 아니다. 글로벌 자본시장이 추진하는 결제주기 단축, 이른바 'T+1' 역시 비슷한 충돌을 예고한다. 지금은 주식을 거래한 뒤 이틀 후(T+2)에 결제가 이뤄지지만, 이를 하루(T+1)로 줄이겠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면 단순한 속도 경쟁처럼 보이지만 시장 인프라 전체를 흔드는 문제다.

    종가의 변화가 '시간의 기준'을 흔드는 문제라면, T+1은 시장 전체의 '속도'를 바꾸는 문제다.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크게 와닿지 않을 수 있지만 기관투자자는 다르다. 오늘 받을 증권과 현금을 다른 거래의 담보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나의 결제가 밀리면 연쇄적으로 다른 거래까지 꼬일 가능성이 커진다.

    전세시장과 비슷하다. 기존 집에서 보증금을 돌려받아야 새 집 잔금을 치를 수 있는데, 한 곳에서 돈이 막히면 뒤에 연결된 거래 전체가 흔들리는 구조다. 결제주기를 하루 줄인다는 건 이 연쇄 과정에 대응할 시간을 하루 없애는 것과 같다.

    더 큰 변수는 외국인 투자자다. 해외 기관 입장에서는 한국 시장만을 위해 자동화 시스템과 결제 프로세스를 새로 구축해야 할 수도 있다. 한국만 T+1로 먼저 움직일 경우 굳이 비용을 들여 적응하기보다 다른 아시아 시장으로 자금을 돌릴 가능성도 크다. 실제 글로벌 기관들은 환전·배정·결제 승인 절차가 본사 중심으로 움직이는 구조상 T+1이 시차를 고려할 때 사실상 '당일 결제 압박'처럼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미국 SEC조차 T+1 도입 과정에서 주문 당일 결제구조를 사전에 확정하라고 요구했을 정도다.

    결국 핵심은 속도가 아니라 보조(步調)다. 적어도 한국·일본·홍콩·싱가포르·대만 등 아시아 주요 시장이 함께 움직여야 충격을 줄일 수 있다. 현재로선 홍콩 정도를 제외하면 결제주기 단축 논의가 활발한 곳도 많지 않다. 유럽조차 2027년 도입 계획을 두고 연기 가능성이 거론된다.

    24시간 시대에서는 결국 '당연함의 유효기간'이 짧아진다. 오후 3시30분 종가도, T+2 결제도 한때는 절대 바뀌지 않을 질서처럼 여겨졌지만, 시장은 결국 글로벌 스탠더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앞으로 또 얼마나 빨리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 언젠가 오후 3시30분 역시 과거 금융시장의 유물처럼 기억될지 모른다. (경제부장)

    sykwa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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